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엄 산 내 제임스터렐관. 제임스 터렐의 대표작품 5개(스카이 스페이스, 디비젼, 호라이즌 룸, 간츠펠트, 웨지워크)를 볼 수 있는 특별 전시장이다. <뮤지엄 산 제공>
얼마 전 최고 기온이 34℃까지 오르던 날이었다. 위클리포유 여행 기사를 쓰기 위해 경주 감포로 떠났다. 다 좋았다. 감포의 풍광도 스토리텔링도 문화유산도 다 좋았는데… 한낮에 땡볕 아래 걷는 일은 고역에 가까웠다. 더 길고 뜨거워진 여름이라 쉽지 않았다. 여행 기사를 쓰려면 현장에 갈 수밖에 없는데, 이 무더위에 야외에만 있기는 힘들다. 그래서 최근에는 실내 공간으로 피서 아닌 피서를 간다.
그 중 하나가 미술관이다. 스토리텔링이 있고, 쾌적한 공기 속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동시에 여행의 기분까지 느낄 수 있으니 대안으로 손색이 없다. 처음 가는 미술관이라면 기대는 더욱 커진다. 미술관 건물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그림이 전시돼 있을까? 이번 전시로 나는 어떤 걸 얻을 수 있을까? 호기심이 마구 일고 나름대로 이런저런 상상도 하게 된다.

대구간송미술관 통창에 비친 바깥 풍경. <사진=조현희기자>
최근엔 미술관을 향유하는 방식도 조금 달라졌다. 예전엔 오로지 작품 감상, 배움에만 초점을 뒀다면, 요즘은 편안히 들어가 힐링을 느끼기도 하고, 뮤지엄 숍에서 쇼핑도 하거나 주변 볼거리까지 함께 즐긴다. 기자 같은 사람이 꽤 있는지 '국현미'라는 신조어가 유행한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을 줄여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여기서 '국현미 나들이'라는 표현이 파생된 것만 봐도 미술관이 하나의 일상적 여행지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주 위클리포유에서는 여행을 떠날 만한 전국 곳곳의 미술관들을 둘러봤다. 저마다의 특성과 매력을 지닌 미술관에서 예술이 주는 감동과 여행의 즐거움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대구 수성알파시티에 위치한 대구미술관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대구미술관·대구간송미술관
'뽕'을 제대로 뽑고 싶은 미술관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면 대구만한 곳이 없다. 대구미술관과 대구간송미술관이 한데 나란히 자리하기 때문이다. 다채로운 현대미술 작품과 국보급 문화유산을 하루에 모두 만나볼 수 있는 이 일대는 그야말로 '일석이조 미술관 여행지'다. 대중교통 이용 시 대구 도시철도 2호선 수성알파시티역에서 '대구미술관 순환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대구미술관 내 전시 중인 극재 정점식 화백의 작품. <사진=조현희기자>
대구가 예술계 수많은 거장을 배출해온 도시인 만큼, 대구미술관에선 국내외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전시를 꾸준히 선보인다. 현재 2025년 다티스트로 선정된 장용근 사진작가의 '장용근의 폴더: 가장자리의 기록'(~10월12일), 대구 근대 회화를 대표하는 소장품을 선보이는 '대구 근대 회화의 흐름', 2025 소장품 하이라이트 '계속 변화한다, 모든 것은 연결된다, 영원히 계속된다'展이 진행 중이다.

대구간송미술관 내부 창문에 비친 소나무. 창 밖 풍경도 한 폭의 그림 같다. <사진=조현희기자>
지난해 개관한 대구간송미술관의 경우 개관 1주년 기념으로 오는 9월3일 하루동안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상설전시를 비롯해 실감영상전시, 간송의 방 등 전관을 관람할 수 있다. 작품도 작품이거니와 미술관 곳곳 창에 비친 바깥 풍경도 일품이다. 빛과 함께 들어오는 소나무가 한 폭의 그림 같다. 풍경 또한 한국적이다. 내년부터는 조선 후기의 화가 혜원 신윤복(1758~1814)의 대표작 '미인도'가 연간 상설 전시돼 기대를 모은다.

제주현대미술관 가는 길. 제주 중산간 지역에 위치한 제주현대미술관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끼고 있다. <사진=조현희기자>

저지문화예술인마을 안에 자리한 제주현대미술관 입구. <제주현대미술관 제공>
◆제주현대미술관
제주 한경면 저지리에 위치한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은 풍광이 독특하다. '새오름'이라 불리는 저지악이 마을 중심에 있다. 200여종의 다양한 식물이 서식한다. 이 마을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문화예술촌이기도 하다. 전국에서 모여든 예술인들이 작업실과 갤러리를 꾸리며 형성됐다. 한국 근현대 미술의 거목 고(故) 김흥수(1919~2014) 화백이 자신의 대표 작품을 무상으로 기증한 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도 이곳에 자리한다. 국내 공립미술관 중에서 김 화백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건물은 제주의 자연친화성을 우선으로 한 공모전의 최우수작품을 실시 설계했다. 문화예술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김흥수 작 '눈이 큰 여자'
미술관은 국제조각심포지엄 야외공원과 함께 1천명이 관람할 수 있는 야외공연장, 특별·상설·기획전시실, 아트숍, 세미나실 등 복합 기능을 갖추고 있다. 현재 김흥수 화백의 '나는 자유로소이다'(~11월2일) 등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나는 자유로소이다'展은 김 화백이 평생을 바쳐 완성한 독창적 조형 언어 '하모니즘(Harmonism)'을 조명한다. 김흥수 아틀리에에서는 그의 유품도 관람할 수 있다. 예술에 관심이 많다면 마을을 더 둘러봐도 좋다. 김창열미술관, 제주공예박물관, 다수의 갤러리와 화랑이 위치해 있다.

뮤지엄 산의 뮤지엄 본관. 종이박물관(페이퍼갤러리)과 미술관(청조갤러리)으로 구성됐다. <뮤지엄 산 제공>
◆뮤지엄 산
강원 원주 지정면 오크밸리 산자락에 들어선 뮤지엄 산(Museum SAN, Space·Art·Nature)은 이름 그대로 자연과 예술이 만나는 공간이다. 1997년부터 운영돼온 종이박물관(페이퍼갤러리)과 2013년 개관한 미술관(청조갤러리) 등으로 이뤄진 종합 뮤지엄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하고, '빛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더해 완성됐다. 소통을 위한 단절(Disconnect to connect)이라는 슬로건 아래, 자연과 예술 속에서 휴식과 자유를 선물한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공간 곳곳을 산책하며 다양한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체 면적이 약 2만2천평이다. 뮤지엄은 오솔길을 따라 웰컴센터, 잔디주차장을 시작으로 플라워가든, 워터가든, 본관, 명상관, 스톤가든, 제임스 터렐관, 그라운드로 구성된다. 본관은 네 개의 윙(wing) 구조물이 사각, 삼각, 원형의 공간들로 연결돼 대지와 하늘을 사람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건축가의 철학이 담겨 있다.

안토니 곰리와 안도 다다오가 협업해 만든 뮤지엄 산 내 새로운 공간 '그라운드(GROUND)'. <뮤지엄 산 제공>
현재 전시는 영국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개인전 'Drawing on Space'(~11월30일)이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국내에서 선보이는 작가의 최대 규모 개인전이다. 인간 몸의 존재성과 공간과의 관계를 총 48점의 작품으로 풀어낸다. 지난 6월 곰리와 안도 다다오가 협업해 만든 새로운 공간 '그라운드(GROUND)'도 조성·공개돼 볼거리가 배가됐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리움미술관 입구. <사진=조현희기자>

리움미술관에 전시 중인 로댕의 '칼레의 시민'. <사진=조현희기자>
◆리움미술관
도심 한복판에 있는 미술관은 또 어떤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언덕에 자리한 리움미술관은 한국을 대표하는 사립미술관 중 하나다.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리움은 한국의 고미술과 현대미술, 외국의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소장품을 자랑한다. 국내외 거장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이유다. 현재 고미술 소장품 상설전과 현대미술 소장품전이 진행 중이다. 특히 현대미술 소장품전에서는 로댕의 '칼레의 시민', 자코메티의 '거대한 여인', 얀 보의 '우리 국민은' 등을 선보인다.

리움미술관 내부의 상징적 건축 공간인 나선형 계단. 중앙 창에 김수자의 '호흡' 작품이 설치돼 있다. <사진=조현희기자>

리움미술관 내부의 나선형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신비로운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사진=조현희기자>
리움은 건물 내부를 둘러보는 재미도 있다.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세계 건축계의 거장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콜하스가 10년을 걸쳐 만들었다. 가장 상징적인 공간은 나선형 계단이다. 고미술 소장품 상설전 관람 시 4층에서부터 시작해 1층으로 내려오면 되는데, 이 로툰다를 밟고 내려오게 된다. 계단 중앙 창에는 김수자의 작품 '호흡'이 설치돼 있고, 빛과 공간, 작품이 어우러진 신비로운 풍경이 펼쳐지는데 반시계 방향으로 걷기 때문에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문화 인프라가 풍부한 한남동에 자리해 인근 문화공간에 함께 방문하며 하루 일정을 이어가기에도 좋다.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 뮤지컬 전용극장 블루스퀘어, LP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동서식품이 운영하는 커피 복합문화공간 맥심플랜트 등이 있다.

부산 사하구 을숙도 내 위치한 부산현대미술관 외관. 외벽에 식물 175종이 자생한다. <사진=조현희기자>
◆부산현대미술관
낙동강 하구 을숙도에 위치한 부산현대미술관은 '자연·뉴미디어·인간'을 주요 의제로 상정하고 운영한다. 세계적인 식물학자 패브릭 블랑의 대규모 설치작업으로 건물 외벽 전체를 175종, 4만4천여개의 식물로 채웠다. '수직정원'이라는 작품이다. 미술관 외부에서부터 예술을 접하게 된다. 독특한 새 로고로 주목받기도 했는데, 2023년 시민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로고를 '부산 모카(Busan moCA)'라는 문자 심볼 마크로 변경했다. 모카(moCA)는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의 약어다. 부산(Busan)을 앞에 내세워 도시의 정체성을 더 드러냈다.

SEOM(섬) 작 '감각을 따라 걷기'
전시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 고령자·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 국제 기획전 '열 개의 눈'이 다음 달 7일까지 관람객들을 맞는다. 로버트 모리스, 에밀리 루이스 고시오, 김채린, 김은설 등 국내외 예술가 20명이 참여하고, 7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손가락을 눈에 비유한 전시 제목처럼, 일부 작품은 눈 대신 손으로 작품을 만지며 감상할 수 있다. 헤드셋으로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수어로 진행되는 전시 투어도 마련됐다.
전시 관람을 마친 뒤에는 건너편에 위치한 을숙도철새공원을 걸어도 좋다. 초록빛 잔디가 끝없이 펼쳐진다. 시간이 남는다면 자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다대포해수욕장에 방문하는 것도 추천한다. 일몰 풍경이 장관이다.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