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공천 신청자들 사이 당직과 행정직 내세우기 치열
정책 대결보다 높은 직위를 선호하는 보수 지지층 성향 반영?
지난 1월 22일 대구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예비후보자 입후보설명회에서 선관위 관계자가 예비후보자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입후보 절차를 설명하고 있다. 영남일보DB
대구지역 선거판에서 유독 눈에 띄는 특징은 후보들이 자신의 메인 타이틀을 선거 홍보의 전면에 앞세운다는 점이다. 특히 지역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높은 직위나 타이틀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후보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직함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대구지역 기초단체장 공천 신청자의 면면을 보면, '국민의힘 대구시당 부위원장'을 자신의 메인 타이틀로 내세운 후보자는 9개 구·군 38명 중 6명이다.
지방의원이 상위 선거에 출마하는 경우에도 지방의원 경력보다 당직이나 행정직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우는 사례가 많다. 실제로 지방의원 출신 후보자들 가운데 일부는 '전 시의원'이나 '전 구의원'보다 '국민의힘 대구시당 부위원장' 또는 국민의힘 당직을 강조하고 있다. 시당에서 부위원장직을 갖고 있는 당직자는 무려 53명에 이른다
이 같은 흐름은 동구청장 선거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현재 국민의힘 동구청장 후보 8명 가운데 4명이 '국민의힘 대구시당 부위원장'을 대표 직함으로 사용하고 있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당직 가운데서도 '부위원장'이라는 직함이 비교적 무게감 있어 보인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천 신청자 A씨는 "예전에 부위원장 타이틀을 달았더니 여론조사에서 앞서 나갔던 경험이 있다"며 "시민들이 호응하는 타이틀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B씨는 "'현직'과 당 소속임을 동시에 어필할 수 있는 타이틀을 넣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C씨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높은 대구에서 '국민의힘 후보'를 강조하면 지지율은 어느 정도 나온다"고 했다.
행정 경험 역시 마찬가지다. 후보자들은 직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이력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예를 들어 '전 대구시 행정부시장' '전 대구시 경제부시장' 'OO구청 부구청장' 같은 타이틀은 선거 홍보물이나 출마 선언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경력으로 꼽힌다.
현재 국민의힘 공천 신청자 중 대구시 부시장 출신만 4명이다. 부구청장 출신은 3명, 그밖에 공직 경력을 내세우는 후보도 다수다. 시민들에게 자신의 행정 경험과 조직 내 서열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시장 출신의 한 출마 예정자는 "'전 부시장' 명함을 보고 신뢰감을 느끼는 지역 주민들이 많다. 여러 후보 중에서도 나를 한 번 더 봐준다고 느낀다"며 "또 구청장이 되고 나면 대구시와 일을 할 때도 서로 소통을 잘 할 수 있을 거라 인식하신다"고 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대구 유권자들의 정치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오랫동안 보수 정당 지지세가 강했던 지역 특성상 후보 개인의 정책이나 정치적 메시지보다 '어떤 자리까지 올라갔던 인물인가'가 평가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대구에서는 아직도 '어느 직함을 달았던 사람이냐'가 후보의 경쟁력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며 "그래서 후보들이 조금이라도 무게감 있는 타이틀을 찾으려 애쓰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정치 문화가 정책 경쟁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시의원 출신 인사는 "내가 구청장 선거 후보자였다면, 나도 시의원 대신 다른 직함을 사용했을 것"이라면서도 "다른 시도에서는 광역의원이 상위 선거에 출마할 때 광역의원 경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그 자체로 정치적 경험을 인정받는 분위기가 있지만, 대구에서는 지방의원 경력이 상대적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자치가 성숙하려면 주민의 대의기관인 의회에서 활동해 본 지방의원 경험이 중요한 정치 경력으로 인정받는 문화가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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