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본부장
지난 15일 이재명 대통령이 대구시 군위군을 방문했다. 대구경북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뒤 모내기도 하고 농민과 함께 새참도 먹었다. 역대 대통령 중 농촌의 상징성이 가장 또렷한 이가 박정희인데, 이재명에게서 박정희의 이미지가 중첩돼 보였다. 밀짚모자와 막걸리가 등장했고, 농민과 대화하며 미소를 띤 대통령의 사진이 쏟아져 나왔다. 이재명은 한 언론에서 박정희의 강력한 추진력이 자신과 닮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둘은 비슷한 점이 많아 보인다. 먼저, 경북의 시골 빈농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것. 태생적 콤플렉스를 힘들게 극복하고 대통령이 된 것. 정치·경제적으로 주류 엘리트가 아닌 변방 출신인 것. 잘사니즘과 먹사니즘으로 대표되는 실사구시. 강력한 추진력과 속도 중시. 직설적 어법과 목표 지향적 성과 중심. 노련한 정치력과 조직 장악력, 이념과 정파에 얽매이지 않는 능력 위주 발탁 인사 등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군위를 방문한 최초의 대통령 덕분일까. 6·3지방선거가 코앞인데, 이틀 뒤 군위 지역 국민의힘 당원 1천701명이 탈당하고 민주당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앞서 지난 10일에도 대구시 달성군 국민의힘 책임당원 등 당원 1천672명이 집단 탈당해 김 후보를 지지했다고 한다. 두 곳 모두 대구 도심에선 변방이다. 하지만 달성은 박정희 향수의 정치적 계승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4선을 한 곳인 데다, 국민의힘 추경호 대구시장 후보의 지역구다. 국민의힘의 정치·지리적 모태인 셈인데, 선거를 목전에 앞두고 트로이의 목마나 다름없게 됐다. 군위는 작금 신공항을 두고 이해관계가 얽힌 대구의 경제·지리적 이슈의 중심이다. 1960년대 한때 8만명이던 군위 인구는 현재 2만2천여명으로 줄었다. 2025년 기준 인구소멸위험지수 0.075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1위다. 2023년 7월1일 대구로 편입됐으니, 다행이라고나 할까. 작년 대선에선 1만7천745명이 투표해 이재명 후보가 14%를 얻었다. 그에겐 전국 최저 득표율이다. 그런데 이번에 전 인구의 약 10% 가까이가 김 후보를 지지했다는 말이 된다. 얼마전 몇몇 군위 군민에게서 들었다. "재미이는 성질이 못돼서 추경호 찍으마 절대 신공항 안 해준다" "김부갬이 시장 만들어 신공항 삽뜨게 하고, 4년 뒤에 대통령 시키가 마무리하면 딱이데이"라는 소리와 "선거때마 카는 소리지 정치인들 약속 제대로 지키는 거 봤나. 다 뻥이다" "추경호가 그래도 경제통인데, 김부갬이보단 안 낫나"라는 의견이 섞여 있었다.
이번 지선에선 '보수=개발, 진보=분배'라는 전통적인 공식이 무의미해 보인다. 민생을 기준으로 하면 그건 옳은 방향이다. 정치학자 김태일은 페이스북에 이번 지방선거를 이념보다 이익, 전국보다 지역, 정당보다 인물, 조직보다 바람, 정치보다 경제가 우선돼야 한다고 썼다. 동네의 시장(市場)이 더 반기는 후보가 시장(市長)이 되는 게 낫다는 말이다. 이념적 편가름보단 골고루 잘사는 공존과 상생의 세상은 이상일까.
내일부터 오는 6월2일까지 본격적인 선거유세가 시작된다. 돌아가는 다리를 불태우고 꺼져가는 대구의 심장에 청심환을 갖고 왔다는 김부겸과 대구경제를 살리고 보수의 심장 대구를 지키겠다는 추경호의 투표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달성과 군위에서 분 바람이 찻잔 속 태풍이 될지, 전국을 휩쓰는 쓰나미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혁명적 카드는 김부겸, 로우리스크 미들리턴의 안정적 카드는 추경호"라는 AI 제미나이의 인물평이 재미있는 오늘이다.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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