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60519022087483

영남일보TV

  • [영상] 추경호 대구시장 후보 경제공약 발표 ‘국내외 대기업 유치로 경제 바꾸겠다’
  • [영상] 김부겸·추경호 나란히 출사표…6·3 지방선거 대구 시장 후보 등록 시작

[최호선의 심심한 이야기] 슬픔의 공명

2026-05-20 06:00
최호선 심심책방 대표

최호선 심심책방 대표

"선생님, 왜 착한 사람들은 일찍 죽어요?" 죽음과 장례에 관한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다. 행복한 왕자라는 동화에 나오는 왕자처럼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들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던 친구를 잃고 나도 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 사람이 살아있었다면 내 삶이 더 충만해지고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었을 텐데 왜 착한 사람들은 일찍 죽지? 나도 그런 의문을 품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 착한 사람의 죽음은 오래오래 그의 삶을 기억하고 죽음을 애도하게 만든다. 그는 생전과 다른 형태로 우리 마음속에 늘 살아있다.


비운의 어린 왕 단종을 다룬 영화가 엄청난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세조의 악행이 다시 부각되어 세조의 무덤인 광릉에 별점 테러가 쏟아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현대판 부관참시가 아닐까! 반면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에는 영화 개봉 이후 엄청나게 많은 방문객 찾아온다고 한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열광하고 역사 속의 현장을 직접 가보려는 마음을 낼까? 나는 이 영화가 흥행했던 이유 중 하나를 슬픔의 공명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의 죽음은 충분히 애도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다뤄진다.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외면하거나 극복해야 할 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서 막상 닥치게 되면 의미도 알지 못하는 절차에 따라 급히 장례를 치른다. 그 후에도 일상으로 돌아가 저마다 개인적인 일로 묻어두는 구조다.


아주 먼 이야기가 아니다. 30년여 전, 시어른 장례가 끝나고도 나는 한동안 흰 실이 달린 핀을 머리에 꽂고 다녔다. 그것은 상중이라는 표시로 나는 행동거지를 조심했고 주변 사람들도 예를 갖춰서 대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은 장례식에 절차만 남아있고 충분히 애도할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장례식이 끝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고 개인의 슬픔을 표시하는 것은 어색한 일이 되어버렸다. 일상에서 충분히 애통해하지 못하도록 강요받은 사람들이 역사속의 애달픈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슬픔을 쏟아내고 위로 받았다. 왕과 사는 남자, 예술의 힘이다!


슬픔은 유리알처럼 섬세하고 예민하게 다루어야 한다. 상실의 고통 끝에서 다시 살아 갈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죽음은 어떻게 다루어졌었나. 충분히 애도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어떤 죽음은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 짓을 용인하는 것은 당사자 뿐 아니라 저마다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슬픔을 위로할 수 없다면 차라리 조용히 입을 다무는 게 좋겠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생활/문화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