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진 대구대 총장
주말 아침에 선거 차 한 대가 유세 송을 크게 틀어놓은 채로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아가면서 모처럼의 망중한을 깨뜨린다. 전국동시지방선거가 한창이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마다 현수막이 어지럽게 내걸려 있다. 동네 입구 사거리에는 선거 운동원들이 번갈아 가며 지지 후보를 알리느라 열성이다. 무심하게 지나는 유권자는 후보의 치열함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쁘게 제 갈 길을 간다. 특정 후보를 마주친 기억조차 하지 못할 듯하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행인들에게는 시끄러운 한낱 소음에 불과하다.
같은 길을 걸어도 보는 풍경이 다르고 기억하는 장면이 제각각인 일이 허다하다. 아침 산책길에는 한 무리 새가 줄지어 날아가는 장면에 시선이 간다. 하지만 사람마다 본 장면이 모두 같지는 않다. 선거를 대하는 시민들의 태도도 다르지 않다. 치열한 선거 운동이 벌어지는데도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 사람조차 드물다. 바삐 오가는 직장인과 학생들에게 후보들이 저마다 내건 어지러운 현수막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식과 정보의 홍수 시대다. AI를 활용하면 누구라도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오프라인의 경험보다 온라인으로 보고 듣는 정보가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좌우한다. 지역의 현안은 잘 몰라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는 일들은 방송, 신문, 온라인을 통해 자주 들어서 잘 안다. 정작 우리 지역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이 뭐였더라 되묻게 된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막상 선거철이 되어 우리 동네와 지역을 위해 일할 후보를 고르는 일이 쉽지 않다.
온라인 매체가 정교하게 발전한 알고리즘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듣고 싶은 것만 들려준다. 사용자의 선호를 반영하여 사용자에게 최적화된 편향된 정보가 연달아 제공된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사람들이 가진 편견은 강화되고 시야는 더욱 편협해지게 된다. 유난히 시선을 끌어당기는 일은 부각하여 본다. 청년 시절 여름휴가 나온 어느 날에 동성로에 나갔다가 군인이 유독 많이 눈에 띄었던 기억이 난다. 그날만 특별히 군인이 많은 것이 아니었는데도 군인이던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보고 싶은 것만 보이고 듣고 싶은 것만 들린다. 인간의 감각 기관과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이 그렇다.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온 세상이 한 색상으로 보인다. 선거를 앞두고 진영대결이 치열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상대 진영을 향한 네거티브와 흑색선전이 기승을 부린다. 짧은 선거기간 내에 사실관계가 제대로 밝혀지기는 어렵다. 온라인에서 오가는 험악한 공방을 보자면 한 사회에서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서로 딴 세상을 사는 듯이 하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빨간 대한민국 국민과 파란 대한민국 국민은 마치 딴 나라 사람 같다. 우리 사회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지난 주말 사전투표가 진행되었다. 전국적으로 사전투표율이 높았다. 지방자치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이 높으니 좋은 일이다. 지역을 위해 일할 일꾼이 누구인지 진지하게 판단하여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세상을 흔드는 거대 담론이 지역 일꾼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사회를 둘로 나누고 분열을 조장하는 진영 갈등이 지역의 현안을 해결하는 선택에 판단기준이 되어서도 안 된다. 선거공보물을 꼼꼼하게 살펴보자. 모든 유권자가 지역 주민의 시각으로 지역을 위해 일할 참일꾼을 뽑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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