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시대, 문화로 나라 지킨 간송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장 특별강연
‘문화보국’의 숭고한 정신 재조명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장이 지난 3일 미술관 강당에서 개관 1주년 기념강연 '간송 전형필 선생의 삶과 문화유산' 특강을 펼치고 있다.<대구간송미술관 제공>
대구간송미술관이 개관 1주년을 맞은 지난 3일, 미술관 강당은 150여 명의 관람객으로 만원을 이뤘다.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 관장이 미술관의 첫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간송 전형필 선생의 삶과 문화유산'이라는 주제의 특강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날 전 관장은 "이렇게 많은 분들이 1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로 강연의 막을 열었다. 일제강점기라는 격동의 시대, 문화로 나라를 지킨 한 위대한 인물의 이야기가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대구간송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강연 '간송 전형필 선생의 삶과 문화유산' 이 진행 중인 미술관 강당이 관람객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다.<대구간송미술관 제공>
◆위창 오세창 선생과의 만남에서 비롯된 문화보국 정신
전 관장은 자신의 할아버지이기도 한 간송 전형필(1906~1962) 선생을 단순한 수집가를 넘어선 '문화 선각자이자 교육가'로 소개했다. 전 관장은 "간송께서는 1906년, 부유한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지식인으로서 무기력함에 고뇌하던 간송은 스승인 위창 오세창 선생을 만나 '무력은 문화를 이길 수 없다'는 '문화보국'의 신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간송은 개인의 취향을 넘어, 민족의 우수성을 증명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유물을 수집하는 데 전 재산을 바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었다.
◆식민지 시대의 혼란 속에서 지켜낸 문화유산
강연의 백미는 단연 간송 컬렉션 수집 과정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들이었다. 전 관장은 간송의 굳건한 의지와 지혜가 빛났던 순간들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특히 대구간송미술관의 대표 소장작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전 관장은 "일본인 도자기 수집가가 엄청난 금액을 제시하며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팔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간송은 이보다 더 좋은 청자를 가져오면 정당한 가격으로 사겠다고 정중히 거절하며, 그의 굳은 의지와 명성을 전국적으로 알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형태적으로도 가장 완성도가 높은 청자로 평가되며, 당시 고려의 청자가 반도체나 스마트폰처럼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던 '명품'이었음을 증명하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대구간송미술관 제공, ⓒ 대구간송미술관>
한글 창제의 원리와 사용법을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 역시 간송과 뗄 수 없는 문화유산이라고 했다. 전 관장은 "훈민정음 해례본은 간송께서 1940년, 일제의 탄압을 피해 안동에서 비밀리에 구한 것이다. 당시에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소유 만으로도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특히 해례본 소장 이후의 행보가 중요하다. 1940년, 한글학자 홍기문과 민속학자 송석하 두 분을 몰래 초대하셔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개하고 필사를 허락하는 등 한글을 지키는데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부연했다.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에 대해서는 조선시대 멋쟁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일종의 '인스타그램'과 도 같은 존재였을 것이라고 했다. 전 관장은 "간송이 당시 일본으로 넘어간 화첩을 손에 넣기까지 4년의 세월을 보냈을 정도로 '이것은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셨던듯 하다. 실제로 이 화첩은 예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18세기 조선의 화려한 풍속과 복식사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혜원 신윤복 '혜원전신첩- 연소답청'.<대구간송미술관 제공, ⓒ간송미술문화재단>
또한, 전 관장은 일본에서 활동했던 영국인 변호사 존 개스비의 고려청자 컬렉션이 간송의 품으로 넘어온 일 등 다양한 문화유산 수집 일화을 거론하며 "간송의 이 같은 선견지명과 헌신이 그를 단순한 수집가를 넘어선 문화 운동가로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간송 전형필 선생 .<대구간송미술관 제공, ⓒ간송미술문화재단>
◆민족 교육의 불씨를 지킨 교육가
전 관장은 민족 교육에 동참한 교육가로서 간송의 면모도 강조했다. 3·1 운동을 주도했던 민족 사학 보성학교가 폐교 위기에 처하자, 간송이 사재를 털어 학교를 인수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전 관장은 "일제강점기 말, 보성학교는 일본인 교장 없이 조선어와 조선 역사 교육을 이어가며 민족 교육의 불씨를 지켜냈다"며 학생들에게도 자유와 문화의 소중함을 전파한 간송의 교육 철학을 설명했다.
한편, 이날 강연에서는 간송 전형필 선생의 휘문고 재학시절 스웨터 차림 사진 등 평소 언론에서 잘 볼 수 없었던 간송의 모습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 관장은 "간송께서는 단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닌 그것을 실천하는 분이셨다. 오늘 강연은 이러한 한 인간이 암울한 시대적 상황과 만났을 때 어떠한 영향을 사회에 줄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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