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회관, ‘시 행사장’에서 ‘다시 찾고 싶은 공간’으로
기관·국립 단체와 협력 강화해 공동 제작 선보여
대구 시장 지역적 한계…창작·실험에 집중해야
‘뮤지컬 도시’ 대구, 축제-국가 차원의 지원 필요
‘창작, 실험, 인큐베이팅’ 공간으로 자리잡길
지난달 28일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만난 김희철 대구문화예술회관장은 "상반기 내 시민 공모를 통해 회관 명칭을 변경하고 오는 7월 이후 시민친화적이고 산뜻한 리브랜딩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1년에 6억원. 대형 뮤지컬 한 편 제작비에도 못 미치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었다. 이에 대구문화예술회관(이하 대구문예회관)은 전략을 바꿨다. 국립 단체를 비롯해 대표 문화기관, 주요 콘텐츠 제작사들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국비 사업에 사활을 걸어, 지난 3년간 약 6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확보하는 저력을 보였다. 지역 문화예술회관으로서는 유일하게 '공동제작 파트너'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충무아트센터, 세종문화회관, 국립정동극장 등 수도권 주요 극장에서 많은 수작을 발굴해 온 베테랑 프로듀서이자 공연예술 행정 전문가인 김희철 대구문예회관 관장이 있다. 2022년 12월 취임 이후, 정체성이 희미했던 대구문예회관의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부단히 달려온 김 관장을 만나 대구 문화예술의 내일을 물었다.
지난달 28일 대구 달서구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김희철 대구문화예술회관장이 본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의 운영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2022년 취임 이후 '대구문화예술회관의 정체성 확립'을 목표로 달려오셨다. 지난 3여 년을 돌아본다면.
"극장 경영자로서 첫 번째로 생각하는 것은 '이 기관은 어떤 정체성으로 운영되고, 어떤 역할을 하는가'이다. 처음 부임했을 때 이곳은 36년의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정체성 없이 '시 행사장'이나 '예술단 공간'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시민들이 존재 가치를 모르고 문화적 니즈를 느끼지 못하는 '잊힌 공간'이 현주소였다. 대구에 다양한 기능을 가진 문화시설이 있지만, 진흥원 산하 중 가장 많은 공간을 운영하는 복합 문화 예술 공간인 회관이 명확한 정체성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지난 3년은 신뢰 회복을 위해 '다시 시민 속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민들이 다시 찾고 싶은 공연장·미술관을 만들기 위해 전 부서가 함께 노력해 온 시간이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올해 상반기 중 기관 명칭을 변경하고 리브랜딩을 추진한다. 현재 진행 상황과 방향성은.
"'회관'이라는 명칭이 주는 관료적이고 올드한 이미지, 단순 행사장으로 고착화된 이미지를 탈피하려 한다. 공연과 전시는 '경험재'다. 한 번 형성된 신뢰가 있으면 어떤 공연을 하더라도 관객들이 기본적인 신뢰를 가지고 돈을 투자할 가치를 느낀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런 경험을 시민들에게 충분히 주지 못했고, 그 결과 신뢰를 잃었다. 지금은 다시 극장으로서의 신뢰를 쌓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회관의 향후 10년을 그리는 중장기 발전 계획을 진행 중이며 2월 중으로 관련 책자가 완성된다. 이를 바탕으로 상반기 내 시민 공모를 거쳐 명칭을 변경하고, 오는 7월 이후에는 시민 친화적이고 산뜻한 리브랜딩을 선보일 계획이다."
▶서울의 주요 극장들을 거친 전문가로서 대구의 예술 생태계를 어떻게 분석하는가.
"수도권과 지역의 가장 큰 차이는 결국 시장 규모와 생태계의 기반이다. 서울은 수요와 공급이 풍부하지만, 대구는 공급자가 설 무대가 좁고 관객층도 얇다. 예술은 공급 시장과 소비 시장이 균형을 맞추며 함께 성장해야 하는데, 대구는 그 부분이 깨져 있다. 예술 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우니 인재들이 서울 등 중앙으로 떠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다만 대구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드는 '생산 기지'로서 잠재력이 있다. 이 잠재력을 활용해 대구를 창작 초연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지난달 28일 대구 달서구 대구문화예술회관 공연장에서 김희철 대구문화예술회관장이 앞으로의 운영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대관 위주에서 벗어나 예술인 인큐베이팅 사업, 뮤지컬 창작 등에 주력해 온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가.
"문예회관은 공간 활용과 인프라 면에서 유리하다. 이를 활용해 '미싱링크'(2024), '설공찬전'(2025) 등 대극장 뮤지컬을 효율적인 예산으로 제작해냈다. 완성된 작품을 내놓기 전 가능성을 점검하는 '트라이아웃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큰 성과다. 올해 11월에는 국립극단과 신작 연극 '소설의 목적'을 공동 제작한다. 단순히 배급받는 것이 아니라 대구에서 초연을 하고 추후 서울에서 선보이는 구조다. 물론 지역 내 대형 창작물을 다뤄본 경험이 있는 인프라와 창작진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은 현실적인 한계다."
▶수도권 창작진과의 협업이 지역 예술 생태계를 위축시킨다는 우려도 있다.
"수도권에서 활약하는 우수한 창작진과 협업하는 과정은 지역 예술인과 스태프들에게 소중한 학습의 장이 된다. 그들의 노하우를 현장에서 배우며 지역 인력이 성장하는 효과가 분명히 있다. 회관은 1천석 규모의 대극장을 비롯해 여러 분야의 베테랑 감독들과 6개 시립단체가 상주해 실험의 장으로 최적이지만, 창작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따라서 젊은 지역 창작진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함께 성장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진정한 상생이다. 아울러 '아츠스프링 대구'와 같은 페스티벌을 통해 지역 예술인들 무대의 기획력과 홍보력을 높이는 데도 힘쓰고 있다."
▶올해 대구국제뮤지컬축제(DIMF·딤프)가 20주년을 맞이하는데, '뮤지컬 도시' 대구에 대한 생각은.
"공연 콘텐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재'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제작 당시 소재 발굴만으로도 성공의 50%를 확신했다. 이미 대중에게 각인된 소재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는 상상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극장 창작 뮤지컬의 성공 확률은 10개 중 한두 개, 많아도 세 개 정도로 '하이 리스크' 산업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딤프는 국내 유일의 뮤지컬 축제로 20년간 자리를 지켜왔다. 이제 딤프가 단순한 축제를 넘어 강력한 '아트 마켓'으로 기능하려면 대구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이를 뒷받침할 국립뮤지컬콤플렉스가 유치된다면, 작품을 창작하고 실험하며 수정해 나가는 '트라이아웃'의 전초기지이자 문화 허브로서 대구 뮤지컬 산업에 탄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최근 부산 문화 시장과 비교했을 때 뒤처졌다는 이야기가 많다. 부산과 비교했을 때 대구의 가능성은 무엇인가.
"대구보다 작았던 부산의 뮤지컬 시장이 지금은 역전된 상태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뮤지컬 전용 극장의 유무다. 뮤지컬 전용 극장인 '드림씨어터'는 공연장 하나에 호텔, 쇼핑몰 등 모든 인프라가 집합돼 거대한 시너지를 내고 있다. 그러나 부산 역시 서울의 대형 콘텐츠를 소비하고 유통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대구의 진정한 가능성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오리지널 콘텐츠의 생산 기지'가 되는 데 있다. 부산이 세계적인 영화 도시가 된 배경에는 영화진흥위원회라는 국가 기관의 행정·재정 지원과 아카데미, 인프라가 축제와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대구도 딤프라는 국내 유일 뮤지컬 축제가 있고, 여기에 국립뮤지컬콤플렉스와 같은 국가 차원의 시스템이 결합해야 한다. 국가적 지원만 뒷받침된다면 대구는 창작 초연 도시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남은 과제와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대구문예회관이 단순한 대관 공간이 아니라,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실험하는 '창작, 실험, 인큐베이팅'의 공간으로 뿌리내리길 바란다. 시민들이 이곳에서 감동과 추억을 쌓아 다시 찾고 싶은 공간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나의 마지막 숙제다. 지난 3년의 고민과 비전을 모두 담아 '10년 마스터플랜'을 잘 마무리하려 한다. 누가 오더라도 극장이 꾸준한 방향성을 가지고 업그레이드될 수 있도록 일종의 '바이블'을 남겨두고 싶다. 남은 기간, 새 이름과 함께 도약할 회관의 기틀을 단단히 다져놓겠다."
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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