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깃든 시민야구장
한국 야구 역사 품은곳
변화한 풍경 만감 교차
예전 그대로 더그아웃
아마추어 야구 산실로
영남일보 체육팀 임훈 차장
얼마 전 지인과의 약속 때문에 대구 북구 고성동에 위치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이하 시민야구장)을 찾았다. 14년 전, 프로야구 취재를 위해 삼성 라이온즈를 출입하며 시민야구장을 제집 드나들 듯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참으로 오랜만의 방문이었다. 켜켜이 쌓인 시간만큼이나 변해버린 풍경 앞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포스트시즌 때마다 스포츠 기자단이 즐겨 찾던 단골 식당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반가움이 앞섰다. 시민야구장 바로 옆에 들어선 프로축구 '대구iM뱅크파크'의 세련된 모습은 이곳이 단순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공간이 아님을 말해주는 듯했다.
과거 홈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시민야구장 앞은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뤘다. 출입구 주변에서 공공연하게 암표를 팔던 이들의 호객 행위는 흔한 풍경이었고, 행인들의 코끝을 자극하며 발걸음을 멈춰 세우던 치킨의 강렬한 냄새는 지금도 후각적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 있다. 술에 취한 채 '사자군단'을 응원하던 수많은 '아재'들의 모습은 지금의 기준으로는 아찔하기만 하지만, 그 시대만의 낭만 섞인 풍경으로 남아 있다.
종종 장외홈런이라도 터지면 시민야구장 주변에 주차된 차량들이 파손되는 일도 벌어지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차주와 구단 직원들에게는 참 번거롭고도 난감한 일이었겠구나 싶다.
1948년 문을 연 시민야구장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야구장이기도 하다. 1970년대 지역 고교야구의 발전을 이끈 터전이었으며,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2015년 10월 삼성과 두산의 한국시리즈 2차전까지 삼성 라이온즈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원래 1925년 개장한 서울 동대문야구장이 가장 오래된 야구장이었으나 2007년 철거되면서, 현재는 시민야구장이 '국내 최고령 야구장'이라는 타이틀을 이어가고 있다.
추억에 젖어 시민야구장 인근을 천천히 둘러본 뒤, 지인을 만나기 위해 1루 관람석으로 향했다. 지인과 함께 예전 기억을 되짚어보니 감회가 더욱 깊었다. 관람석에서 바라보니 취재 열기가 가득했던 기자실과 그 위쪽의 관람석 일부가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3루 더그아웃 또한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곳을 바라보고 있자니 당시 삼성의 사령탑이었던 류중일 감독님의 모습과, 원정팀이었음에도 대구 기자실을 자주 찾아 소탈하게 담소를 나누시던 한대화 당시 한화 감독님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무엇보다 '삼성 왕조' 시절, 푸른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선수들의 면면이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계획에 없던 추억 여행에 푹 빠져 있을 무렵, 운 좋게도 지역 대학 야구팀의 훈련을 관람하게 됐다. 지난 2월 스포츠 담당 복귀 후 업무상 프로야구의 정제된 플레이만 보다가, 열정 가득한 젊은 선수들의 활기 넘치는 몸놀림을 보니 절로 기운이 났다. 해당 대학 출신 중 프로에 입문한 사례도 있기에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를 눈여겨봤다. 도심 속 야구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기량을 닦는 대학생들을 보니, 대구야말로 진정한 '야구의 도시'라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 삼성 라이온즈가 연패를 당해 대구시민이자 출입 기자로서 아쉬움이 컸다. 시민야구장에서 쌓아 올린 '왕조의 역사'가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도 재현되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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