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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서 火魔 피해 1시간 산속 헤맨 90대 등 대피소서 밤새 뜬눈

2025-04-30
텃밭서 火魔 피해 1시간 산속 헤맨 90대 등 대피소서 밤새 뜬눈
29일 대구 북구 동변중 대피소에서 산불 대피 당시를 설명하는 김용복(90)씨.
20여년 가꾼 조야동 뒷산 텃밭
농막도 형체 없이 철근만 남아

병원치료 후 귀갓길 80대 부부
함지산 건너 집 덮친 연기에 아찔
혈압약도 못챙긴 채 대피소로

"머릿속엔 오직 살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산 속에서 한 시간여를 헤맨 끝에 구조대원을 만날 수 있었다."

대구 함지산에서 산불이 난 지 이틀째인 29일 오전 10시쯤, 주민 대피소가 마련된 동변중에서 만난 김용복(90·북구)씨. 그는 피곤한 기색속에서도 격앙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불이 난 28일 오후 평소처럼 조야동 뒷산 자신의 텃밭에서 밭일을 한 뒤 점심상을 차리던 중이었다. 밥 한 숟가락을 뜨려하자 갑자기 아래쪽 산에서 불길이 번지는 광경을 목도했다. 그는 "스마트폰 알람으로 노곡동에 산불이 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조야동까지 번질 줄은 몰랐다. 눈앞에서 불길이 마구 번지니 너무 무서웠다"며 "나무가 불기둥처럼 타올랐고, 불붙은 낙엽과 나뭇가지들이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로 흩날렸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번 산불로 20여 년간 가꿔온 그의 텃밭이 몽땅 타버렸다. 농막도 철근만 남았을 뿐, 형태조차 남지 않았다. 그는 "물길도 손수 만들고, 어느 것 하나 내 손을 안 거친 게 없었다. 이제 막 꽃피기 시작한 작물들이 다 탔다. 말도 못하게 속상하다"고 했다. 그래도 가족들이 '몸 건강히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며 위로해줘서 다소 마음은 진정됐다고 했다.

이날 같은 장소에서 만난 이영일(83)씨도 이번 함지산 산불로 인해 동변중 대피소로 급히 몸을 옮긴 지역민 중 한 명이다. 산불이 확산되던 당시 그는 아내와 택시를 타고 서변동 자택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택시 창밖을 통해 산을 뒤덮은 불씨와 연기를 목격했다.

그는 "아내가 다리를 다쳐 병원에 갔다오던 길이었다. 택시 안에서 창밖을 보니 막 연기가 나고 있길래 불이 난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크게 번질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며 "처음엔 병원 근처에 불이 난 줄 알았는데, 다리 하나를 건너자마자 함지산이 연기에 휩싸인 게 보였다. 서둘러 집에 가서 옥상에 올랐더니 연기가 바람을 타고 집근처까지 밀려오고 있었다"고 아찔한 상황을 떠올렸다.

그는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먼저 대피소로 보냈다. 이후 집 상황을 살핀 뒤 뒤늦게 대피소에 합류했다. 그는 "아내가 몸도 불편한데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 맘이 조마조마했다. 멀리 있는 자식들 전화도 쏟아졌다"고 전했다.

대피소에서 밤을 보낸 그는 "정신이 없어서 매일 먹는 혈압약도 못 챙겼다가 오늘 아침에 잠깐 집에 다녀왔다"며 "다행히 불길이 번지진 않았지만, 불안감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했다.

대피소 안에서 산불 원인을 두고 다양한 추측이 오갔다고도 했다. 그는 "누가 함지산에서 쓰레기를 태웠다, 공단에서 작업하던 중 불티가 옮겨붙었다, 야산에서 누가 불장난을 했다 등 온갖 이야기들이 대피소에서 쏟아졌다"며 "자연적으로 발생한 불이 아니라면 불을 낸 범인을 찾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고 혀를 끌끌찼다.

글·사진=조윤화기자 truehw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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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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