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 페인팅, 마르기 전 완성하는 ‘고속도로 작업’
사이버 불링, 예술로 승화시킨 애플 시리즈
대구 첫 전시 위해 청문당서 관람객과 소통 눈길
지난 21일, 자신의 전시 오프닝을 위해 대구 청문당을 방문한 권지안 작가가 관람객들 앞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지난 21일, 가수 '솔비'로 널리 알려진 권지안 작가가 대구 북구 경북대 북문 인근 복합문화공간 청문당을 찾았다. 오는 11월22일까지 청문당에서 열리는 자신의 초대전 '언어의 리듬'展(전) 오프닝에 참석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이날 '작가와의 만남'을 위해 청문당 루프톱에서 관람객 및 팬들과 마주한 권 작가는 자신의 예술세계와 창작배경을 솔직담백하게 풀어내 눈길을 끌었다.
전시명 '언어의 리듬'은 권 작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직접 지은 타이틀이다. 언어가 품은 강한 힘과 리듬을 최대한 근사하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특히 대구에서의 첫 전시를 상업갤러리가 아닌 청문당과 같은 문화공간에서 연 것에 대해 "대중과 허물없이 호흡하며 공감을 나누고 싶었다"며 그 의미를 강조했다.
가수 출신인 권 작가에게 음악과 미술은 불가분의 관계다. 청문당에서 선보이는 대표 연작인 '허밍레터 시리즈'는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향한 슬픔과 그리움을 허밍(멜로디)으로 풀어낸 뒤 이를 모네의 정원 등에서 받은 영감을 통해 시각화한 작품이다. "돌아가신 아빠가 계신 하늘나라의 언어를 모르겠는 거예요. 아빠랑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뭘까 고민하다가 허밍을 시각화하게 됐습니다. 감정을 언어에 규정짓지 않고 그림의 자율성으로 풍부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지난 21일, 자신의 전시 오프닝을 위해 대구 청문당을 방문한 권지안 작가가 관람객들 앞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권지안 작가가 지난 21일, 청문당 루프탑에서 열린 '작가와의 만남' 행사 중 관람객들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작업 방식도 독특하다. 물감을 손가락으로 직접 다루는 핑거 페인팅을 고수한다. "저는 한 번 그림을 시작하면 그 그림이 마르기 전에 작업이 끝나야 합니다. 재료 특성상 질감을 두껍게 사용해서 굳어버리기 전에 한 번에 쭉 해야 해요. 팔레트도 따로 쓰지 않고요. 거의 쉬지 않고 달리는 고속도로처럼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두꺼운 질감과 흔들리는 모양새의 추상적 부분은 '바람'을 표현한 것인데, 여기에는 바람을 통해 살아있는 그림을 만들려는 권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권지안 'Humming Letter'
권 작가의 또 다른 대표작인 '애플 시리즈'는 '사과는 그릴 줄 아니'라는 온라인상의 조롱에서 시작됐다. 권 작가는 이러한 언어 폭력을 알루미늄 등 메탈의 차가운 질감으로 재탄생시켰다. "사이버 불링을 주제로 작업한 이유는 '이거는 저밖에 할 수 없겠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 스스로가 피해자이기도 했고, 이 사회적 문제를 작업으로 표현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악플과의 싸움을 예술로 끌어올린 배경에 대해 "연예인 작가니까 할 수 있는 특별한 주제 의식이 뭘까 고민했다"며, 자신의 정체성을 담아 사회적 메시지를 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청문당에 전시 중인 권지안 작가의 '애플 시리즈' 작품(사진 왼쪽). 오른쪽에 자리한 스크린에서는 작품의 모티브가 됐던 온라인상의 조롱 문구들이 나오고 있다.<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특히 권 작가는 악플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강하게 피력했다.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는 말, 저는 진짜 싫어합니다. 왜냐면 차라리 무관심이 나아요. 온라인 세상에서 얼굴 보고 할 수 없는 말은 하면 안 되는 겁니다. 그 감정 배설은 굉장히 문제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어 권 작가는 이러한 문제가 청소년과 일반인에게까지 퍼진 사회 문화임을 지적하며, "잘못된 댓글 문화는 정말로 정화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올해로 미술 활동 15년 차를 맞은 권 작가는 '음악과 그림, 그리고 여행'을 자신의 삶으로 정의했다. 권 작가는 "캔버스에 아름다운 걸 담고 건강한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좋은 것들,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보고 느껴야 한다"며 청문당을 찾은 자신의 팬들에게 꾸준한 활동을 약속했다.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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