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대형병원들 “당일 분만 불가” 떠넘기기…자정 무렵 300㎞ 먼길 뚫고 대구로 긴급 이송
쌍둥이 중 한 명 잃는 비극 속, 1.2kg 남은 생명 80일간의 사투 끝에 큰 후유증 없이 건강히 퇴원
세부 전문의 9명 상주에 타 병원 의료진 초빙까지 불사…지역 거점 대학병원 유연한 대처 빛나
28일 대구가톨릭대병원 이소희 교수(소아청소년과)가 지난 1월 말 서울에서 전원한 산모의 응급 제왕 분만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지금 당장 자리가 있는 곳은 대구뿐입니다. 내려가는 구급차 안에서 출산이 진행되면 태아가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 1월 29일 저녁,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40대 산모 A씨는 억장이 무너지는 통보를 받았다. 임신 28주 차, 갑작스러운 진통에 휩싸인 고위험 산모(이란성 쌍둥이)를 받아주겠다는 수도권 병원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생사가 오가는 300㎞를 내달려 도착한 곳은 연고 하나 없는 대구였다. 대한민국 의료 인프라의 최정점이라는 서울에서 밀려난 1.2kg의 작은 생명은 역설적이게도 지방 대학병원의 품에 안겨 80일 만에 기적처럼 건강을 되찾았다.
◆수도권 병원의 떠넘기기
당초 A씨는 서울 한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왔다. 그러다 자궁경부 길이가 짧아져 조산 위험이 있다는 소견에 빅5 한 병원으로 이동해 진통 억제제를 맞았다. 하지만 해당 병원에서는 돌연 타 대학병원으로의 전원을 요구했다. 당일 분만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부랴부랴 구급차를 타고 세번째 병원으로 향했지만, 그곳 역시 뾰족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다.
그러던 중 밤 8시 30분쯤 양수가 터지는 위급 상황이 발생했다. 하지만 병원측은 "지금 당장 출산을 진행할 수 없다"며 다른 병원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돌아온 대답은 "대구로 가야 한다"는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이동 중 태아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경고까지 더해졌다.
A씨 남편은 당시의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응급실 뺑뺑이가 아니라 입원 중이던 환자를 떠넘기는 '병원 뺑뺑이'를 당했다"며 "이송 도중 처치를 못 받아 아이가 죽을 수도 있다면서 밖으로 내모는 시스템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결국 부부는 선택의 여지 없이 대구행 구급차에 몸을 실어야 했다.
◆남은 생명 향한 사투
새벽 2시45분, 산모가 대구가톨릭대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분만이 상당히 진행된 위급한 상태였다. 소식을 접한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의료진은 즉각 응급 분만장으로 뛰어 내려가 제왕절개 수술에 돌입했다.
하지만 가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1.2kg 남짓으로 태어난 쌍둥이 중 한 명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며 끝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주치의 이소희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한 아이가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보며, 남은 아이만큼은 무조건 살려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의료진 모두에게 강하게 자리 잡았다"며 "생후 한 달 반이 지날 때까지 단 하루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살아남은 아이 앞에도 숱한 고비가 도사리고 있었다. 초기에는 태변 배출이 안 되고 수유가 진행되지 않아 조영제 검사를 거쳐야 했고, 갑작스러운 무호흡증과 함께 염증 수치가 치솟아 신생아 패혈증이 의심되기도 했다. 폐출혈이라는 치명적인 위기도 찾아왔다. 떼어냈던 기도 삽관을 다시 달고 항생제를 쏟아부으며 숨 막히는 사투가 이어졌다.
이러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데에는 병원 측의 세심한 배려도 한몫했다.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려주는 '캥거루 케어'를 통해 아이는 점차 안정을 찾았고, 산모 역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었다. 천주교 재단 병원의 특성상 신부와 수녀들이 매일 아침 병동을 돌며 기도를 올린 것도 가족들에게 큰 위안이 됐다.
28일 대구가톨릭대병원 이소희 교수(소아청소년과)가 지난 1월 말 서울에서 전원한 산모의 응급 제왕 분만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서울 뺨치는 지역 병원의 저력
그렇다면 수도권 대형병원들조차 포기한 초고위험 산모를 대구가톨릭대병원은 어떻게 무사히 품어낼 수 있었을까. 이소희 교수는 '풍부한 전문 인력'과 '유기적인 시스템'을 꼽았다.
이 교수는 "타 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은 보통 2~3명의 전문의가 돌아가지만, 우리 병원은 세부 전문의 9명이 상주해 안정적인 대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산부인과에 입원한 고위험 산모의 차트를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이 미리 공유하며 응급 상황에 상시 대비하는 체계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의료진 초빙 시스템'이다. 이 교수는 "수술이 필요한데 당장 병원 내 해당 분과 전문의가 부족할 경우,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재전원시키는 대신 타 대학병원 교수님을 직접 초빙해 수술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아이의 치료 과정에서도 계명대 동산병원 흉부외과 교수를 초빙해 성공적인 협진을 이뤄냈다.
◆후유증 없이 가족 품으로
80일간의 기나긴 기다림 끝에, 1.2kg이었던 아이는 미숙아에게 흔한 중증 뇌출혈이나 심장 등 큰 후유증 없이 3.2kg의 건강한 모습으로 28일 퇴원했다.
산모 A씨는 퇴원 수속을 밟으며 참았던 눈물을 훔쳤다. 그는 "서울에서 밀려나 연고도 없는 대구로 올 때는 너무나 막막하고 무서웠지만, 돌이켜보면 이곳으로 온 것이 천운이었다"며 "매일 전화로 아이의 상태를 상세히 알려주시고, 진심으로 환자를 대해준 의료진의 체계적인 진료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전했다.
이 교수는 "필수 의료를 지켜내려면, 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지역 거점 병원의 의료진들이 계속 버틸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과 인센티브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며 "이 아이가 우리 사회의 건강하고 행복한 구성원으로 자라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강조했다.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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