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순 〈전〉경북대학교 초빙교수
언어학자 소쉬르는 언어의 자의성을 설명하면서 언어를 일종의 기호(Signe) 즉, 상징으로 보고, 언어는 하나의 기표(시니피앙 Signifiant)와 내용 즉, 의미인 기의(시니피에 Signifié)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이 둘은 필연적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속, '자의적'으로 연결되었다. 따라서 언어는 의미 파악, 일종의 해석이 필요하다. 민족이나 문화적 공동체에서 약속한 의미이기에 일반적인 범주에서는 큰 문제 없이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개별적으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언어는 수많은 의미를 상징화하고 함축하고 있다. 의미는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영역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문학에서 흔히 사용하는 낯설게 하기나 역설, 반어법처럼 새로운 환기나 연상을 만들고, 심지어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간이 경험하는 갈등은 상당 부분 언어에 대한 해석이 다른 경우에 나타난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며 인간은 여기에 존재한다고 했다. 소쉬르의 이론을 하이데거에 가져오면,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해석의 차이가 발생하는 언어 속에 우리는 살고, 존재한다. 언어를 사용하고, 언어를 통해 사유하며 언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상징화되고 함축적인 서로 다른 수많은 언어를 내포한 것이 인간이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이해되기 쉽지 않은, 하나의 수수께끼와 같은 존재일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인간의 상처와 병리를 언어에서 찾고자 한다. 부르스 핑크는 인간의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한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언어라는 하나의 상징계에 진입하고, 그 과정에서 소외되고 갈등하며 '나'라는 주체를 형성한다. 그래서 상징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는 하나의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고, 이를 이해하는 것은 정신치료의 중요한 과정이다. 정신분석가들은 언어의 이중적 사용이 병리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셜리번은 정신분열증의 결함은 생물학적 결함이 아닌 대인관계의 실패에서 온다며, 모순된 의사소통, 이중메시지가 아이의 자아를 파편화시킨다고 보았다. 베이트슨은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몸으로는 밀쳐내는 경우, 아이는 어느 쪽을 선택해도 부정당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사유체계가 붕괴할 수 있다고 보았다. 프롬 역시 아이를 위해서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아이를 지배하려고 하는 언어적 위선이나 왜곡이 주체성을 파괴한다고 보았다. 언어의 왜곡이나 이중 사용은 한 개인의 마음을 병들게 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공동체라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수많은 갈등과 상처를 만들 수 있다.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다. 복잡한 존재인 인간 간의 소통이 결코 쉬울 리 없다. 같은 말을 하면서도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은 소통하면서도 고독하고, 소통하면서 갈등하고, 소통하면서 상처받는다. 심리상담을 진행하면서 내담자들의 언어사전을 만들어 본 적이 있다. 사랑이나 집과 같은 평범한 단어조차도 그 의미하는 바에 상당 부분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차이가 갈등과 상처의 요인이다. 우리가 얼마나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이고 이로 인한 갈등과 상처의 연속일지 짐작할 수 있다.
갈등이 일상인 시대, 공격과 폭력, 외로움과 우울에 지친 이들이 많다. 서로 다른 존재를 포용하는 따뜻함, 타자의 언어사전을 들여다보려는 노력, 그리고 다름의 수수께끼가 소외나 배제가 아닌 특별함이면 좋겠다. 오해와 갈등의 시간을 보내고, 올해는 '말'로 따뜻하게 소통하면서, 화합하는 시간이 조금 더 많아지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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