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5·18민주묘지 5월이면 시민 발걸음 북적
옛전남도청·전일빌딩245 곳곳엔 탄흔 흔적
5·18기념재단 “5·18, 민주주의 회복 탄력성 근간”
'1980년 5월18일'. 당시 신군부 세력에 맞선 광주시민들의 울부짖음이 널리 퍼진 날이다. 민주주의 실현을 요구한 민중항쟁은 이날부터 72일간 이어졌다. 그로부터 46년 후. 광주 곳곳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역사 저장고로 자리 잡았다. 국립 5·18 민주묘지는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간 광주시민들이 잠든 성역으로 여겨진다. 옛 전남도청 건물은 5·18 항쟁 당시 긴박함을 여실히 보여주듯 지금까지 외벽에 총탄 자국이 남아 있다. 전일빌딩245 내 5·18 관련 사진·기록물이 보존된 전시관은 처절한 아픔의 흔적을 증명하는 공간이다. 영남일보가 지난 7일부터 2박3일간 진행된 '2026 전국 기자 초청 5·18 역사 기행'을 통해 5·18 항쟁의 흔적을 마주했다. 특히 2013년부터 시작된 대구·광주 '달빛동맹' 정신을 되새기며, 지역 간 이해와 연대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봤다.
◆"5·18은 민주주의 핵심 가치 상징"
지난 7일 오후 3시30분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세미나실에서 5·18기념재단 이재의 연구위원이 '왜 아직 5·18인가…여전히 도전받는 진실'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조윤화 기자
이번 5·18 역사 기행 첫 일정은 지난 7일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세미나실에서 진행된 5·18기념재단 이재의 연구위원의 강연이었다. 이 연구위원은 이날 '왜 아직 5·18인가…여전히 도전받는 진실'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이재의 연구위원은 이날 강연에서 "5·18이 4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소환되는 이유는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상징하는 역사이기 때문"이라며 "역사적 대형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 의례적인 행사로 남기 쉽지만, 5·18은 국가폭력의 반복 가능성에 대한 경고이자 민주주의의 기준점 역할을 한다"고 진단했다.
이 연구위원은 같은날 국회에서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전문에 반영하는 개헌안 처리가 무산된 점에 대해서도 입을 뗐다. 그는 "5·18이 만든 1987년 헌법 체계가 최근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기반이 됐다. 광주의 기억이 민주주의 회복 탄력성을 만든 만큼,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현재 추세로는 개헌안 처리에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건물에 탄흔 자국 뚜렷…역사 현장 가보니
지난 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초등학생들이 참배하고 있다. 조윤화 기자
역사 기행 둘째 날인 지난 8일 오전 10시쯤 광주 북구 운정동에 있는 국립 5·18 민주묘지를 방문했다. 1997년 5월 완공된 이곳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사망자와 부상 후유증으로 숨진 이들이 안식에 든 곳이다.
묘역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높이 40m에 달하는 추모탑이었다. 두 개의 대칭되는 사각기둥 사이에 둥근 알 모양의 조형물이 박혀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압도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참배광장을 둘러싼 웅장한 촛대 석상들 또한 공간의 경건함을 더했다.
이날 투어 해설을 맡은 김순애 광주전남추모연대 집행위원장은 "추모탑은 양손으로 '부활'을 상징하는 알을 품고 있는 형상으로, 5·18의 정신과 영령들이 다시 살아나길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촛대 석상 아래에는 12간지가 새겨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10개만 설치돼 있다. 처음 발포 명령자 등 아직 밝혀지지 않은 5·18의 진상이 끝까지 규명되길 바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평일 오전인데도 참배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는 점이다. 이날 현장에서는 초등학생 단체 참배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전명선 보훈 해설사(국립 5·18 민주묘지)는 "5월이면 단체 방문 예약이 유독 많다. 이날도 23개 팀이 방문할 예정"이라며 "남녀노소, 전 연령대를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나 자신도 광주시민으로서 뿌듯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지난 8일 오후 광주 동구 광산동 옛 전남도청 본관 오른편 상단 벽에 남아 있는 탄흔 흔적이 노란색 사각형으로 표시돼 있다. 옛전남도청복원추진단은 방문객들이 탄흔의 위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표시해뒀다. 조윤화 기자
광주 동구 전일빌딩245 10층에 5·18 당시 남겨진 탄흔 흔적이 보존돼 있다. 조윤화 기자
이날 역사 기행 일정의 백미는 오후 3시쯤 찾은 옛 전남도청과 전일빌딩 245이었다. 5·18 당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게 무척이나 놀라웠다.
옛 전남도청은 1980년 5월 계엄군의 진압 작전에 맞서 시민들이 최후 항전을 벌였던 장소다. 2023년 8월 시작된 복원 공사가 최근 마무리되면서 오는 18일 정식 개관을 앞두고 있다. 아직 내부 출입은 제한적이었으나, 기자단은 외부를 통해 복원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도청 정문 오른편 외벽에 자리한 노란색과 빨간색 표시판이 기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바로 5·18 당시 남겨진 총탄의 흔적이다. 김현진 옛 전남도청 문화해설사는 "노란색 아크릴판은 탄흔 의심 흔적, 빨간색은 실제 탄흔 흔적을 표시한 것이다. 도청 본관 건물에서만 20개의 탄흔 흔적이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곧이어 찾은 전일빌딩245 외벽에도 총탄의 흔적은 계속됐다. 이곳 10층엔 헬기 사격으로 추정되는 탄흔 자국이 보존돼 있었다. 빌딩 내부엔 5·18 전시관이 자리했다. 당시 광주에서 벌어진 5·18 항쟁의 증거 자료와 탄흔에 대한 과학적 분석 결과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박진표 광주전남기자협회장은 "전일빌딩 이름 뒤에 붙는 숫자 245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외벽과 건물 내부에 뚜렷하게 남아 있는 탄흔 자국 245개를 의미한다"며 "기둥마다 번호가 매겨진 수십 개의 탄흔은 46년 전 그날의 참혹했던 현장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1980년 5월 대구에서는 어떤 일이?
5·18 민주화운동부상자회 김균식 경상강원지부장.
1980년 5월, 계엄령 철폐와 신군부 퇴진을 요구하는 민주화의 열기는 광주뿐만 아니라 대구에서도 일어났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으나, 대구의 대학생과 시민들 또한 '계엄 철폐'와 '언론 자유'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1980년 5월14일 경북대, 계명대, 영남대 등 지역 3개 대학 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시위대는 각 교정에서 시작해 시내 대구백화점을 목표로 가두시위를 전개했다. 하지만 이들은 진압대의 무력 행사에 가로막혔다. 현장에서 연행된 수많은 학생은 경찰에 체포돼 실형을 선고받는 등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5·18 민주화운동부상자회 김균식 경상강원지부장은 그날의 참혹함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는 "시위 현장에서 체포돼 50사단 연병장으로 끌려가 모진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 그로 인해 나는 물론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회상했다.
김 지부장이 2022년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던 당시 입수한 국가기록원 자료에 따르면, 1980년 5월 비상계엄 확대 후 경북 계엄분소에서만 244명(대학생 140명·민간인 62명·기타 42명)이 체포·연행됐다.
김 지부장은 대구·경북에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1980년 당시 대구에서도 민주화를 향한 움직임과 그에 따른 희생이 분명 있었다. 지역 정서상 불이익을 우려해 피해 사실을 드러내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대구·경북에서 공식 인정된 5·18 유공자는 79명에 불과하다. 실제 피해자는 확인된 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본다. 이제라도 이들이 명예를 회복하고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지자체 차원의 관심과 조사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조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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