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적 삶에서 포착한 중간지대의 감각
위태로움 속에서 찾은 균형 눈길
차단과 연결의 모호함 속에서 ‘나’를 마주하는 시간
이혜지 '고리'.<갤러리제이원 제공>
전시장에 들어서면 경계선 위에 서 있는 듯 아슬아슬한 형상의 작품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접촉과 차단의 모호한 경계를 가르는 틈새 사이로 빛과 그림자가 교차한다. 무생물의 조합이라기엔 지나치게 유기적인 작품들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사유하는 시간과 마주할 수 있다.
갤러리제이원은 오는 28일까지 이혜지 작가 개인전 'in-between'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이 작가가 삶의 궤적에서 체감한 '사이의 감각'을 흙의 물성과 일상의 재료로 풀어낸 자리다. 완전한 합일도, 냉정한 단절도 아닌 중간 지점을 파고든 작품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이 작가의 작품 세계는 그의 유목적 삶과 맞닿아 있다. 프랑스 EESAB에서 학사를, 서울대 조소과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이 작가는 한 장소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서로 다른 문화와 환경을 오가며 살아왔다. 이러한 경험은 그에게 한 곳에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낯선 지대를 떠도는 감각을 남겼다. 정착과 이탈이 동시에 작동하는 모호한 상태에 대한 인식은 자연스럽게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 됐다.
전시는 '옮겨짐', '느슨한 연결', '접촉의 방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장소성과 경계의 의미를 확장하는 데 집중한다. 핵심은 소성된 점토로 빚어낸 고리와 기둥 작업이다. '고리'는 개별 조각들이 서로의 끝을 가볍게 걸고 있는 형상이다. 소성 과정에서 발생한 미세한 차이는 각 고리에 서로 다른 무게와 강도, 곡률을 부여한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연결은 단단히 고정된 결속이 아니다. 언제든 풀릴 수 있는 가능성을 전제로 한 관계이자, 함께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적절한 거리감과 균형을 시각화한 것이다.
이혜지 '벌레집3'
'벌레집3'은 점토의 물성과 무게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한 겹씩 쌓아 올린 기둥 작업이다. 동일한 행위의 반복 속에서도 매순간 어긋나는 형태들이 서로의 무게를 지탱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얼핏 불균형해 보이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이 기둥들은 자연의 퇴적과 축적, 느슨한 균형 속에서 공존하는 개체들의 관계 맺기를 보여준다.
이혜지 'x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갤러리제이원 제공>
이밖에도 여러 신작들에 눈길이 간다. 이 작가는 '안과 밖', '차단과 통과', '잡아두는 힘과 벗어나려는 움직임'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긴장을 시각적·신체적 경험으로 치환했다. 관람객은 이 공간을 거닐며 경계라는 것이 단순히 나뉘는 지점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역동적인 장소임을 체감할 수 있다.
갤러리제이원 관계자는 "'사이의 가치'를 조명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이혜지 작가는 감정과 긴장, 그리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게 만드는 미세한 접촉의 가능성을 작품 곳곳에 심어두었다. 이를 통해 고정된 세계가 아닌, 두 지점을 잇는 감각을 관람객과 함께 탐색하려 한다"고 말했다.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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