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아빠, 허사비스 박사는 뇌과학자
문제일 디지스트 뇌과학과 교수
2016년 봄, 우리 모두를 거대한 충격과 경이로움에 빠뜨렸던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을 기억하시나요? 당시의 충격은 이제 챗GPT나 제미나이라는 이름의 친구 모습으로 우리 일상 깊숙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최근 알파고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 박사가 다시 한국을 방문하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수십 년간 풀리지 않던 생물학적 난제인 단백질 구조 예측 플랫폼 '알파폴드'를 개발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까지 거머쥐며 과학자로서 최고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 개발자로만 알려진 그가 사실은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에서 뇌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통 뇌과학자라는 사실을 아는 분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허사비스 박사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수재였습니다. 이후 게임 회사에서 천재적인 게임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명성을 쌓던 그는 돌연 인간 지능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뇌과학의 길을 택합니다. 2009년 그가 UCL 인지 신경과학 연구소에서 발표한 박사 학위 논문의 제목은 '에피소드 기억을 뒷받침하는 뇌의 신호 처리(Neural processes underpinning episodic memory)'였습니다. 이 연구는 우리 뇌가 과거를 떠올리거나 미래를 상상할 때,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능력이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것입니다. 이 성과는 2007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가 선정한 '올해의 과학 성과 10대 발견' 중 하나로 꼽히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허사비스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일반화하여 우리가 더 나은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 '마음의 시뮬레이션 엔진'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2010년 그가 머신러닝 인공지능 스타트업인 '딥마인드(DeepMind)'를 창립했을 때 내건 전략은 단순히 뛰어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지능의 근본 원리를 먼저 해결하고, 그다음 그 지능을 사용하여 세상의 다른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습니다. 단순히 컴퓨터과학적 프로그래밍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뇌과학에서 얻은 인간 지능의 통찰력을 컴퓨터과학과 융합한 것입니다. 자연지능(사람의 뇌)의 원리를 인공지능(컴퓨터)에 이식한 그의 접근 방식 덕분에 딥마인드의 인공지능은 다른 기술들과 차별화되는 특별함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공지능 전문가를 꿈꾸는 우리 학생들이 단순히 코딩 기술에만 매몰되지 말고, 지능의 원형인 뇌과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무섭게 따라잡는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서울대학교 이인아 교수는 최근 강연을 통해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 뇌의 주도권을 지키기 위한 세 가지 실천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스스로 고민해서 해결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조차 AI에게 먼저 묻는 습관, 즉 '생각의 외주화'를 먼저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 뇌의 기능은 쓰지 않으면 퇴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AI에서 얻은 정보가 아니라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나만의 기억을 해마(뇌에서 기억을 저장하는 영역)에 꾸준히 쌓는 '나만의 맥락 정원'을 가꾸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내비게이션에만 의존하지 말고 머릿속 지도를 활용해 스스로 길을 찾고,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의 시나리오를 그려보는 능동적 '시뮬레이션' 훈련을 실천해 보세요. 이런 습관들이 우리 뇌를 살아있게 만들어 줍니다.
또한 차가운 이성과 정교한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인공지능의 시대일수록, 우리는 역설적으로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소통의 가치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정보를 배달해 줄 수는 있지만, 사람 사이의 따뜻한 공감과 체온이 담긴 소통까지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기술의 끝에서 우리가 마주해야 할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허사비스 박사의 삶을 통해 다시 한번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