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미술 변곡점’ 예술사적 의미 조명
흐름 동참한 2세 6인 작품 77점 전시
11월29일까지 대구 권정호미술관
권정호 '어느날 밤'. <권정호미술관 제공>
한국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으로 기록되는 '신형상 미술(Neo-Figural Art)'의 예술사적 의미를 되짚어보는 전시가 대구에서 열린다.
권정호미술관은 오는 11월29일까지 제1·2전시실에서 '신형상 미술, 삶의 언어가 되다' 전(展)을 개최한다.
◆ 신형상미술, 파격적 형상과 색채의 부활
안창홍 '유령패션13'. <권정호미술관 제공>
전시장에 들어서자 한 작품에 눈길이 꽂힌다. 작품 하단에 자리한 두 개의 해골 모습이 두려움을 준다. 하지만 머리 위로 노랑, 빨강 등의 불꽃 같은 형상이 공포감을 줄여준다. 해골 가운데 있는 빨강, 노랑, 주황 등 화려한 색상의 불기둥도 긴장을 풀어준다. 권정호 작가의 작품 '어느 날 밤'이다. 권 작가는 오랫동안 해골을 주된 소재로 작업해왔다. 그의 해골은 '죽음'과 '저항'을 상징한다. 해골을 통해 죽음으로 치닫는 현대사회를 비판하고 현대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저항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미국 프랫대학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 후 처음 연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됐다.
전시장을 쭉 둘러보니 안창홍 작가의 작품 '유령패션13'도 눈길을 끈다. 치열한 삶의 현장과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우화적으로 표현하는 안 작가의 이 작품은 기존 화풍과는 다르게 보인다. 흰색과 검은색 실로 우아한 원피스를 만들었다. 원피스 밑에는 분홍색 깔개가 눈길을 끄는 흰 구두가 있다. 그 작품 옆으로는 노란 원피스에 초록색 물감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담은 작품, 베이지 재킷과 빨간 바지 차림에 검정 물감이 흘러내리는 작품 등이 함께 걸려 기괴한 아름다움을 준다. 이러한 파격적인 형상과 색채의 부활은 1970년대 단색조 미술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됐다.
신형상 미술은 절제와 여백의 미학에 천착했던 1970년대 단색조 위주의 '미니멀 아트'를 넘어 형상과 색채의 회복을 추구했던 미술 흐름이다. 삶의 거친 숨소리와 뒤틀린 욕망을 노골적인 형상과 강렬한 원색으로 표현한 이 미술사조는 신표현주의와 맥락을 함께하며 국내 미술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바 있다.
◆ 한국현대미술 2세대 대표주자 대거 참가
유휴열 '생·놀이-관계'. <권정호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에는 한국현대미술 제2세대를 대표하는 김정명, 서용선, 안창홍, 권정호, 유휴열, 황현수 작가가 참여해 회화·조각·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77점을 선보인다. 6인의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신형상 미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특히 이번 전시는 198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던 '신형상 미술'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인간의 자의식을 재해석해온 김정명 작가는 거장의 작품과 콜라주한 작품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역사 속 인물의 모습에 주목해 온 서용선 작가는 역사를 현재화하는 작업을 통해 관람객에게 깊은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전통의 현대적 변용을 모더니즘적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유휴열 작가, 그리고 인간의 조건과 존재의 이유에 대해 차분한 시선으로 접근하는 황현수 작가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권정호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미국 유명 예술잡지 '아트 포럼' 1986년 2월호.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이번 전시를 기획한 권정호 미술관장은 1980년대에 작업했던 해골 소재 작품들을 전시장에 내걸었다. '어느 날 밤' '해골 소름' '원혼들'과 같은 작품들은 오늘날 권 작가의 정체성이 된 '해골' 작품의 원류로 평가된다. 전시장 한편에는 권 작가의 작품이 소개된 미국 유명 예술잡지 '아트 포럼' 1986년 2월호가 전시돼, 세계 현대미술 무대에서 활동했던 그의 이력을 엿볼 수 있다.
미술평론가 김복영 박사(전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는 "이들의 역사가 곧 한국의 형상미술 역사라 해도 결코 손색이 없을 것"이라며 참여 작가들의 예술적 위상을 강조했다.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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