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추석 연휴가 오는 10일을 포함하면 최장 열흘에 이르며 연휴 기간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늘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역대급 황금연휴가 다가왔다. 올해 추석 연휴는 개천절과 한글날이 맞물려 있다. 오는 10일이 대체공휴일로 지정되고 주말까지 더하면 무려 열흘에 이른다. 평년보다 긴 연휴로 이어지며 올해 명절은 특히 다른 풍경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전통적인 의미의 명절이라 하면 보통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거나 전을 부치는 모습이 떠오른다. 요즘 명절은 전보다 다양한 모습을 띤다. 추석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날이라는 인식이 깨지고, 각자의 상황에 맞게 연휴를 즐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최장 열흘에 이르는 올해 연휴의 새로운 풍경을 담아봤다.

지난해 추석 황금연휴를 하루 앞둔 9월13일 대구국제공항을 찾은 여행객들이 일본 오사카행 비행기 탑승수속을 위해 길게 줄지어 있다. <영남일보 DB>
◆10명 중 4명 "여행 계획 있다"…해외여행 수요↑
직장인 박선영(26)씨는 올 연휴 미국으로 떠나기로 했다. 7박8일 동안 뉴욕을 비롯한 미국 동부지역을 여행한다. 10일이 대체공휴일로 지정되지 않는다면 이날 연차를 사용하고 11일에 귀국한다는 계획이다. 박씨는 "명절마다 가족들과 큰집에서 모이긴 하지만 이번엔 혼자 여행을 다녀오려 한다"며 "짧은 연휴였다면 국내에 머물렀겠지만, 이번엔 장거리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기간이라 이 틈을 타 평소 가기 힘든 나라에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올 연휴는 여행을 떠나는 경향이 특히 두드러진다. 지난달 29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한국교통연구원의 '2025년 추석 통행실태 조사 결과'(9천911명 응답)에 따르면, 응답자의 40.9%가 올 연휴 '여행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89.5%는 국내여행을, 10.5%는 해외여행을 다녀올 것이라 응답했다. 지난해 같은 조사 결과 '여행 계획이 있다'는 비율이 23.7%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대폭 증가한 수준이다.
특히 평년보다 긴 연휴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눈에 띈다. 지난달 29일 트립닷컴에 따르면, 3일부터 12일까지 해외로 나서는 한국인 여행객은 전년보다 약 80% 증가했다. 항공 예약의 62%는 일본, 동남아 주요국 등에 집중돼 단거리 여행 수요가 두드러졌다. 연휴 전부터 매진 노선이 속출하고, 가격이 평시 대비 2배 넘게 오르기도 했다. 여행을 일찍 계획한 이들은 장거리 해외 여행지를 선호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14면에서 계속

지난해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9월13일 오후 경찰청 헬기에서 바라본 경기 용인 신갈IC 인근 경부고속도로가 귀성 차량 등으로 정체되고 있다. 연합뉴스
◆3천218만명 국내외 이동…기차표 예매 전쟁
올 연휴는 약 3천218만명이 국민이 국내외로 이동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 가운데 국내 이동은 대부분 승용차로 할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부는 2일부터 12일까지 11일 간을 추석 연휴 특별 교통 대책기간으로 지정했다. 대책기간이 6일이었던 지난해 추석보다 8.2% 많은 국민이 이동한다. 특히 추석 당일인 6일 가장 많은 933만명이 이동할 전망이다. 긴 연휴로 이동 인원이 분산되며 일평균 이동은 작년보다 2% 감소한 775만명으로 예측됐다.

추석 연휴 승차권 예매 첫날인 지난달 17일 코레일 홈페이지에 접속하자 뜬 예매 접속 지연 화면. <코레일 홈페이지 화면 캡처>
기차표 예매 전쟁도 벌어졌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따르면, 추석 연휴 승차권 예매 첫날인 지난달 17일 총 126만석이 팔렸다. 대상 노선 전체 예매율은 73.3%로 나타났다. 예매는 경부선과 경전선, 경북선, 대구선, 충북선, 중북내륙선, 동해선, 교외선 등을 대상으로 이뤄졌는데, 전체 172만3천석 중 126만3천석이 판매됐다. 지난해 첫날과 비교하면 2배 증가한 수치다. 예년보다 많은 이용객이 몰리며 첫 예매가 시작된 오전 7시부터 모바일 앱 코레일과 홈페이지에서 접속 지연이 발생했다.

지난해 추석 황금연휴를 하루 앞둔 9월13일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대구국제공항을 찾은 한 가족이 가족여행을 위해 탑승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영남일보 DB>
◆64% "차례 안 지낸다"…성묘객도 40%에 그쳐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크게 늘면서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는 이들도 크게 증가했다. 롯데멤버스 자체 리서치 플랫폼 '라임(Lime)'은 전국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8~29일 진행한 추석 계획 설문조사를 지난달 25일 공개했다. 조사에 따르면 올 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자는 64.8%로 전년 대비 16.4%포인트 늘었다. 워킹맘 김모(40)씨는 "아이들까지 챙기면서 제사 음식을 직접 준비하는 게 벅찼는데, 형제들이 '차례상 차리느라 너무 힘 빼지 말자'고 먼저 얘기해 차례를 과감히 생략했다"며 "대신 각자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라임(Lime)이 전국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2025년 추석 계획 설문조사. <라임 제공>
차례를 지낸다고 답한 이들 중에서는 67.6%가 '온 가족이 모여 차례 음식을 직접 만들 예정'이라고 답했다. '각자 집에서 차례 음식을 만들어 올 예정'(23.9%)이거나 '시중에 판매하는 차례 음식을 살 예정'(8.5%)라는 답변도 있었다. 한편 성묘를 가지 않을 예정이라는 응답자도 40.7%에 달했다. 성묘를 갈 예정이라는 응답자 중 35.5%는 추석 당일(20.7%)을 포함한 '추석 연휴'에 방문하겠다고 답했다.

추석을 앞둔 지난달 14일 오전 대구 북구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진열된 추석 선물세트를 살펴보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선물은 늘어…비대면 선물하기 기능 인기
선물과 소비 행태도 변하고 있다. 차례를 지내는 경우는 줄었지만, 추석 선물을 주고받는 소비자는 증가한 아이러니한 현상이 나타난다. 농촌진흥청이 소비자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명절 농식품 구매 행태' 조사 결과, 이번 명절에 추석 선물을 주고받겠다는 소비자는 68.4%로 설(54.8%)보다 늘었다. 주요 구매처는 대형마트(41.5%)와 온라인몰(33.0%)이 가장 많았다.
특히 온라인 구매 시 '온라인 선물하기' 기능이 인기다. 사정상 직접 선물을 전하지 못할 경우 비대면으로 간편하게 선물을 보낼 수 있어서다. 연휴에 여행을 계획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온라인 선물하기 선택도 더욱 늘고 있다. 올 연휴에 미국 여행을 떠나는 박모씨는 "연휴 대부분을 여행지에서 보내다보니 부모님께 직접 선물을 챙겨드리기 어려울 것 같아 카카오톡 선물하기 기능으로 건강식품을 보내드렸다"며 "간편하면서도 멀리서 마음을 전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8월21일부터 지난달 18일까지 카카오톡 선물하기 채널을 활용한 롯데마트 선물세트 판매량은 전년 추석 직전(2024년 8월2일~8월30일)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롯데마트는 늘어나는 간편 선물 수요에 대응해 올 추석 카카오톡 선물하기 운영 상품을 약 20% 늘렸다.
농촌진흥원 조사 결과 차례를 지내는 이들 중 92%는 '예년보다 간소화하겠다'고 응답했다. 차례 음식을 전부 직접 조리한다는 비율은 30.1%에 그쳤다. 떡류·전류·육류 등 손이 많이 가는 품목은 반조리·완제품을 활용하겠다는 응답이 많았다. 제수용 과일 선택 기준도 겉모양보다 맛과 가격을 더 중시하는 실속형 구매가 늘어날 것으로 집계됐다. 소비자들은 차례상 과일 구매 시 외관(42.7%), 맛(32.5%), 가격(18.4%), 원산지(6.4%) 순으로 고려했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귀성 대신 혼자 취미 생활을 즐기며 심신을 달래는 '혼추족'도 나온다. <챗GPT 생성>
◆"귀성 대신 취미생활"…MZ선 '혼추족' 확산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혼자 명절을 보내는 '혼추족'도 나온다. 새해를 시작하며 가족들과 덕담을 나누는 설과 추석은 성격이 다른 데다, 올 연휴는 특히 자신에게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이들은 연휴 기간 고향에 가는 대신 취미 생활을 즐기며 심신을 달래거나, 밀린 공부를 하는 등 자기계발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 대학원생 성모(28)씨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부모님과 상의하고 귀성 대신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며 "평소 가보지 못한 공연장과 미술관에 가서 문화생활을 즐기고, 집에서 OTT를 보며 힐링할 예정"이라고 했다.

편의점 CU 모델들이 매장에서 혼추족을 위한 '한가위 간편식 시리즈'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혼추족들을 겨냥해 유통업계도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명절 도시락을 내놨다. 편의점 GS25는 추석 연휴를 맞아 '혜자추석명절도시락'을 전국 매장에서 9일까지 선보인다. 밥과 함께 고추장갈비양념제육, 너비아니구이, 잡채, 3색나물(도라지·고사리·명태무말랭이무침), 모둠전(산적·동그랑땡·김치전) 등으로 구성된 도시락이다. CU는 예년 1종이었던 추석 간편식 종류를 7종으로 늘려 출시했다. 대표 상품으로 '한가위 11찬 도시락'이 있다. 떡갈비와 오미산적, 표고버섯전, 부추전, 김치전 4종과 고사리·시금치 등 나물, 떡으로 구성됐다.
이 같은 요즘 추석 풍경에 대해 허창덕 영남대 교수(사회학과)는 "명절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구조와 생산 양식을 반영하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라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변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전했다.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