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
'민주주의의 꽃'. 선거의 다른 이름이다. 근대 민주주의의 시작으로 평가받는 프랑스혁명과 미국의 독립혁명도 국민이 자신의 대표를 뽑을 수 있는 투표권을 요구한 데서 비롯되었다. 우리 현대사에서 민주화의 위대한 분기점이었던 6월항쟁 역시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주권자들의 함성이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시작이고 민주주의의 필수 핵심 요소인 것이다. 국민이 주권자로 나서는 첫발이고 그래서 '민주주의의 꽃'이라 한 것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 그러나
그러나 역사는 '민주주의의 꽃'이 늘 아름답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통렬하게 보여주었다. 피기도 전에 꺾인 꽃이 있는가 하면, 끝내 열매를 맺지 못한 꽃도 있었다. 장식용으로 잠시 쓰이고 버려져 밟힌 꽃도 있었다. 예컨대 히틀러도 선거의 결과였다. 트럼프와 윤석열도 모두 선거라는 민주적 제도를 통해 집권했다. '완장 찬 권력자'를 상징하는 소설 속 엄석대 또한 몰표로 6학년 반장에 선출된 아이였다. 모두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획득한 권력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하거나 파괴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선거 자체가 민주주의를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선거 관리 기관, 출마 후보들, 팩트체크와 공정 보도로 민주적 공론장을 만들어야 할 언론들 그리고 유권자까지, 모두 '게임의 룰'을 지키며 각자의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멋진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낼 수 있다. 먼저 선거관리위원회는 작은 오해와 의혹도 사지 않도록 공정한 선거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공정 경쟁의 룰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후보와 정당과 편파 언론은 민주주의의 공적으로 규정해 엄하게 벌해야 마땅하다.
내일 선거에 출마한 7천700여명의 후보들도 오늘 자정까지 게임 룰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매표와 막판 흑색선전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그리고 유권자의 선택 결과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승복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정치학자 아담 프쉐보르스키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저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등은 민주주의의 본질이 '패자의 승복'과 '승자의 관용'에 있다고 강조해 왔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인 남북전쟁은 링컨 대통령의 당선에 남부 주들이 불복해 발생한 것이었고, 미국 현대사의 큰 수치로 남은 2021년 1월 의회 의사당 폭동 역시 재선에 실패한 트럼프 지지세력이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초래된 비극이었다.
하지만 선거와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는 유권자다. 우리의 선거 역사도 어느덧 78년이 됐고 민주주의에서도 세계 모범국이 된 우리다. 많은 나라가 우리의 민주시민의식을 보고 배우겠다고 내일을 지켜보고 있기도 하다. 이제는 관권 선거, 돈 선거, 지역주의 선거와 같은 구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냉철한 이성에 기대 판단하고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그래야 선거 결과가 집단지성의 품위와 무게를 지닐 수 있고, 우리 사회가 문제의 답과 동력을 쥘 수 있게 된다.
교육철학자 존 듀이도 우리가 맞서야 할 가장 큰 위험은 외부가 아니라 '생각하지 않거나 관습의 틀 안에서만 생각하려는 우리 자신'이라고 지적했다. 귀담아들을 말이다. '모든 국민은 그들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오래된 경고도 깊이 새겨야 할 때다. 오늘 하루, 성숙한 유권자로서 곱씹어 따져봐야 할 몇 가지 기준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지역 대표를 뽑는 선거인 만큼 지역 고유의 사정과 현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후보를 가려내야 한다. 지역민이 무엇을 불편해하고 무엇 때문에 분노하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소통하며 그 위에서 답을 찾고 실질적으로 해결해 낼 후보를 찾아야 한다. 당선 후 공천권자의 비위 맞추기에 열중할 후보를 분별해 퇴출시키는 매의 눈도 필요하다.
둘째, 지방선거라고 해서 지역 현안만을 고려 변수로 삼는 '우물 안 개구리식 투표'는 곤란하다. 지금은 나의 지갑 사정과 지역의 살림, 지역 청년의 미래가 중앙정치 및 세계정세로부터 실시간으로 영향을 받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출마한 후보와 그 배후의 정치집단이 중앙정치의 기조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 지난 '12·3 친위쿠데타'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보여 왔는지,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지, 그 파고 속에서 지역생존 전략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까지 두루 따져보아야 한다.
셋째, 유권자 자신은 '시장의 소비자'인 동시에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시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신자유주의 사조가 압도하면서 전자가 일방적으로 강조되어 온 것이 오늘날 세계적인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게 된 비극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역개발, 소득 성장, 자원 배분과 같이 소비자로서 관심갖는 공약뿐만 아니라, 책임있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요구에 누가 제대로 답하고 있는지 찾아야 한다. 예컨대 '이등 국민'으로 철저히 소외되어 온 지방민의 무너진 자존감과 굴욕감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 약자에 대한 혐오와 조롱에 빠지거나 혹은 스스로 고립과 은둔을 택한 지역 청년을 어떻게 민주시민으로 다시 세워낼 것인지, 국가 폭력과 헌정 중단의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민주주의 시스템과 민주시민 교육을 어떻게 다시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과 역량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숙한 민주시민의 신성한 책무
오늘날 후보에게 요구되는 덕목과 자질은 간단하지 않다. 거시적인 구조와 세계사의 흐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지역 현안을 풀어낼 후보, 지역 골목과 주민의 일상에 대한 섬세한 이해를 토대로 중앙정치에 대응할 수 있는 후보를 찾아야 한다. 소비자로서 겪는 불편뿐만 아니라 민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제기하는 가치 지향적 요구에도 진지하게 답하는 후보를 가려내야 한다. 단순 논리와 이분법적 사고로는 오늘날 민주주의 꽃을 피워내는 것은 물론, 우리의 삶조차 온전히 지켜낼 수 없다. 지역과 국가와 세계, 그리고 사회와 유권자의 다층적 변수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복합방정식 문제'를 풀어낼 능력을 갖춘 후보를 골라내야 한다. 후보들의 과거 이력과 그들의 문제의식, 능력을 냉정하게 따져보는 오늘 하루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내일 선거가 진정 민주주의의 꽃으로 아름답게 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