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 초기작 중 ‘선’을 주제로 한 회화 20여 점 선보여
한국 근대미술과 서구 모더니즘 융합한 독창적 작업 세계 구축
‘필획(筆劃)’ 통해 만물의 본성과 우주의 조화 탐구
권정호 'Accumulation'
캔버스 가득 짧은 선들이 그려져 있다. 흰 색 선들은 질서가 있는 듯하면서도 무질서하게 펼쳐져 있다. 국내에서 미술대학 졸업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을 했던 서양화가 권정호는 동양철학과 동양화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동양화에 있어서 핵심은 선이다. 문자도, 그림도 모두 점으로 시작해 선으로 완성된다. 이 선이 확장해 면으로도 진화한다.
'선'을 통해 동양철학과 현대예술의 만남을 조망하는 전시가 대구의 첫 사립미술관인 권정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권정호미술관(대구 동구 동부로 67)은 오는 8월13일까지 1·2전시실에서 권정호 작가 개인전 '선으로부터(From the Stroke)'를 개최한다.
권정호미술관의 올해 두 번째 기획전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에서 권 작가는 1980~90년대 자신의 초기 작업 중 '선'을 주제로 한 회화 약 20여 점을 선보인다.
권 작가는 기존 선 작업만이 아니라 해골 등을 통해 삶과 죽음이라는 불교의 윤회사상 등 동양철학에 기반을 둔 작품은 물론 대구지하철참사 등 사회성 짙은 작업을 꾸준히 선보여왔다.
권정호 'From Line'
'선으로부터' 전시는 하나의 붓질, '필획(筆劃)'을 통해 만물의 본성과 우주의 조화를 탐구한 작품들로 구성된다. 동양철학의 근원적 사유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내며, 관람객이 '움직임과 고요함', '무위와 유위'의 경계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의 작업에서는 한국적 아름다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정중미(靜中動)의 미'가 느껴진다. 무작위로 그린 선들이 조용하고 평온한 듯 하면서도 활력이 느껴진다. 거친 붓질이 그대로 살아숨쉬는 데서 오는 생명력이다. 단순한 듯하면서도 복잡해 보이고, 수묵으로 그린 듯하면서도 유화와 아크릴물감이 주는 두터운 질감이 느껴진다. 권 작가의 작품에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다.
1944년 대구에서 태어난 권정호 작가는 계명대와 동대학원, 미국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한국 근대미술과 서구 모더니즘을 접목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확립했으며, 대구미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평생에 걸쳐 집념을 쏟아부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권정호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미학적 성찰과 존재론적 탐구가 만나는 지점을 시민들과 함께 사유하는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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