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원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문학평론가
임금을 많이 지급하는 것과 노동 시간을 단축하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노동자에게 더 좋은 일일까. 요근래 특정산업의 활황으로 인해 상여금 지급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지대한 관심을 받는 상황에서 상승분의 임금에만 유독 집중해서 주목하는 현상을 생각하면 전자를 택할 가능성이 높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일본의 마르크스 연구자 사이토 고헤이는 자신의 저서 '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에서 노동 시간 단축이 더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임금을 많이 받게 되면 은연중에 일을 더 오래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또한 불어난 임금을 통해 자신의 삶을 외주화 하는 방법을 취하기 쉬운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외주화란 스스로 해결 가능한 일을 돈으로 구매하는 방식을 뜻한다. 가령 밥을 직접 지어 먹는 대신에 외식을 한다거나 아이를 돌보는 대신에 베이비시터를 둔다거나 하는 생활을 떠올리면 된다. 실제로 현실의 우리는 삶을 유지하고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필수노동을 서비스업을 이용해 해결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사이토 고헤이는 저와 같은 방식의 삶이 우리 스스로가 지닌 다양한 창조 능력을 상실하게 만들고 동시에 개개인의 삶과 공동체가 지속하는 과정에 꼭 필요한 필수노동이 지닌 가치를 소홀히 여기기 쉽다고 지적한다. 가성비를 따져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판단이 들면 많은 일들을 소비의 영역에 두게 되며, 자연스럽게 소비를 수월히 하기 위해 돈을 더 많이 버는 일에만 관심을 두게 된다. 그 사이 아이를 돌보면서 경험하게 되는 삶의 기쁨과 신비, 음식을 직접 만들어 누군가의 식욕을 달래주며 경험하는 어떤 충만함 등은 잊히거나 특별히 가치 있는 일로 여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돈으로 구매하는 생활의 목록이 늘어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무력한 소비자로 머물게 된다는 뜻이다. 사이토 고헤이는 이를 노동력이 상품 속에 갇힌 세계의 풍경이라고 설명한다.
퇴근길 열차 안에서 노을을 얼굴에 담은 사람들을 보았다/모두 같이 빛나는 물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집에 불을 밝히러 거의 사라진 노을을 데리고 간다/너무 밝은 것은 함께 갈 수 없다
강지이의 시 '궤도 연습3'이다. 퇴근길 풍경이 아련하고 어딘가 애틋하다. 빛나는 사물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린 장면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상할 줄 아는 존재임을 증명해 보인다. 우리에게는 분명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아름다움과 풍요에 시선을 둘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런데 그 능력을 위협하는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가 바로 돈을 버는 데만 몰두하는 장시간의 노동이다.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에 어두움을 불러와 여러 가지 활동을 불가능하게 한다. 퇴근길을 그리던 시인이 "너무 밝은 것은 함께 갈 수 없다"고 적은 맥락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이토 고헤이는 노동하지 않는 삶이 좋은 삶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대신 이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필요에 의한 노동으로 전환하는 사회를 이야기한다. 삶이 진정 풍요롭기 위해서는 돈이 아닌 다른 것을 욕망하고,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때때로는 무용하게 낭비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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