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6·3 지방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5월28일 오후,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전북도지사 선거에 대해 5개의 글을 집중적으로 올렸다. 그의 한결같은 메시지는 "전북에서 민주당이 무너지면 이재명 대통령이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민주당은 전북지사를 비롯해 14개 시·군 단체장과 광역의회를 사실상 독식하는 '일당독재'의 위업을 달성했으니, 대통령의 위험은 사라졌는가?
왜 다른 선거도 아닌 지방선거에서 자기 정당에 대한 지지를 요청하면서 대통령이 위험해진다고 호소하거나 협박하는 수법을 쓰는가? 지방선거가 대통령의 안전을 관리하거나 책임지는 선거인가? 아니, 이게 지방자치란 말인가? 정치학자 박상훈이 선거 일주일 전 경향신문 5월27일자 칼럼에서 한 다음 말이 생각났다.
"'지방선거'는 이상한 말이다. 실제로는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공천은 중앙 권력이 주도한다. 중앙에서 파견된 이들이 지방을 지배한다…주권은 지방에 없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곧 당대표 싸움이다. 공천의 수혜자들은 중앙의 권력 경쟁에 동원되어 받은 만큼 보답해야 한다. 기획 공천의 생명 원리는 철저한 상부상조다…모두가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국가 예산을 더 많이 차지하려 달려드는 것을, 지금 우리는 지방자치라 부르고 있다."
우리는 모두 말과 현실이 따로 노는 집단사기극을 벌였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겠는가 그게 우리의 현실이라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 그렇게 체념하면서도 체념하지 않는 도발적인 주장에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선거기간 중 쏟아져 나온 수많은 칼럼 중 가장 내 눈길을 끈 건 한겨레 선임기자 성한용이 쓴 "대구경북 출신 '서울 사람들', 기득권 지키려 지역감정 이용했다"는 제목의 한겨레 6월1일자 칼럼이었다. 그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티케이들은 고향이 대구 경북일 뿐 엄밀히 말하면 대구 경북 사람들이 아닙니다. 패권적 지역주의를 자신의 출세에 이용하는 '대구 경북 출신 서울 사람들'입니다. 집도 대개 서울 강남에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권력과 재산이 가장 중요합니다. 고향 사람들이 먹고사는 데 별 관심이 없습니다. 대구 경북의 지역감정을 자극해서 자신의 출세에 이용합니다. 지난 수십년간 수도권 집중으로 지방 소멸을 가져온 주범이 바로 이들입니다. 티케이들 때문에 대구 경북이 못살게 된 것입니다."
그간 지역주의·지역감정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사람으로서 반가웠다. 무엇보다도 누군가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글을 쓴 용기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감사의 뜻으로 내 생각을 좀 보태고 싶다. "지역감정을 자극해서 자신의 출세에 이용", "지방 소멸을 가져온 주범", "티케이들 때문에 대구 경북이 못살게 된 것" 등과 같은 표현을 순화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완곡어법을 쓰자는 게 아니다. 사안의 복잡성을 같이 고민해보자는 뜻이다. 달리 말해, 지방자치는 우리 대부분이 알게 모르게 공범으로 참여하고 있는 집단사기극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눈을 돌려보자는 것이다.
한국의 눈부신 압축성장은 우리 모두 자랑스럽게 생각할 만한 일이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지금 우리는 압축성장의 비용을 뒤늦게 치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압축성장의 슬로건은 "개천에서 용 난다"이다.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국제사회에선 '개천에서 난 용'이 아닌가. 특히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의 대표선수 기업들은 세계 무대에서 선두를 달리며 맹활약하고 있다. 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한 일인가. 우리는 내부적으로도 수많은 용을 배출했고, 내 집안은 아닐망정 한두 다리만 건너면 '개천에서 난 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정이 그러하니 "개천에서 용 난다"를 우리의 국가·국민적 이데올로기로 삼는다 한들 무엇이 문제이랴.
한국의 발전 모델은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이었다. 성공했다. 문제는 그 부작용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지방 소멸이다. 이제 그 문제를 알게 되었으니 바로 잡으면 될 게 아닌가. 아니다. 그럴 수가 없게 돼 있다. 이른바 '경로의존' 때문이다. 경로의존은 한 번 경로가 결정되고 나면 그 관성과 경로의 기득권 파워 때문에 경로를 바꾸기 어렵거나 불가능해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서울에 이미 집중돼 있는 정치경제적 권력과 사회문화적 권력은 계속 지방민을 서울로 불러들인다. 특히 한국형 계급투쟁의 주요 관문인 명문대학이 그런 유인의 '삐끼' 역할을 하고 있다.
대통령이 장기적 비전, 단호한 결의, 국민을 설득할 역량을 갖고 있다면 경로의존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도 있지만, 그건 이론일 뿐이고 실제로 우리에게 그런 지도자는 없었다. 떠들어댄 말이 있어 국가균형발전 시늉을 내는 집단사기극만 번성했고, 서울에 둥지를 튼 지방 출신의 엘리트 세력은 사회적 주류의 위치를 차지했음에도 그런 사기극에 협조하거나 방관하는 자세를 취했다. 바로 이 점에서 영남 엘리트와 호남 엘리트의 차이는 없다. 그들은 한통속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서울 중심의 압축성장이 워낙 오랜 세월에 걸쳐 거대한 구조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인지라 특정 집단을 지목해 비판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게다가 '구성의 오류'라는 문제도 있다. 우리는 지역의 이익과 지역민의 이익이 같을 걸로 생각하지만, 그게 꼭 그렇진 않다는 데에 지방의 비극이 있다. 지방대학이 쇠락하거나 죽는 건 지역의 손실이지만, 자식을 서울 명문대에 보내는 건 지역민의 이익이다. 각 가정이 누리는 이익의 합산이 지역의 이익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손실이 되는 '구성의 오류'가 이런 식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지방에서 이런 구성의 오류는 전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이는 가족공동체의 가치가 지역공동체의 가치와 공존하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압도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설과 추석 때의 민족대이동이 잘 말해주듯이, 수도권 인구의 다수는 지방 출신이다. 이들의 존재가 시사하듯이, 누구건 지방에서 서울로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실제 이상으로 과장되게 인식되고 있어 지방민이 당연히 느껴야 할 문제의식과 분노를 억누른다. 이게 바로 '지방자치'라는 집단사기극이 건재할 수 있는 최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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