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준 작가의 인스타그램 웹툰 '대구대구' 2025년 10월28일편. <대구대구(@je_vandro) 캡처>
개인의 삶, 정체성 등 '나다움'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내가 사는 곳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나와 결이 맞는 공간, 취향을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찾기 위해 지역을 들여다보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최근 '로컬 콘텐츠'가 각광받는 이유다. 로컬 콘텐츠란 말 그대로 지역을 주제로 한 콘텐츠다. 시민들에겐 공감을, 출향인들에겐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외지 사람들에겐 궁금증을 자아내 관광객을 유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자체들도 관심 갖는 분위기다.
이런 '로컬 콘텐츠'로 대구의 매력을 알리는 청년들이 있다. "대구엔 놀 게 없다" "덥기만 하다" 등의 흔한 선입견을 깨부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 지역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젊은 감각이 담긴 콘텐츠로 전달한다. 이를테면 대구 사람이 운세 예측하는 법(달구벌대로 신호 타이밍), 대구 사투리 1초 만에 마스터하는 법 같은 우스갯소리부터 현지인만 아는 맛집·감성 카페 등 실용적인 정보까지 재미있고 알차게 풀어낸다. 웹툰, 쇼트폼 영상, 웹 매거진 등 형식도 다양하다.
이번 주 위클리포유에선 대구의 로컬 콘텐츠(대구대구, 노빠꾸 시골쥐의 상경일기, 우딧) 크리에이터 3인을 인터뷰했다. 세 명 모두 20대로, 특유의 빠른 트렌드 대응력과 젊은 감각을 통해 참신한 콘텐츠를 기획해나가고 있다. 인스타그램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들을 화면 너머의 '본캐' 모습으로 만나, 생생한 이야기를 들여다봤다.
제우준 작가의 인스타그램 웹툰 '대구대구' 2025년 9월20일편. <대구대구(@je_vandro) 캡처>
◆만화로 담아낸 대구 이야기…유쾌·엉뚱한 매력 '대구대구'
"대구에 이상한 곳 있던데… 아찔한 네거리?" "그런 데가 있을리가… (설마) 안지랑네거리?"
안지랑네거리를 '아찔한 네거리'로 잘못 알아들은 친구의 해프닝, 경북 칠곡의 '안상규벌꿀' 건물 간판이 보이면 대구에 다 왔다는 농담, 경산의 지역번호가 대구와 같다는 사실까지. 대구 사람이라면 무릎을 탁 치며 공감할 법한 이야기들을 유쾌한 만화로 그려내는 크리에이터가 있다. 대구 토박이보다 더 대구를 사랑하는, 경북 구미 출신의 디자이너 제반 작가다.
인스타그램 채널 '대구대구'를 운영하는 제우준 작가가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조현희기자
인스타그램에서 '대구대구'(@je_vandro)란 채널을 운영하는 그의 본명은 제우준(27). 자신의 성씨 '제'와 대구FC의 외국인 선수였던 '에반드로'를 합친 닉네임 '제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제 작가는 시각적 콘텐츠를 기획할 수 있는 계명대 광고홍보학과에 진학했다. 학창 시절부터 대구FC를 좋아해 대구에 오자마자 구단 대외활동에 참여했고, 그 계기로 대구FC 웹툰 'DMI'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군 복무를 마친 뒤에는 구단과 정식 계약을 맺고 지난해까지 공식 작가로 활동을 이어왔다.
제우준 작가의 인스타그램 웹툰 '대구대구' 2025년 10월29일편. <대구대구(@je_vandro) 캡처>
그런 그가 DMI 외의 웹툰을 연재하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인스타그램 채널을 운영한 지는 올해로 6년째지만, 대구와 관련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그려낸 건 지난해부터다. 운영 초기엔 축구 관련 작업물을 정리하는 포트폴리오 성격이 강했다. 제 작가는 "팔로워 대다수가 대구FC 팬분들이었는데, 지역 축구팀 팬의 경우 그 지역에 연고를 둔 경우가 많다"며 "독자층의 특성상 대구 전반을 주제로 콘텐츠를 넓혀도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반응은 빠르게 나타났다. 지난해 9월까지 2천명대에 머물던 팔로워 수는 지난 12일 기준 1만9천명으로 증가했다. 조회수도 한 달 1만에서 3천만까지 늘었다. '계명대 캠퍼스는 예쁘다'(2025년 10월29일) 편은 '좋아요' 수만 2만6천개에 육박한다.
'대구대구' 채널만의 인기 비결은 뭘까. 직관적인 그림과 위트 있는 대사도 한몫하지만, 무엇보다 누구나 불편함 없이 볼 수 있어서다. 제 작가는 "한 장으로 끝나는 콘텐츠가 대부분이고, 길어도 2~3장으로 구성해 짧은 시간 안에 부담 없이 볼 수 있다"면서 "정치적이거나 누군가를 '디스'하는 내용은 지양한다"고 설명했다. 엉뚱함도 '대구대구'만의 개성이다. 내륙 도시임에도 도시명 '대구'와 생선 '대구'를 결합한 채널명, 마스코트 캐릭터로 생선을 활용하는 엉뚱한 발상이 오히려 친근함을 준다.
제우준 작가가 '대구대구' 캐릭터 굿즈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현희기자
앞으로의 계획은 지역의 기관·기업들과 협업해 콘텐츠를 확장하는 것. 캐릭터를 애니메이션화하는 일도 생각하고 있다. 제 작가는 "청년 인구 유출이 심각한데, 이런 활동들로 대구를 떠나는 또래 친구들에게 지역을 돌아볼 수 있는 인사이트를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상경하며 겪는 일상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그려내는 인스타그램 채널 '노빠꾸 시골쥐의 상경일기'의 피드. <노빠꾸 시골쥐의 상경일기(@sigol__g) 캡처>
◆실패·좌절…가감없이 풀어낸 서울살이 '노빠꾸 시골쥐의 상경일기'
'취업을 포기했습니다' '사기·탈락·배신…최악의 상경썰' '경도할 사람'…. 썸네일만 봐도 궁금해지는 이 채널의 이름은 '노빠꾸 시골쥐의 상경일기'(@sigol__g). 무려 팔로워 8만4천명을 보유한 '핫한' 채널이다. 서울로 상경한 대구 출신 청년의 좌충우돌 일상을 담은 콘텐츠를 주로 업로드한다. 최근 서울살이를 다소 미화해 보여주는 콘텐츠가 다수 올라오는 가운데, 상경 생활을 솔직하게 풀어내 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대규모 술래잡기 모임 '경찰과 도둑'(이하 경도)을 확산시킨 채널이기도 하다.
인스타그램 '노빠꾸 시골쥐의 상경일기' 채널 운영자 류채우씨가 '경찰과 도둑'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류채우씨 제공>
이 채널의 운영자는 영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졸업을 앞둔 류채우(26)씨. 대구 토박이인 류씨가 상경과 함께 크리에이터 활동을 결심하게 된 건 2023년이었다. 그는 "대구에 너무 살고 싶었지만, 콘텐츠 업계에 종사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고 대부분의 일자리가 몰린 서울에 언젠가는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군 전역 후 상경을 현실화했다. 채널명 '시골쥐'는 우화 '시골(대구)쥐와 도시(서울)쥐'에서 따왔다. 류씨는 "대구가 무슨 시골이냐는 질문을 할 수 있겠지만, 시적 허용처럼 재미있게 봐달라"고 웃었다.
인스타그램 '노빠꾸 시골쥐의 상경일기' 채널 운영자 류채우씨가 한강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류채우씨 제공>
"상경 생활이 무슨 로컬 콘텐츠냐" 할 수 있겠지만, 류씨의 콘텐츠에는 지역 출신 청년이 겪는 고단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울에 올라가기만 하면 드라마처럼 가슴 뛰는 순간들이 펼쳐질 줄 알았지만 집을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취업과 크리에이터 활동 사이에서의 현실적인 고민이 이어지고, 대구에 대한 그리움도 커졌다. 류씨는 이런 실패와 좌절 이야기를 가감 없이 담기 시작했다. 그는 "상경한 청년이라면 누구나 겪을 만한 일이고, 이런 이야기를 해야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가 되겠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밝혔다.
인스타그램 채널 '노빠꾸 시골쥐의 상경일기'의 '최악의 상경썰' 쇼트폼 영상 콘텐츠. <노빠꾸 시골쥐의 상경일기(@sigol__g) 캡처>
서울살이가 주 콘텐츠지만 특정 주제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채널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대중이 흥미를 가질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한다. 대구 이야기 또한 그 일환이다. 대표적으로 '웃긴 도시 1위 대구광역시' 시리즈는 누적 조회수 약 800만회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류씨는 "대구에 살 때 찍어둔 웃긴 사진들이 불현듯 생각나 '웃긴 도시 1위'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사진마다 짤막한 설명을 더한 콘텐츠를 올렸는데, 올리자마자 반응이 쏟아졌다"며 "대구 사람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대구 사람이 타지 친구에게, 타지 사람이 대구 친구에게 공유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대구에 내려올 때마다 채널을 통해 모임도 주최하는데, 이 또한 콘텐츠화하고 있다.
류씨는 "앞으로는 대구를 주제로 활동하는 다양한 크리에이터, 브랜드, 기업과 협업해 콘텐츠를 기획해보려 한다"며 "혼자서 할 수 있는 로컬 콘텐츠는 어느 정도 해본 것 같아,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파트너들과 더 규모가 크고 본격적인 콘텐츠를 제작해보려 한다"고 했다.
대구의 감각적인 공간을 소개하는 인스타그램 채널 '우딧'의 피드. <우딧(@wood.it__) 캡처>
◆작은 매거진 '우딧'…독자와 소통하며 감각적 공간 소개
'우딧'(@wood.it__)은 카페·맛집·소품숍 등 대구의 감각적인 공간을 소개하는 채널이다. 이 채널을 운영하는 김지언(24)씨의 고향은 경남 거제지만, 그의 '제 2의 고향'은 대구다. 대구 지역 대학에 진학하며 다양한 로컬 맛집과 개성 있는 공간들을 접하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대구라는 도시의 매력을 느끼게 된 것. '우딧' 채널 역시 그런 경험에서 출발해 운영하게 됐다.
인스타그램 채널 '우딧'의 운영자 김지언씨. 카페·맛집·소품숍 등 대구의 감각적인 공간을 웹 매거진 형식으로 소개한다. <김지언씨 제공>
우딧만의 매력은 '감각적인 게시물'에 있다. 김씨는 "인스타그램의 맛집 채널은 썸네일만 제작하고 뒤에 나오는 게시물은 사진만 담는 경우가 많다"며 "인스타그램 웹 매거진에서 약 1년간 에디터로 활동한 경험이 있어, 맛집 계정도 잡지처럼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공간의 분위기와 이야기도 함께 정리해 담는 방식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며 우딧만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스타그램 채널 '우딧'의 '낙동강 뷰 소금빵 카페 추천' 콘텐츠. 사진은 썸네일 이미지. <우딧(@wood.it__) 캡처>
채널명엔 운영자의 취향이 담겼다. 우드톤의 공간을 좋아해 'wood it'이 됐다. 현재는 특정 분위기에 한정하지 않고, 좋은 공간이면 가리지 않고 소개한다. 매체 특성상 짧은 시간 안에 독자의 관심을 끌어야 하기에 콘텐츠를 구성하는 텍스트에 특히 신경을 기울인다. '대구는 사실 유명한 소품숍 맛집임' '5만원의 행복 즐기러 가보자' '대구에서 두바이 프토는 여기서밖에 못 먹는대' 등 궁금증을 유발하는 멘트가 썸네일 제목이 된다. 소개하는 공간을 더욱 직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공간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음악을 얹는 세심함은 덤이다.
콘텐츠 아이디어는 대개 일상 속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채널 운영자이자 대구시민으로서 평소 궁금했던 공간들이 아이디어가 된다. 직접 가본 공간을 소개하는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때로는 팔로워들의 추천을 통해 콘텐츠를 구성하기도 한다. 독자들에게 "여기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이 근본적인 목적이기 때문. 큰 호응을 얻은 '그래서 대구 1등 막창 어딘데?'라는 게시물 역시 그렇게 탄생한 콘텐츠다. "대구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음식들이 많았고, 그중에서도 막창은 사람마다 꼽는 맛집이 달라 더욱 궁금했어요. 이에 팔로워들에게 각자가 생각하는 막창 맛집을 질문했고, 이를 콘텐츠화했죠."
우딧의 '그래서 대구 1등 막창 어딘데?' 콘텐츠 일부. 팔로워들로부터 각자가 생각하는 대구의 막창 맛집을 추천받았다. <우딧(@wood.it__) 캡처>
댓글창에는 "여기가 '찐'이다" "여기는 왜 없어요?" 등의 반응이 활발히 올라온다. 정보를 소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각자의 경험과 의견이 자연스럽게 공유된다. 김씨는 이런 소통을 이끌어내는 것이 로컬 콘텐츠만의 매력이라고 말하며, '대구의 작은 매거진'처럼 기능하는 계정으로 만들어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계정을 구독하며 같은 지역의 공간을 공유하고, 각자의 경험을 나눌 수 있게 하는 점이 로컬 콘텐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며 "저장해두고 다시 찾아보게 되는 로컬 아카이브로서 대구의 다양한 공간과 문화를 꾸준히 기록해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