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역사가 깃든 어촌, 경주 감포를 걷다

문무대왕릉이 보이는 경북 경주 봉길해변. 바다 위 떠 있는 왕릉이 한눈에 보인다. <사진=조현희기자>
APEC 정상회의가 세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행사를 앞두고 개최지인 경주에 온 세계의 관심이 쏠린다. 천년고도 경주는 풍부한 역사문화유산을 자랑한다. 사계절 내내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이유다. 그런데 사실 이뿐만이 아니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스토리텔링을 가진 지역이기도 하다. 경주에도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경주시는 여름 휴가철을 맞아 지난달 동해 바다를 배경으로 한 여름 관광지를 소개했다. 경주 바다에는 한적한 해변가와 이색적인 풍경, 이야기가 깃든 골목길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감포읍이다. 경주 도심에서 동쪽으로 30㎞ 가량 떨어진 이곳은 푸른 바다와 함께 자연과 역사가 숨쉬는 곳이다. 대릉원, 동궁과 월지 등이 자리한 중심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문무대왕릉이 바다에 잠들어 있고, 세월을 간직한 등대가 우뚝 서 있고, 일제강점기 개항의 기억이 서린 마을이 있다. 나만 알고 싶은 여행지다. 조용히 방문했다 조용히 머물고, 조용히 마음에 담고 떠나고 싶은 곳이다. 하지만 최근 여러 연예인이 왔다가고, 드라마도 촬영되면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그래도 아무렴 어떤가. 바다는 여전히 잘 있고, 오래된 마을은 그대로일 텐데. 전보다는 붐비지만 소란스러움을 잊기에 충분할 터다. 원래 시골에서는 작은 움직임도 눈에 띄는 법이다. 태양은 높게 떠서 뜨겁고, 바람마저 더디게 부는 어느 주말이었다. 일상의 컨디션이 흔들릴 찰나, 경주 감포로 떠났다.

감포 해국길 골목을 걷다보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풍경이 나타난다. <사진=조현희기자>
시작부터 고단했다 하는 것이 웃기지만, 차 없이 감포로 가는 여정은 조금 고단했다. 경주는 가깝지만 감포는 다른 얘기였다. 동대구에서 경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감포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한 시간. 버스에서만 두 시간을 족히 보내고 비로소 감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만 이상하게도 졸리지는 않았다. 차창 밖 풍경은 도심에서 외곽, 거기서 또 작은 마을로 바뀌었다. 들판과 산, 낮은 지붕의 마을들을 지나 바다의 기척을 조금씩 들려줬다.
전촌삼거리에서 내린다. 어촌답게 회를 써는 식당들이 모여 있다. 가게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회정식, 회국수, 가자미 등을 판매한다. 소박한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소규모로 운영되는 가게들이라 회전률은 느리다. 손님들은 대체로 그걸 감안하고 찾아온다. 바다를 끼고 있어 생선의 신선도는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전촌용굴로 가는 데크길. 전촌용굴은 인근 군사작전지역으로 원래 공개되지 않았는데, 최근 데크길이 조성되면서 쉽게 갈 수 있게 됐다. <사진=조현희기자>

데크길에서 내려다본 전촌용굴. 용에 관한 설화를 품고 있는 해식동굴이다. <사진=조현희기자>
점심을 먹고 나와 전촌용굴로 떠난다. 삼거리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한다. 파도와 시간이 만들어낸 자연 조각품이다. 사룡굴과 단용굴 두 곳을 합쳐 부르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용에 관한 설화를 품고 있는 해식동굴이다. 사룡굴에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지키는 네 마리의 용이, 단용굴에는 감포 마을을 지키는 용이 한 마리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군사작전지역으로 공개되지 않던 곳인데, 최근 해파랑길이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해안가를 따라 목재데크산책로가 생겼다. 덕분에 용굴까지 쉽게 갈 수 있게 됐다. 데크길에 오르면 빨간 전촌항 등대와 함께 마을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소박한 어촌의 정취가 느껴진다. 일출 명소로 꽤 알려져 연말연시 일출을 보러 찾아오는 주민들도 많다고 한다. 여름에 시원해서 피서지로 아주 좋다는데 역시 입구쪽 해변에 텐트가 줄지어 있다.

감포 해국길 입구. 근대화기의 이런 흔적이 있는 골목을 해국으로 단장했다. <사진=조현희기자>
해국길로 향할 차례다. 감포항 부근으로 가야 한다. 전촌에서 버스로 5분이면 간다. 버스 배차 간격을 걱정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규칙적이진 않지만 대체로 15분에 한 대는 온다. 느긋하게 바다 바람을 쐬며 기다릴 만했다. 감포항은 경주 동해안의 중심으로 1925년 개항 이래 100년의 세월을 간직한 항구다. 곳곳에 스토리와 감성이 가득하다. 해국길 역시 그렇다. 이 마을은 옛날 농어업의 집단 거주지였다. 일제강점기 개항 후 일본인 이주 어촌이 형성된 곳으로 당시 가장 번화한 거리였다고 한다. 그런 만큼 근대화기의 건물이 모여 있다. 이런 흔적이 있는 골목을 해국으로 단장해 지금의 골목이 됐다. 경주가 역사의 도시여서, 그 풍부한 역사를 쉼 없이 기리기 위해서일까.

감포 해국길 포토존. 드라마 '조립식 가족'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욱 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끌고 있다. <사진=조현희기자>
골목에 들어서면 낮은 슬레이트 지붕의 건물 사이로 좁은 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해국과 바다가 그려진 벽이 반겨준다. 해국 그림이 벽마다 색깔도 모양도 전부 달라 구경하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골목을 걷다보면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하는 계단이 나온다. 대왕만한 해국이 그려져 있다. 이곳에서 가장 핫한 포토존이다. 저마다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긴다고 한다. 그림이지만 커다란 꽃 한 송이가 골목 전체를 환하게 밝히는 듯했다.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조립식 가족'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욱 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끌고 있다고 한다. 계단을 올라가면 감포항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감포 해국길에 있는 일본식 적산가옥들. 지금은 국밥집, 약국, 세탁소 등으로 사용된다. <사진=조현희기자>

해국길에 위치한 '1925감포'는 100년 된 목욕탕을 개조한 카페다. <사진=조현희기자>
계단을 지나 골목을 따라가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풍경이 나타난다. 오래된 일본식 적산가옥들이 나온다. 지금은 국밥집, 약국, 세탁소 등으로 사용된다. 인근에는 최근 문을 연, 눈에 띄는 감성 카페가 있다. 옛 목욕탕 건물을 개조해 만든 '1925감포'다. 감포 최초의 목욕탕이었던 '신천탕'이 전신이다. 문을 닫고 30년 넘게 방치되던 목욕탕을 2021년 주민들과 청년들이 힘을 모아 바꾼 공간재생 사례다. 옛 목욕탕 손님이 커피우유를 마시듯, 지금은 카페가 된 목욕탕에서 커피를 마신다. 카페 내부에 목욕탕 짐 보관함과 타일, 탕 시설이 그대로 남아 있어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문무대왕릉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정자 '이견대'. 문무왕이 용으로 변한 모습을 보였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그의 아들 신문왕이 세상의 파란을 잠재우는 피리, 만파식적을 얻었다는 곳이기도 하다. <사진=조현희기자>

이견대에서 내려다본 문무대왕릉과 봉길해변. <사진=조현희기자>
문무대왕릉으로 간다. 사실 그 전에 이견대에 먼저 들르기로 한다. 문무대왕릉이란 신라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대왕의 수중릉이다. 통일을 이룬 문무대왕은 유언으로 말했다. 내가 용이 되어 침입해 들어오는 왜구를 막겠다고, 내 시신을 불교식으로 화장하고 유골을 동해에 묻어달라고. 그런 유언을 따라 장사한 것이다. 대왕암 또는 대왕바위라고도 불린다. 바다 속 왕릉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는데 그런 만큼 신비롭고 웅장하다. 그러니까 이견대는 어떤 곳이냐면, 이 대왕암을 잘 내려다볼 수 있는 정자다. 동시에 문무왕이 용으로 변한 모습을 보였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그의 아들 신문왕이 세상의 파란을 잠재우는 피리 '만파식적'을 얻었다는 곳이기도 하다. 정자에 올라 마주한 풍경은 말 그대로 신화의 배경처럼 펼쳐졌다. 바다는 넓고, 파도는 낮고, 그 한가운데 문무대왕의 바위는 묵묵히 떠 있었다.

경주 바다 위에 떠 있는 문무대왕릉. 저가 용이 되어 침입해 들어오는 왜구를 막겠다는 문무대왕릉의 유언을 따라 장사한 왕릉이다. <사진=조현희기자>
걸어서 언덕에서 해변으로 내려간다. 국도 옆에서 20분 정도 걸었다. 해변은 깔끔했다. 여름철 피서 오는 이들을 고려하면 지저분할 법도 한데 제법 꼼꼼히 관리를 하는 듯했다. 사람도 많지 않았다. 간간이 돗자리를 펴고 쉬는 이들이 보일 뿐, 해변은 고요했다. 바닷물은 맑았고, 파도 소리는 바다의 색처럼 청량했다. 아까 본 대왕암이 더 가까이, 더 크게 눈에 들어온다. 잠시 아무 말 없이 바위를 바라봤다. '지킨다'는 말을 여러 의미로 쓸 수 있다면 대왕암으로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라를, 이 자연과 고요함을, 그리고 그 앞에 선 지금 내 마음의 평온까지 지키고 있었기에.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