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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우의 스토리 인문학] 받은메일함 999+천사

2026-05-29 06:00
한국 문학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천사를 찾는다. 천사에게 묻기도 하고, 작가만의 천사를 만들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 문학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천사를 찾는다. 천사에게 묻기도 하고, 작가만의 천사를 만들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천사를 분리한다. 텍스트 안 천사와 내 옆에 있을 천사로.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천사에게 빌었다. 천사에게 빌 일이 없게 해달라고.


내가 원하는 천사/허연 지음/문학과지성사/124쪽

내가 원하는 천사/허연 지음/문학과지성사/124쪽

'천사를 본 사람들은 / 먼저 / 실망부터 해야 한다. // 천사는 바보다. / 구름보다 무겁고 / 내 집게손가락의 굳은살도 / 해결해주지 못한다. // 천사는 바보이고 / 천사는 있다. // 천사가 있다고 믿는 / 나는 / 천사가 비천사적인 순간을 / 아주 오랫동안 상상해왔다. //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 천사를 떠올린다. // 본드 같은 걸로 붙여놓았을 날개가 /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 낭패 당한 천사. / 허우적거리다 / 진흙탕에 처박히는 천사. // 진흙처럼 범벅되는 하얀 인조 깃털 / 그 난처한 아름다움. // 아니면 / 야간 비행 실수로 / 낡은 고가도로 교각 끝에 / 불시착한 천사 // 가까스로 매달린 채 / 엉덩이를 내보이며 / 날개를 추스르는 모습이 그려진다. // 아니면 / 비둘기 똥 가득한 / 중세의 첨탑 위에서 /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 측은하게 지상을 내려다보는 / 그 망연자실. // 내가 원하는 천사다.' (내가 원하는 천사, 허연)


한국 문학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천사를 찾는다. 천사에게 묻기도 하고, 작가만의 천사를 만들기도 한다.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일상에서 천사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서 그런 것일지도, 신에게는 물을 수 없는 것을 천사에게는 물을 수 있어서일지도, 아니면 그냥 천사를 찾는다. 종종 문학 작품에서 천사를 발견하면 천사 입장에서 생각을 하게 된다. 천사는 어떨까. 자신을 찾아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기쁠까. 슬플까. 천사는 상처를 입었을까. 천사는 부드러운가. 딱딱한가.


종종 수다를 떨다가 갑자기 대화 중 말이 멈추면 천사가 찾아왔다고 한다. 인간의 무엇이 궁금해서 천사는 침묵을 깨고 왔을까? 시럽을 젓는 천사. 어디에도 있는 천사. 우는 천사. 신발이 없는 천사. 흑백으로 물든 천사. 흉터에서 시작한 천사. 손을 떠는 천사. 향초 앞 천사. 당신에게도 어떤 천사는 있을 것이다.


천사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내가 정말 힘들 때 옆에 있었던 것인지. 있다면 계속해서 옆에 있어주지 않은 것이. 마음이 쓰인다.


하지만 천사가 운율을 좋아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 운율이 좋아서 인간의 문장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겠지. 인간의 리듬에는 반응해 주는 것이겠지. 그래서 문장에서 더 빛이 나는 것이겠지.


에코의 초상/김행숙 지음/문학과지성사/161쪽

에코의 초상/김행숙 지음/문학과지성사/161쪽

'천국에 의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른쪽과 왼쪽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이야기는 천국에도 있는 것이 이 세계에도 있으면 좋은 것이라는 뜻으로 들렸다가,


이 세계에도 있는 것이 천국에도 있으면 나쁜 것이라는 뜻으로 들리기도 했다. 아, 달빛은 메아리 같아. 꼬리가 흐려지고…… 떨리는…… 빛과 메아리. 달빛은 비밀을 감싸기에 좋다고 생각하다가,


달빛은 비밀을 풀어헤치기에 좋다고 생각했다. 달빛은 스르르 무릎을 꿇기에 좋은 빛, 달빛은 사랑하기에 좋은 빛, 달빛은 죽기에도 좋은 빛,


오늘밤은 천사의 날개가 젖기에도 좋은 빛으로 온 세상이 넘쳐서, 이 세계 바깥은 없는 것 같구나. 우리 도시의 지하에는 커브를 그리며 돌아다니는 열차가 있고, 열차에는 긴 의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긴 의자에 앉으면 천국의 사람들처럼 죽은 듯이 흰자위가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꿈속에서도 서로를 죽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의 눈송이 같은 귀에다 뜨듯한 입김을 불며 속삭여주었다.


인간을 사랑하느냐고 나는 물었고, 그리고 오랫동안 대답을 기다렸다.'(김행숙, 천사에게)


천국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기에 없는 것이 거기에는 있을까. 아니면 반대일까. 이 시를 만났을 때 인간을 사랑하느냐고 나는 천사에게 물었고, 이제는 대답을 들은 것만 같다. 그럼에도 천사에게 다른 질문을 한다. 어리석은 질문. 남들이 다 알고 있을 것이라 민망한 물음을 던진다.


우울한 일. 이를테면 실업급여 신청이나, 허리 디스크, 유통기한이 지난 향초를 버려야 하는 것처럼. 이럴 때에는 천사를 떠올린다.


천사가 나의 옆에 있었다면 그것은 악필이 쓴 문장일 것 같다. 어렵고 난해한 글자들. 그렇게 보여서 아름다웠을. 나의 천사에게. 당신의 천사에게. 천사가 머무는 밤이다. 당신이 숙이고 있는 고개를 들어야 하는 밤이다.


오늘은 부드럽고 차분한 깃털 하나가 나의 시선에서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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