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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 전북 임실 시인의 길, 봄이 오는 섬진강…굽이굽이 詩가 흐른다

2025-03-14

[주말&여행] 전북 임실 시인의 길, 봄이 오는 섬진강…굽이굽이 詩가 흐른다
마을 앞 섬진강 징검다리는 남쪽으로 떼 지어 날아가는 새들 같다. 시멘트 다리가 생기면서 징검다리는 무너져 사라져 갔는데 2001년 추석 때 사람들이 울력을 벌여 다시 놓았다고 한다.

임실을 지나는 섬진강 물길은 시냇물 같다. 섬진강댐을 지나며 몸집이 작아졌지만 겨울을 지낸 봄물은 더욱 야윈 모습이다. 섬진강이라 부르면, 벌써 눈앞에 어리는 것은 모래의 강이다. 그러나 임실의 섬진강은 숲과 마을의 강이다. 산은 길어도 아주, 아주 높지는 않아서 강변의 좁은 땅은 밝다. 강은 숲에 안겨 얼굴을 햇살에 드러내고는 뒤척이고 또 보채며 앞으로 나아간다. 강변의 좁은 땅에서 나고 자란 시인은 이 길을 서럽도록 아름답다 했다.

강변 진메마을 귀향한 김용택 시인 거주
멋스러운 징검다리·마을입구 시비 눈길
진메~천담 4㎞ '시인의 길' 특히 아름다워
'동자바위'엔 애잔한 사랑 이야기 전해져


◆ 진메마을

[주말&여행] 전북 임실 시인의 길, 봄이 오는 섬진강…굽이굽이 詩가 흐른다
진메마을은 시인 김용택의 고향이다. 커다란 느티나무 너머로 시인의 거처가 한눈에 들어차고 마을 앞 산수유나무가 노란 산형꽃차례를 피워내고 있다.

임실 섬진강변의 진메마을은 시인 김용택의 고향이다. 마을 앞에 긴 산이 있어 진메다. 질메 또는 장산(長山)마을로도 불린다. 마을 가운데에 그가 나고 자란 집이 있다. 정면 4칸의 정갈한 한옥이다. 1962년에 처음부터 끝까지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지은 집이라 한다. 2019년 임실군에서 말끔하게 단장해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시인은 고향으로 돌아온 후 회문재(回文齋)라는 현판을 걸었다. '오래된 글쟁이가 객지 생활을 뒤로하고 다시 돌아온 곳'이란 뜻으로 인근에 있는 회문산(回文山)에서 따온 이름이다. 회문산은 '글이 모인다는 산'이다. 시인은 '내가 시인이 된 것이 회문산 덕이 아닐까' 생각한단다. 원래는 관란헌(觀瀾軒)이었다. '물결을 바라보는 마루'라는 뜻이다. 시인은 현재 회문재 양 옆의 벽돌집에 살고, 옛집은 동네 사람들이 모여 시를 엮어 내거나 이방인들이 차 한 잔을 하거나 별일 없이 거니거나 소회를 남기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회문재 작은 마당을 둘러싼 고운 돌담에는 문이 없어서 누구나 툇마루에 앉을 수 있다. 돌담은 낮고 키 큰 감나무 한그루는 담장 모서리에 물러 서 있어 툇마루는 심상히 담 너머 텃밭과 동구의 느티나무와 긴산 아래 강을 내다본다. 느티나무는 시인이 40여 년 전에 심었다고 한다. 나무 아래에 '농부와 시인'이라는 시비가 누워 있다. 시인이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쓴 시다. 시비는 원래 세워져 있었는데 어느 날 강물이 범람해 넘어졌다. 납작하고 동그마니 넙데데한 시비가 누워 있으니 사람들이 올라가 보기도 하고 걸터앉아 보기도 했단다. 그래서 똑바로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섬진강에는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남쪽으로 떼 지어 날아가는 새들처럼 느슨한 '브이'자 모양이다. 멋스럽기도 하지. 몇 걸음 상류에는 활주로 같은 시멘트 다리가 있다. 1995년 봄에 놓인 농로용 다리다. 그의 시 '섬진강'에 나오는 '강 건너 평밭'에 경운기를 몰고 갈 수 있도록 군에서 만들어 준 것이다. 시멘트 다리가 생기면서 징검다리는 무너져 사라져 갔는데 2001년 추석 때 사람들이 울력을 벌여 다시 놓았다고 한다. 멋지기도 하지. '양말도 벗었나요./ 고운 흙을 양손에 쥐었네요./ 등은 따순가요./ 햇살 좀 보세요./ 거 참, 별일도 다 있죠./ 세상에, 산수유 꽃가지가/ 길에까지 내려왔습니다./ 노란 저 꽃 나 줄 건가요./ 그래요./ 다/ 줄게요./ 다요, 다.'(김용택 '별일') 강마을에 산수유나무가 노란 산형꽃차례를 피워내고 있다.

◆ 시인의 길

[주말&여행] 전북 임실 시인의 길, 봄이 오는 섬진강…굽이굽이 詩가 흐른다
김용택 시인이 나고 자란 집, 회문재. 오래된 글쟁이가 객지 생활을 뒤로하고 다시 돌아온 곳이라는 뜻이다. 고운 돌담에는 문이 없어서 누구나 툇마루에 앉을 수 있다.

마을을 떠나 강 따라 흐르는 길이 깊어진다. 깊어지나 볕이 넉넉해 외진 무섬은 없다. 다만 아늑한 외로움과 여유로운 추상이 함께 깊어질 뿐이다. 전북의 14개 시·군마다 3~4개의 길을 선정해 엮은 '전북천리길'이 있다. 임실에는 3개의 길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물우리에서 진메와 천담을 거쳐 구담까지 11㎞ 이어지는 '섬진강길'이다. 시인은 진메에서 구담까지 약 7㎞ 길을 섬진강 500리 물길 중 가장 아름답다고 꼽았다. 그가 '서럽도록 아름답다'라고 했던 강변이 바로 이곳이다.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가난하게 삽니다.'(김용택 '섬진강15') 쉬어가라는 정자 아래 바위들이 툭툭 떨어져 있다. 뜨문뜨문 떠 있다고 '뜨문바위'라 한단다.

진메에서 천담까지는 약 십리 길이다. 시인은 1990년대 초, 2년간 진메마을의 집에서 천담마을의 천담분교까지 4㎞ 되는 비포장 길을 매일같이 걸었다고 한다. 그는 '이 학교길, 강길 10리길이야 말로 천국의 길이었다'고 했다. '그 길을 걸으며 자연의 세세한 변화에 경이로움과 신비감을 느꼈다'고 했고 '눈곱만큼도 지루하지 않고 순간순간 계절계절이 즐거웠고 행복에 겨워 어쩔 줄을 몰랐다'고 했다. 오솔길이었고, 지게길이었고, 학교 가는 길이었던 그 길은 지금 섬진강 자전거길이다. 이팝나무와 벚나무가 가로수로 이어지고 좁지만 차도 다닐 수 있다. 뜨문뜨문 자리한 벤치 곁에는 연산홍과 어깨를 나란히 한 시비가 있다. 향기, 봄날, 나무, 사람들은 왜 모를까, 섬진강1, 구절초 꽃, 섬진강3 등 김용택의 시를 새긴 시비가 여럿이다. 그래서 이 강을 시인의 강, 이 길을 시인의 길이라 부른다. 시인은 요즘도 자주 이 길을 거닌다고 한다.

◆ 천담마을

[주말&여행] 전북 임실 시인의 길, 봄이 오는 섬진강…굽이굽이 詩가 흐른다
천담 마을 버스정류장에 '동자바위'가 동그마니 퉁방울눈으로 서있다. 이 바위에는 사냥꾼 총각과 나물 캐는 처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진다.

천담마을은 활처럼 휘어 흐르고 못(潭)처럼 깊은 소(沼)가 많다고 해서 천담(川潭)이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마음을 사랑으로 채우는 곳'이라 적어 두었다. 마을 버스정류장 앞에 '동자바위'가 동그마니 퉁방울눈으로 서있다. 울어 퉁퉁 부은 듯 서러운 얼굴이다. 이 바위에는 사냥꾼 총각과 나물 캐는 처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진다. 총각은 사냥 길에 우연히 나물 캐는 처녀를 보고는 첫눈에 반했다. 처녀를 다시 보러 가고 싶었지만 강이 범람해 나루를 건너지 못하자 둘은 그만 상사병을 앓다가 죽어버렸단다. 이후 마을 앞에 총각을 닮은 동자바위가 생겨났고 나루 너머에는 처녀를 닮은 여인바위가 생겨났다고 한다. 언젠가 두 바위는 사라졌다. 지금의 동자바위는 복원된 것이다. 마을의 이야기 할아버지 같다.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뭍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김용택 '봄날') 텃밭에 호미 덩그런 할 봄날이 내일이다. 사라진 처녀총각도 어디 먼데서 손잡고 꽃구경 하고 있으면 좋겠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12번 대구광주고속도로 광주방향으로 가다 순창IC에서 내린다. 순창IC교차로에서 12시 방향으로 나가 직진, 관서삼거리에서 좌회전, 순창고교교차로에서 우회전해 27번 국도를 타고 직진한다. 약 10㎞ 정도 가다 장암교차로에서 회문산, 장암리 방향으로 빠져나가 우회전, 50m 앞에서 다시 장암리 방향으로 좌회전해 400m 앞 천일슈퍼에서 우회전해 계속 직진하면 장산마을, 강 따라 조금 더 가면 천담마을이다. 남도에 꽃이 시작되었으니 구담마을까지 가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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