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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일의 방방곡곡 길을 걷다] 임원항과 수로부인 헌화공원

2025-11-06 13:27
남화산 전망대에서 본 임원항. 임원항은 어족 자원이 풍족하고 바닷물이 깨끗하기로 첫손으로 꼽히는 항이다.

남화산 전망대에서 본 임원항. 임원항은 어족 자원이 풍족하고 바닷물이 깨끗하기로 첫손으로 꼽히는 항이다.

항구에 가면 습관처럼 가슴이 뛴다. 산골에서 태어나 자라난 나에게 항구는 설레는 여행지다. 호랑이 등뼈 근육 같은 7번 국도를 벗어나면 부근에 임원항은 불현듯 나타나는 상상의 풍경이었다. 도로 양쪽 횟집이 빼곡하게 들어섰고 비린내가, 아마 자연산 활어인 듯, 거리를 질펀하게 만들었다. 해안을 을러대는 파도는 관광객들을 거침없이 유혹하는 바다의 배꼽 인사 같기도 했다. 그러나 해변에 호적을 둔 갈매기들의 비행과 키득거리는 울음은 무슨 푸닥거리처럼 감정을 들뜨게 한다. 날개 위는 회색이고 꽁지 말미는 검다. 부리와 다리가 노랗고 나머지 몸통은 백 회색을 띤다. 겨울엔 머리에 갈색 줄무늬가 생긴다. 바닷물을 마시는데 몸 속으로 들어간 염분을 걸러내기 위해 눈 위 소금샘에서 눈물로 내보낸다. 갈매기의 눈물은 그래서 짜다. 사람의 눈물에는 기쁨과 분노 사랑과 슬픔이 숨어있지만. 바다 위 허공에서 뭍의 그리움을 퍼 나르는 임원항의 갈매기여. 이제 내 마음 빈자리까지 날아와 선회하는구나.


누가 뭐래도 수산센터가 임원항을 찾는 이들의 제일 순번이다. 현대식 아케이트 천장에 양편으로 줄을 선 횟집 상가는 복닥거렸다. 횟집마다 수족관에 싱싱한 활어들이 헤엄친다. 함지박에도 활어들이 파닥거리고 있다. 커다란 홍색 대야에 펑퍼짐한 광어가 배를 깔고 있는 모습, 살아있는 오징어들이 물을 내뿜으며 유영하는 모습, 그 옆 가게 수족관에는 가자미 열기 볼락회가 오도독 씹히는 감성돔도 구경할 수 있었다. 삼척에서 가장 신선한 회를 먹고 싶다면 임원항으로 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현장에 가보면 그 말의 답을 알게 된다. 임원항은 어족 자원이 풍족하고 바닷물이 깨끗하기로 첫손으로 꼽히고 사계절 내내 여러 종류 싱싱한 바다 고기가 잡히는 어항이다. 조금 전 주차장에서 건너온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냇가 징검다리 아래로 새끼 숭어들이 바글바글하였다. 어류들이 살아가기에 천혜의 항구이다. 회 센터를 거의 다 지나가도 손님을 붙잡는 호객 행위와 가격표에는 거품이 없었다. 횟집 상인들도 강원도 감자 바위처럼 순박하고 바라보는 눈빛이 맑고 따뜻했다.


수로부인 엘리베이터와 이어진 붉은 아치형 터널과 텍길.

수로부인 엘리베이터와 이어진 붉은 아치형 터널과 텍길.

밖으로 나와 내항의 난전으로 간다. 해산물이나 활어회를 즉석에서 썰어내는 노점. 때론 이런 노점이 뜬 소문 없이 뛰어난 맛집인 경우가 많았다. 바다를 바라보며 싱싱한 회를 안주로 한잔할 수 있는 간이 테이블과 이 지역의 풍경을 함께 쌈 싸서 먹는 맛 기행의 정점에 올라타는 임원항의 숨은 야장 포인트가 이곳이다. 도다리 가자미 쥐치와 눈맞춤을 해본다. 5~6월이면 깨다시 꽃게가 제철이라는데 내년 그맘때쯤 임원항에 또 올 수 있으려나. 툭 눈 금붕어 두 마리가 나는 빤히 보는 것 같다. 저렇게 불거진 눈이라면 의사당 있는 여의도 횟집으로 가는 게 옳을 것인데. 부두 아늑한 자리 어딘가에 빈 의자 하나 덜렁 놓여있다. 누구를 기다리는지. 사방은 고스란히 항구의 리드 미 컬한 풍경뿐. 바닷바람이 불면 파도가 울고 갈매기도 운다. 이렇게 정겨운 부두를 벗어나야 할 때, 나도 모르게 울게 된다. 우리 모두 그렇게 된다. 슬픔만이 눈물을 떨어지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나저나 이제 수로부인 헌화공원으로 간다. 방형의 엘리베이터 탑에는 10인승 두 대가 운행하여 조금도 불편함이 없었다.


수로부인 헌화공원의 수로부인 조형물. 헌화가와 해가가 그 유래다.

수로부인 헌화공원의 수로부인 조형물. '헌화가'와 '해가'가 그 유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붉은 프레임 아치형 터널을 지난다. 덱으로 옮겨 걷자 전망대가 있다. 임원항의 전모와 동해가 조망된다. 갑자기 돌변한 풍경에 흠칫 놀란다. 여기는 해돋이가 유명한 남화산 중턱이다. 덱이 끝나면 야자 매트 고무 매트가 이어 깔려 비 와도 미끄럼을 방지할 수 있다. 울창한 대와 나무숲 녹음이 바다까지 번져나가 바다를 더 푸르게 하였다. 동해는 우리 꿈의 바다였는데, 더 멀고 아득한 갈망의 바다를 등지고 수로부인을 형상화한 거대한 조형물이 있었다. 누구라도 현장에 가면 거기에 먼저 들리게 된다. 조형물 하단에 소개 글이 쓰여 있다. '헌화가'와 '해가'가 그 유래다. 신라 성덕왕 시대, 순정 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해 가던 중 삼척을 지나며 잠시 쉬게 되었는데, 시절은 봄이라 절벽 위에 아름다운 철쭉꽃이 피어 있었다. 신라 절세미인으로 알려진 수로부인이 좌우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저 꽃을 꺾어다가 나에게 줄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시종들은 멀뚱멀뚱 서로 쳐다보다가 절벽이 위험해 올라갈 수 없습니다 하였다.


임원항을 낀 수로부인 헌화공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된다.

임원항을 낀 수로부인 헌화공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된다.

그때 마침 소를 몰고 지나가던 노인이 그 말을 듣고 절벽에 올라가 꽃을 꺾어다가 바치고 가사를 지어 부른 노래가 4구체 향가인 '헌화가'다. "자줏빛 바닷가에 암소 잡은 손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럽게 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겠나이다." 젊음과 늙음, 남과 여, 신분의 격차를 넘어선 순정의 철쭉꽃, 인간 삶의 뿌리를 시각으로 풀어낸 향가 리듬과 그 깊숙한 인간애. 헌화가는 신라인 마음을 두고두고 울리는 노래가 되어 이어지다 오늘날까지 부르게 되었다. 거대 석상 둘레에 '해가'도 있다. 내용은 이러하다. 그리고 이틀을 더 가다 임해정에서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바다 용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납치해 바다로 들어가 버렸다. 이에 모두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데, 이를 목격한 한 노인이 말하였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여러 사람의 말은 무쇠라도 녹인다 하였소. 경내의 백성들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막대기로 언덕을 두드리면 부인을 다시 찾을 것이요" 하여 순정 공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막대기로 땅을 두드리며 '해가'를 부르니 부인이 돌아왔다. '해가'는 이렇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남의 아내 앗을 죄 그 얼마나 큰가? 네 만약 어기고 바치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참 단순하고 간절하다. 아마 당시 신라에는 해적이 있어 부귀한 자들을 습격 사람을 인질 잡아 금전을 요구하고 해결되면 인질을 풀어놓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그냥 자유로운 상상이다.


남화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해. 청명한 날 육안으로 울릉도를 볼 수 있다.

남화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해. 청명한 날 육안으로 울릉도를 볼 수 있다.

수로부인 헌화공원에는 순정 공과 다수 조형물이 있었으나 왠지 헌화가와 해가 4구체 향가설화에 흠집을 만드는 것 같아 지나쳐 버린다. 공원 정상에 오른다. 다양한 포토존과 탁 트인 허공. 가물가물한 바다. 이렇게 허허로운 풍광을 보는 내 눈에 어떤 색이 묻어나올까. 여기도 안내판이 있다. "현 위치는 해발 135m이고 동해상에서 울릉도와 최단 거리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곳에서 울릉도 간 거리는 약 137㎞로서, 바다 위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거리는 약 153㎞임을 감안할 때, 이 지역은 청명한 날 육안으로 울릉도를 볼 수 있는 거리에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삼척에서 울릉도를 보았다는 다수 기록이 남아 있고, 최근 삼척 지역에서 울릉도를 촬영한 사진을 보시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카페로 들어간다. 통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바다와 산 그리고 공원의 전경까지 한눈에 잡히는 뷰였다. 커피 향과 은은한 음악. 저 먼바다 어딘가에 떠 있을 울릉도가 흐릿한 실루엣으로 환상의 공간을 만든다. 너무 좋아서 두 손 움켜쥐면 그건 기도의 동작을 닮았다. 나는 몸이 이완되는 안락의자에 앉았으면서도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우리의 가난한 영혼이 어디론가 걸어가는 동안, 어느덧 연민은 주름살이 되고 멈출 때마다 내면에서 간절한 구원을 기다리는 나이가 되었다. 오늘 트레킹은 그렇게 걸으면서 궁금해하던 어떤 삶의 해답을 제때제때 우리에게 밑줄 쳐 주었다.


글=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유판도 여행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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