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도박 중독'의 늪에 빠진 청소년의 '일상 회복'을 위해선 사회 공동체 모두의 지지와 적극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상담 현장에선 청소년이 '도박 없는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가족 개입'이 동반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학계에선 제도적 개선을 통한 '치료 명령의 강제화'와 '경찰·지자체 간 긴밀한 협조'가 절실하다는 견해를 내놨다.
◆"중독 회복 위해선 가족의 관심 필수적"
유승훈 대구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장. 본인 제공
유승훈 대구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장은 청소년 도박중독이 혼자만의 의지만으론 쉽사리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에 주목했다. 가족 등 외부의 적절한 개입과 치료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게 유 센터장의 지론이다. 유 센터장은 "한국 사회에선 도박에 대한 인식이 너무 부정적이어서, 중독 청소년을 지원하는 일이 큰 걸림돌에 부딪히곤 한다"며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센터는 청소년이 도박 문제를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자, 청소년과 가족을 원팀(One Team)으로 만들어 회복을 돕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센터에서 이뤄지는 청소년 도박중독 상담은 평가·개입·재발 예방·사후 관리 4단계로 진행된다. 이 중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단계는 바로 '평가' 단계이다. 도박 문제 심각도, 도박을 처음 시작하고 중독에 이르게 된 원인, 심리적 특성 등 청소년과 그들의 부모님 상담을 통해 도박중독을 다각적으로 탐색한 후 이렇게 얻어진 정보들을 토대로 상담이 진행돼서다. 유 센터장은 "청소년 도박 상담은 '도박을 중단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넘어서 의사소통 기술 훈련, 경제관 교육, 그리고 가장 핵심적으로 진로상담을 포함한 다양한 접근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며 "이를 통해 청소년들이 건강한 가치관을 가지게 될 때 비로소 '도박은 도움이 안 돼요'와 같은 말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부모가 자녀의 변화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는 게 도박중독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했다. 그는 "도박을 접한 청소년은 극심한 감정 기복이나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를 단순한 사춘기 행동으로 넘기면 치유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용돈을 반복해 요구하거나 갑작스럽게 값비싼 물건이 생기는 등 돈 사용 패턴의 변화·늦은 귀가·휴대전화를 놓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모습도 경고 신호"라며 "집안의 귀중품이 사라지거나 중고거래가 빈번하다면 특히 주의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청소년이 도박중독에서 회복하는 과정 또한 가족의 관심과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센터가 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자조 모임'을 운영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아이들이 상담에서 변화의 동기를 갖더라도 가정에서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자극을 다시 마주하는 경우가 많다"며 "부모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반드시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족 전체가 상담받아야 하고, 부모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바뀌려 할 때 자녀의 회복도 시작된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녀 도박중독 문제를 마주한 부모들의 적극적 개입과 별개로 빚을 대신 갚아주는 행동만큼은 절대 해선 안 된다"고 피력했다. 또래나 사채업자로부터 연일 추심 문자를 받으며 극심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겪던 청소년이 부모에게 문제를 털어놓은 상황이 해결되면, 순간적인 안도감과 안정감이 들어 다시 도박의 유혹에 빠질 수 있어서다. 유 센터장은 "중독 회복의 첫 번째 원칙은 본인이 벌인 일에 스스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라며 "도박으로 생긴 빚을 부모가 대신 갚아주면 책임의 부담이 사라져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도박사이트 운영자 처벌 강화해야"
계명대 김중곤 교수(경찰행정학과). 본인 제공
계명대 김중곤 교수(경찰행정학과)는 청소년 도박중독 문제가 급증하는 원인으로, 현행 법체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도박죄를 저지른 청소년에겐 소년법상 보호처분의 하나로 '도박중독치료 수강명령'을 부과한다. 중독의 정도가 높을 경우 이러한 수강명령 이행만으론 문제해결이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행 치료 감호 등에 관한 법률은 알코올·약물중독에 대해서만 치료 명령을 부과할 수 있지만, 도박중독은 적용 대상에서 아예 빠져 있다"며 "도박중독 청소년에 대해서도 전문가 진단에 따라 치료 명령을 부과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도박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청소년 도박사범의 처벌 수위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에는 "실효성이 크지 않다"며 확실히 선을 그었다. 김 교수는 "형량을 높인다고 해서 도박 중독자에게 나타나는 억제 효과가 크지 않다는 연구가 해외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됐다"며 "소년범에 대해선 처벌보다 교정을 통한 건전한 성장을 우선 추구하는 게 소년 사법 제도의 이념상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오히려 김 교수는 현행보다 더 중한 엄벌이 이뤄져야 할 대상으로 '도박사이트 운영자'라고 했다. 그는 "청소년을 도박중독의 늪으로 끌어들이는 운영자를 처벌강화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며 "이들은 본질적으로 재산상 이익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이므로 형사처벌을 통한 억제 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소년이 도박에 접근하는 대표적 경로인 불법 온라인 도박사이트가 대부분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단속 자체가 어려운 현실도 짚었다. 그는 "해외 서버 운영자를 검거하려면 해당 국가의 협조가 필수인데, 공조 요건이 매우 까다롭다"며 "설령 원활히 협조가 된다고 해도 양 국간 경찰, 법무부, 외교부 등 절차적 요소가 많아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과정에서 운영자들은 IP 변경이나 가상사설망(VPN) 우회로 추적을 따돌린다"고 했다.
청소년 도박 문제에 대응하려면 경찰-지자체 간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란 의견도 내놨다. 김 교수는 "경찰은 도박에 가담한 청소년을 발견했을 때 모두 입건하기보다 '선도심사위원회'를 거쳐 훈방이나 즉결처분 등 전환 처우를 적용하고 있다"면서도 "이런 접근은 바람직하지만,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선도 활동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이들을 실질적으로 선도할 기관과 프로그램이 현재로선 턱없이 부족하다. 지자체와 경찰이 협력해 도박중독 청소년의 상태를 면밀하게 평가하고, 맞춤형 선도프로그램을 제공할 기관·단체를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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