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통합 세 번째 무산·신공항 사업비 표류… ‘사후약방문’ 반복
경쟁지역은 단일대오로 선점하는데 TK는 내부 분열·뒷북 아우성만
이인선 의원을 비롯한 대구-경북지역 국민의힘 의원들이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광주·전남권 제2국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호남 반도체 투자설이 본격화되면서 대구·경북(TK) 지역 정가에 불똥이 튄 모양새다. 지역 정치권의 늑장 대응으로 하반기 중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물론 지역 최대 현안인 행정통합과 대구경북통합신공항 문제까지 줄줄이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최근 호남 반도체 투자설을 두고 지역 정치권에서는 뒤늦게 반발과 우려가 터져 나왔지만 사실상 '뒷북 대응'이라는 평가다. 일부 의원은 이미 정부와 경제계의 이같은 움직임을 보고 적극적인 지적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지만 지역 정치권의 단합된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이다. 국민의힘 유영하(대구 달서구갑) 의원이 앞서 이에 대한 상황을 지적하며 "다만 당시 지역 정치권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일부 의원의 경우 의원들의 단체메시지 방에 "(반도체) 내륙입지는 기업측에 상당한 부담"이라며 지역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는 것이 지역 정치권의 지적이다.
지역의 백년대계로 꼽혀온 대구경북행정통합과 통합신공항 역시 결정적 길목마다 선제 대응에 실패하며 표류하거나 좌초했다. 사안만 바뀔 뿐 '사후약방문'이 반복되고 있다는 자성론이 지역 안팎에서 나오는 이유다.
◆ 행정통합, 세 번째 무산…자중지란이 'TK 패싱' 빌미
가장 뼈아픈 사례는 행정통합이다. 대구경북통합특별법은 지난 2월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의결이 보류됐다. 2020년과 2024년에 이어 세 번째 무산이다. 더 뼈아픈 것은 같은 날 법사위에서 전남·광주통합특별법만 통과되면서 통합의 선점 효과를 모두 놓쳤다는 점이다.
지역 정가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시키지 못한 데 대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답을 찾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지역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지 못한 점도 분명 문제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할 때만 해도 무난해 보이던 특별법은 막판 대구시의회의 반대 성명과 경북 일부 지역의 반대의 자중지란이 맞물리며 동력을 잃었다.
실제 무산의 결정적 단초는 외부가 아닌 지역 내부에서 비롯됐다는 평가가 많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경북도지사 예비후보들이 북부권 소외론과 동해안 의석수 축소 우려 등 민감한 쟁점을 앞세워 통합 반대 목소리를 키웠고 갈등에 불을 지폈다. 경북도청이 자리한 안동·예천 등 북부권에서도 통합 시 행정 중심축이 대구권으로 쏠릴 것이라는 반발이 거셌다. 여기에 대구시의회마저 막판 반대 성명으로 돌아서면서, 결국 여당에 'TK 패싱'의 명분을 스스로 헌납한 꼴이 됐다는 비판이 지역에서 잇따랐다. 이런 상황에서 현역의원들의 갈등 중재는 크게 보이지 않았고 경북 지역 북부 의원들은 법안에 끝까지 동의하지 않기도 했다.
국민의힘 주호영(대구 수성구갑) 의원조차 당시 "법안 처리의 결정적 순간에 파열음을 낸 대구시의회와 일부 지역 정치인의 행보가 개탄스럽다"고 했다. 당시에도 지역에선 "전남·광주에 다 몰아줘도 할 말이 없게 됐다"는 탄식이 쏟아졌다.
◆ 통합신공항, 광주는 본궤도인데 사업비 '0원' 표류
TK통합신공항도 다르지 않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2월 국비 2조7천억원을 투입해 대구공항의 7배 규모로 짓는 민간공항 기본계획을 고시했지만, 정작 군 공항 이전 사업은 사업비의 벽에 막혀 있다. 2026년 토지보상 착수에 필요한 공공자금관리기금 등이 정부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으면서 추진 동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기부 대 양여' 방식은 부동산 경기 불확실성과 민간 참여 불투명으로 현실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광주 군·민간 공항 이전 사업은 본궤도에 올랐다.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한 두 사업이 '예산 지원 0원'과 '본궤도'로 엇갈린 것이다.
부산 지역 정치권이 2021년 가덕도 신공항특별법이 제정돼 지역보다 공항 건설에서 앞서나갔던 사례도 마찬가지다. 당시 TK 정치권에선 대구경북신공항에 대해 방향도 제대로 정하지 못한채 표류했고 2023년에서야 겨우 대구경북통합신공항 특별법으로 보조를 맞춘 셈이 됐다.
가덕도의 경우 공사기간 연장 논란으로 개항이 연기됐지만, 전재수 부산시장 당선인은 지난 22일 부산상공회의소 초청 간담회에서 "가덕신공항 개항 시점을 현재 목표인 2035년에서 2~3년 앞당기겠다"고 밝히며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추경호 대구시장 당선인이 후반기 국회 1호 법안으로 TK 신공항 국가사업화 및 국가재정 책임 강화 법안을 처리해 속도를 내겠다는 계획도 실행력이 떨어져 보인다는 것이 현역 의원들의 지적이다. 한 의원은 영남일보 기자와 만나 "당선인이 적극적으로 추진해야하는데 법 개정 가능성이 어려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당선인이 국회에 있었던 만큼 이 부분을 본인이 가장 잘 알지 않겠나"라며 "단순히 개정안을 낸다고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여당을 설득해야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28일 오전 대구 군위군 대구경북통합신공항 부지에서 국민의힘 추경호 대구시장 후보가 신공항특별법 개정 당론채택 결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 경쟁지역은 단일대오…"내부부터 결집해야"
최근 반도체 투자설과 공항과 행정통합 등의 문제가 보여주는 공통점은 분명하다. 결정적 국면에서 한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내부 분열로 명분을 스스로 깎아먹고, 일이 기운 뒤에야 뒤늦게 아우성친다는 점이다. 그사이 경쟁지역은 단체장과 지역 정치권이 한 몸으로 움직이며 선제적으로 현안을 선점해왔다. 전남·광주가 행정통합을 매듭짓고 공공기관 유치 희망 기관 10곳을 일찌감치 정부에 건의한 것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 패턴이 현재진행형이라는 데 있다. 9월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앞두고도 여당 단체장을 둔 호남·충청은 이미 특정 기관 유치 의사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행정통합 무산으로 '통합지역 인센티브'라는 명분까지 놓친 대구로선 출발선부터 불리한 처지다.
특히 최근 사실상 정해진 것으로 알려진 대구 지역 상임위 배분도 이같은 현실을 뒷받침한다. 익명의 한 대구 지역 의원은 최근 영남일보 기자와 만나 "대구 지역에서 상임위가 고루 배분되어야지 왜 모두 돈되는 '정무위'만 가려하느냐"라며 "행정통합 당시 행정안전위원회에 대구 지역 의원이 없었던 것도 기억이 안나는 모양이다. 정말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지역 정가에서는 선수를 떠나 의원들 부터 먼저 결집해야 한다는 주문이 잇따른다. 매번 사안이 터진 뒤에야 책임 공방을 벌이는 방식으로는 어떤 현안도 지켜낼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 정치권의 평론가는 통화에서 "경쟁지역이 단일대오로 뛸 때 우리는 내부에서 발목을 잡아왔다"며 "뒷북의 악순환을 끊는 출발점은 결국 대구경북이 한 팀이 되는 것이다. 중진의 역할이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의 상황을 비춰봤을 때도 마찬가지다. 불출마 선언이나 타 지역 출마 등 선제적으로 '카드'를 던지며 당의 중심에 나와야 하는데 어느 누구도 그러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정재훈
서울정치팀장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