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산학연구원 기획실장
주말 오후 일정 사이에 틈이 생겼다. 어디를 들를까 하다가 달성공원을 찾았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달성공원은 내게 어린 시절의 추억이 겹겹이 쌓인 곳이다. 부모님 손을 잡고 걷던 길, 철창 너머 동물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시간, 오래된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어가던 장면은 아직도 어렴풋이 남아 있다. 달성토성과 이상화 시비가 품고 있는 시간은 나이가 들고서야 더 크게 보였다. 어릴 적에는 그저 놀러 가는 공원이었는데, 이제 와 다시 보니 한 도시의 시간까지 품고 있었다.
달성공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키다리 아저씨다. 어린 내 눈에는 공원보다 그 아저씨가 먼저 보였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움직이는 모습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엄마 손을 잡아끌며 가까이 가보곤 했다. 아이들을 향해 흔들어주던 손짓은 공원에 들어서기 전부터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는 내 기억 속 달성공원의 첫 장면이었다.
그날도 무심코 문 앞을 살폈다. 이제 키다리 아저씨는 없었다. 한 사람이 보이지 않을 뿐인데, 공원 입구의 풍경이 전과 다르게 느껴졌다. 세월은 늘 그렇게 오는 모양이다. 오래된 풍경 하나를 조용히 데려가고, 다시 찾아온 사람에게 그 빈자리를 뒤늦게 보여주는 것처럼.
조금은 허전한 마음으로 공원 안을 걸었다. 익숙한 듯 낯선 길을 따라가다 철창 너머 공작새 한 마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마침 공작새는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었다.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공작새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 듯, 천천히 몸을 돌렸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든 햇빛 아래, 깃털은 푸른빛과 초록빛을 오가며 눈부시게 일렁였다.
참 화려했다. 보고 또 보게 만드는 아름다움이었다.
눈부신 깃털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 날개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저 화려한 날개는 날기 위한 것일까, 보여주기 위한 것일까.
눈길을 붙잡는 아름다움과 먼 길을 날아갈 힘은 분명 다르다.
선거철 유세 현장을 지나다 보면 공작새의 날개가 떠오른다. 후보들은 경력과 공약, 구호를 깃털처럼 펼쳐 보이며 시민의 시선을 붙잡는다. 자신을 알리는 일은 필요하지만, 화려함과 책임은 다른 일이다. 그 날개가 시민의 삶을 위한 것인지 우리는 따져 물어야 한다. 바람 빠진 풍선 인형처럼 선거가 끝나자 주저앉을 약속은 아닌지, 시민 곁에 남아 끝까지 지켜낼 약속인지도 보아야 한다.
어릴 적에는 공작새의 날개를 보며 그저 감탄했다. 이제는 같은 장면 앞에서 다른 질문을 하게 된다.
화려하다는 이유만으로 믿어도 되는가.
눈길을 끄는 것과 마음을 맡길 수 있는 것은 같은가.
달성공원을 나서며 다시 공작새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아름다웠다. 다만 우리의 삶을 맡길 정치라면, 눈부신 깃털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치는 행동하지 않는 시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감탄만 하고 돌아서는 시민 앞에서는 화려한 깃털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묻고 기억하며 선택하는 시민 앞에서는, 정치도 끝내 시민의 삶을 책임질 날개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눈부신 깃털보다, 시민의 삶을 등에 지고 끝까지 날아갈 날개를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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