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빚투, 투자상품 집 이면의 그림자
금리 높아지고 집값 하락때 위험성 커
기회 비용과 삶을 옥죄는 대출의 양면성
사는 곳으로 주거 가치 고민 필요한 때
영끌.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하던 2020년 전후, 마치 경제용어인양 부동산시장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영혼까지 끌어모으다'를 줄여 만든 '영끌'은 가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출과 자금을 끌어 모으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주로 2030세대의 아파트 매수에서 언급되지만, 40대도 마찬가지죠. 주변만 둘러봐도 심심찮게 '영끌' 고백(?)을 듣곤합니다. 근로소득만 모아선 집을 사기 힘든 현실에서 영끌은 무거운 빚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오늘날 우리의 숙명일지도 모릅니다.
대출은 사실 위험하기만 한 건 아닙니다. 황병우 iM금융그룹 회장이 과거 DGB대구은행(현 iM뱅크) 신임 행장에 선임되며 했던 인터뷰에서 '따뜻한 금융'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숫자로 정의되는 차갑고 냉정한 금융에서 '따뜻함'이라니요. 신용도나 담보력이 부족해 '성장(재기) 사다리'를 타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지원(대출)을 의미했습니다. 대출이 기회비용을 제공하는 '따뜻함'도 있지만, 때론 감당 못할 차가운 덫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습니다. '영끌'이 '빚투(빚내서 하는 투자)'가 되는 아슬아슬한 줄다리기가 위험한 이유이죠.
◆'빚투'로 내몰다
30대 직장인 김선영씨는 지난 1월 신혼집으로 대구 달서구 신축아파트를 6억원대로 매입했습니다. 대출만 4억7천여만원에 이릅니다. 생애최초 주택구입으로 LTV(담보인정비율) 80%를 인정받아 가능했습니다. 4.2% 6개월 고정 후 변동금리가 적용되는 상품입니다. '40년 만기'로 선영씨 부부가 갚는 돈은 월 200만원이 조금 넘습니다. 부부는 집값이 오르면 차익을 실현해 수성구에 진입할 계획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장밋빛' 기대만 있는 건 또 아닙니다. "지금은 아이도 없고 맞벌이를 하고 있어 (이자를) 감당할 수 있지만, 한 명이 일을 못하거나 금리가 계속 오르면 하우스푸어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있어요." 선영씨의 걱정처럼, 대출금리가 1%만 올라도 부부가 감당할 비용은 한달 30만원이나 더 불어납니다. 약 700만원 가구소득 중 30% 이상을 금융비용으로 지출하게 됩니다. 일상에서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 하는 한계치에 다다를 수 있는 불안감의 배경입니다.
대구 실물경제 지표는 가계부채에 경고 시그널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서 대구 예금은행 가계대출 규모를 살펴보면 지난 2월 기준 43조6천48억원입니다. 주택담보대출(주담대) 비중이 82%(35조6천150억원)로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고금리 기조가 길어질 경우 이자 부담을 버티지 못할 한계가구의 연쇄 부실이 우려되는 대목이지요.
대구지역 최근 5년 간 주택담보대출 추이
대출규제 허들이 다소 낮은 2금융권으로 확장하면 증가세가 더 아찔합니다. 5년 전만 해도 25조7천400억 수준이었으나 2022년 2월 28조4천500억대로 불었고, 12월에는 30조마저 넘습니다. 그해 대구 주택시장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돌아서면 신고가 소식이 들리던 아파트 가격 급등기입니다. 물가상승률이나 근로소득 증가율을 비웃듯 무섭게 오른 집값이 '빚투'를 부추긴 거죠. 집값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믿음과 '영끌'하지 않으면 앞으로 집을 사기 어려울 것이란 불안감이 우리를 빚투로 내몰고 있었죠.
2022년으로 돌아가, 당시 매입한 대구 아파트는 기대처럼 올랐을까요. 한국부동산원을 통해 대구 아파트 가격을 비교했습니다. 기준은 급등기이던 2022년 1월 첫주입니다. 1년 뒤 대구 집값은 평균 12.51% 떨어졌습니다. 고통은 이제 시작입니다. 24년 1월에는 하락폭이 19.43%, 2025년은 23.49%까지 커집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2026년 5월 2주 현재 '-26.72%'가 됐습니다. 달서구는 -31.97%까지 하락했죠. 5억 하던 집이라면 3억4천만원까지 떨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지금도 대구 집값은 내림세이고, 이 하락폭도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큽니다. 고점에 영끌로 집을 사들인 대구 차주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는 지점이죠.
◆집이 만든 깊은 부채의 '늪'
'금융'은 사다리가 될 때 따뜻합니다. 하지만 사다리가 닿은 곳은 차가운 늪이 되기도 합니다.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가정 소비가 둔화되고,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거시적 영향은 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앞서 언급처럼, 집값은 떨어질 수 있습니다. 대구시민들은 이미 절감하고 있습니다. 금리도 높아질 수 있고, 차주의 이자 부담 역시 눈덩이처럼 불기도 합니다. 한국은행 공시한 주담대 금리는 작년 10월(3.98%)부터 6개월 연속 올라 2026년 3월 평균 4.34%에 이릅니다. 5월 현재 금리 상단은 5%를 넘었습니다. 커진 이자부담이 삶을 흔들 수 있다는 경고가 현실이 되는 배경이지요.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법원의 경매 건수입니다.
영남일보가 법원 등기정보를 활용해 임의경매가 결정된 대구의 모든 부동산을 추출했더니 최근 10년사이 급격히 늘었습니다. 임의경매는 금융권이 대출 이자를 못 낸 사람의 집을 경매에 넘기는 과정으로, 가계부채의 건전한 시스템 붕괴로 해석됩니다.
2022년까지 1천건대에 머물던 경매 물건은 2023년 2천678건으로 급증했고, 2024년에는 3천722건까지 치솟습니다. 작년 역시 고점 수준인 3천591건에 이르고, 올해는 작년보다 더 많습니다.
영남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김도연 교수는 "실물경제 한파로 늘어난 원리금 부담을 이기지 못하는 가구가 많아진다는 것은 심각한 경고음"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경매가 급증한 2023년은 집값 상승기가 꺾이며 하락세로 전환됐고, 매매 거래도 되지않던 매서운 한파가 닥친 시기입니다. 2022년 고점에 사들인 '영끌족'의 변동금리 갱신 시점이기도 합니다. 2021~2022년 소득 대비 갚아야 할 원리금 비율인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은 평균 50~60%. 총 소득의 50% 이상을 금융기관에 내는 구조에서 빚 갚을 능력을 상실한 차주들이 이 숫자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대구에서만 매일 누군가의 '보금자리'가 무거워진 빚에 눌려 일어서지 못한 채 넘어지는, 특별한 누군가의 특별한 사정이 아닌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사정입니다.
김 교수의 진단처럼 대구의 전반적 연체율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iM뱅크의 2026년 1분기 가계부채 연체규모는 지난 분기(965억원) 수준을 넘어선 1천15억원, 연체율은 0.02% 높아진 0.46%이고요. 신용카드 연체율도 2.18%에서 2.25%로 상승했습니다. iM뱅크 지표는 대구경북의 실물경제 흐름으로 읽을 수 있어, 가계부채 부실이 금융 전반의 리스크로 옮겨갈 가능성을 드러내 의미가 있습니다. 대구의 지난 2월 원화대출금 연체율(0.84%)만 봐도 부산(0.85%) 다음으로 전국서 가장 높습니다. 더 우려스러운 대목은 전월대비 증감률인데 한달 사이 무려 0.14%포인트 뛰어 상승폭이 가장 크다는 지점입니다.
실제로 개인 간 채무나 일반 신용대출 문제로 법원 판결을 받아 경매에 넘어간 대구의 강제경매 개시 부동산 물건이 올해 1~4월에만 604건으로 작년(487건)보다 25% 치솟고 있습니다. 가계 기초체력 격인 전반적 유동성이 바닥났다는 신호입니다. 금융당국이 대구 등 지방도시의 DSR을 40% 이하로 낮춰 가계부채 관리에 나서는 배경입니다. 다만 미분양이 많은 대구는 DSR규제가 지역 주택시장 반등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되기도 합니다.
김도연 교수는 금리 인상이나 각종 변수에 대응 가능한 건전한 가계 대출 수준을 소득의 20%로 봤습니다. '건전한 20%'와 현실의 괴리. '영끌'은 개인의 판단입니다만 한편으론 우리 사회가 영끌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따뜻해야 할 금융이 되레 덫이 되고 있는 지금, '사는(Buy) 것'에서 '사는(Live) 곳'으로 주거 본질을 돌아보는 사회의 성찰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윤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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