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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易地思之] 민주당이 만든 '트럼프 쇼크'

2025-03-11

가난한 백인 하층민 정책 소외

진보 유권자 민감 이슈에 집중

국가적 의제 외면 성찰 없다면

미국을 돈의 노예로 만들려는

트럼프 시도 성공 가능성 높아

[강준만의 易地思之] 민주당이 만든 트럼프 쇼크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지난 2월28일(현지시각) 미국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열린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정상회담은 온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른바 '트럼프 쇼크'다. 어느 미국 누리꾼의 말마따나 집무실은 "깡패들이 가득 찬 방"이 되고 말았으니, 이 노릇을 어찌할 것인가.

친트럼프 팟캐스트 채널의 진행자가 정상회담에 끼어들어 젤렌스키에게 던진 질문을 보자. "왜 당신은 정장을 입지 않았냐. 당신은 나라의 최고 지위에 있는데 왜 정장 입기를 거부하느냐. 정장이 있기는 하냐." 이게 질문인가. 이건 우크라이나와 젤렌스키를 모욕한 게 아니라 미국의 국격을 훼손함으로써 사실상 미국과 트럼프를 모욕한 말이다. 경호원을 시켜 당장 그 방에서 쫓아냈어야 마땅한 일이었지만, 트럼프가 흐뭇해 한 걸 어이하랴.

부통령 J. D. 밴스도 "이 회의 내내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느냐.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해라"라면서 젤렌스키를 윽박질러 트럼프를 기쁘게 만들었다. 9년 전 '힐빌리의 노래'라는 책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옹호함으로써 유명해져 부통령 자리에 오른 그가 그런 말을 하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다. 미국의 밖은 말할 것도 없고 안에서도 경악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건 당연한 일이다. 몇 개 감상해보자.

"미국은 한때 세계 경찰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갈취하는 마피아 두목처럼 보인다."(뉴욕타임스) "트럼프가 젤렌스키를 맹렬하게 비난한 것은 계획된 정치적 '강도 행위'였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지도자의 신용을 떨어뜨리고 향후 그를 모든 일에서 배제하려고 만든 함정이었다."(CNN) "미국 외교의 '재앙'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이다. 미국의 '경제적 이익'만 노린 채 동맹을 위협하고 적국을 편드는 트럼프 대통령이 250년 전 건국 이래 굳건하던 '도덕의 나침반'을 다시 바꾸고 있다."(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파리드 자카리아)

동아일보 뉴욕 특파원 임우선은 "미국이 믿는 신이 변하고 있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미국의 많은 결정이 '돈'과 '미국의 이익'에 따라 내려지는 지금, '우리는 신을 믿습니다(In God We Trust)'는 '우리는 돈을 믿습니다(In Money We Trust)'로 바뀌어 버린 것 같다"고 했다.

이상한 일이다. 짧게는 100년, 길게는 200년 전의 세상으로 되돌아간 걸까? 그 시절 유럽인들은 한결같이 미국인을 돈밖에 모르는 사람들로 보았으니 말이다. 신생국 미국을 방문했거나 연구한 지식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미국인들의 지극한 '돈 사랑'에 관한 증언들을 남겼다. 몇 개만 감상해보자.

"미국인들은 모두 돈을 추구한다."(영국 농학자 리처드 파킨슨) "미국은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지배적인 나라다."(프랑스 사회개혁가 프랑수아 라 로슈푸코 리앙쿠르) "미국은 국가라기보다는 차라리 무역회사에 가깝다."(러시아 작가 미하일 포고딘) "돈에 대한 숭배가 인간에 대한 애정을 압도하는 나라를 나는 미국 이외의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다."(프랑스 사상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 "미국인은 언제 어디서나 부자가 되려고 서두르며 먼 미래의 결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러시아 지식인 모이세이 오스트로고르스키) "미국인의 최고선은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다."(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

물론 미국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유럽인들의 그런 시각을 반박하기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지식인들이 미국과 미국인의 꿈과 이상을 찬양했다. 이번엔 그런 명언 몇 개를 감상해보자.

"미국의 역사 전체는 인류를 위한 신의 섭리의 마지막 노력과도 같다."(철학자 랠프 왈도 에머슨) "우리 미국인들은 선택받은 특별한 사람들이다…인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며 위대한 정신을 보여주길 바란다. 우리는 세계의 개척자다."(소설가 허먼 멜빌) "미국 자체가 본질적으로 가장 위대한 시(詩)다."(시인 월트 휘트먼) "미국은 세계에서 유일한 이상주의 국가다."(제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 "미국은 언제나 국가일 뿐만 아니라 꿈이었다."(언론인 월터 리프만)

어떤 게 미국과 미국인의 진짜 모습일까? 양극단의 중간 지점 어딘가에 답이 있는 게 아닐까? 반미주의자들은 미국은 시종일관 트럼프와 같은 사람들이 다수인 사악한 제국주의 국가였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이런 말은 믿지 않는 게 좋겠다. 미국은 예찬해도 좋을 장점이 많은 나라다. 트럼프에 반대하는 미국인들이 절반 가까이 된다는 것도 유념해두자. 그런데 왜 미국이 이렇게 되었는가? 트럼프 탓만 하는 건 옳지 않다. 오히려 민주당 탓을 하는 게 옳거니와 미국의 변화를 위해 훨씬 더 나은 길이다. 민주당의 문제 또는 민주당이 그간 저지른 잘못은 다음 세 명언으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우파 대 좌파는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상층부 대 하층부가 바로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다."(정치활동가 짐 하이타워) 둘째, "지난 수십년 동안 민주당이 끊임없이 저지른 죄악은 (남에게 과시하는 걸 좋아하는) 속물근성이었다."(2003년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전에 참가했던 존 에드워즈) 셋째, "미국은 관념적 진보주의자의 나라가 되었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자기 집 거실이나 칸막이 친 사무실에 앉아 정치에 개입하고 분노하는 진보주의자들의 나라가 되었다."(언론인 폴 로버츠)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 첫째, 민주당은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외면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더욱 빈곤하게 만드는 정책만 고집해 공화당을 지지하게 만들어 놓고서도 진보 행세를 했다. 둘째, 민주당은 '정치적 올바름'을 과도하게 밀어붙임으로써 진보성을 과시하면서 도덕적 우월감을 만끽하는 데에 집착했다. 셋째, 민주당은 진보 유권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슈들에만 집중함으로써 국가적인 거대 의제들의 문제를 외면해 악화시켰다.

민주당이 이런 문제와 한계를 인정하고 성찰하면서 극복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을 '돈의 노예'로 만들려는 트럼프의 시도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민주당이 국가적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야당으로서 충분한 견제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에 미국과 세계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북대 명예교수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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