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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재현의 사진 귀 기울이기] 나무, 살아내다

2026-06-26 06:00
윤길중 작

윤길중 작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모든 노래가 내 이야기인 듯 감미롭다. 하지만 이별 후에는 평범한 노래 가사 한 줄에도 마음이 무너지곤 한다. 노래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듣는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눈앞에 있다. 어떤 이는 하늘과 나무를 보고, 어떤 이는 가지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본다. 그리고 누군가는 금세 쓰러질 듯 위태로운 나무의 몸짓에 자신의 삶을 겹쳐본다. 사진가 윤길중에게 나무는 그런 존재였다. 나무를 오래 바라보다 보면 사람의 삶과 닮은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 6월은 나무에게 가장 왕성한 성장의 계절이다. 봄에 틔운 새잎이 완전히 펼쳐지고 광합성이 활발해지며, 줄기와 가지는 굵어지고 뿌리는 더 깊이 땅속으로 뻗어간다. 사람으로 치면 한창 기운이 넘치는 청년기와도 같다. 그런데 윤길중의 '나무, 살아내다'에 등장하는 나무들은 조금 다르다. 잎이 가장 무성해야 할 여름, 오히려 자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채 쓰러지는 나무들이 적지 않다. 촬영 중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가 쓰러지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한 그는, 언젠가 다가올 자신의 삶 또한 그 안에 겹쳐 보았다고 말한다. 그가 카메라에 담은 것은 시화호 인근 늪지에서 살아가는 기이한 형태의 버드나무들이었다.


윤길중 작

윤길중 작

시화호에 방조제가 들어서며 섬이었던 형도는 육지가 되었다. 어부들이 바닷물의 흐름과 깊이를 가늠하던 기준이 되어 저울 형(衡) 자를 써서 형도라 불렸지만, 지금은 인간의 욕망이 남긴 상처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땅에 가깝다. 방조제 건설 초기, 돌산이었던 형도의 중심부부터 깎고 채석해 사용하고, 남은 흙은 갯벌 위에 쏟아부었다. 그즈음부터 물을 좋아하는 버드나무들이 자연스레 군락을 이루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과 1미터 남짓 아래에는 여전히 짠 바닷물이 남아 있었다. 나무들은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없었고, 단단한 버팀목 없이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가야 했다. 바람에 쓰러져 허연 뿌리를 드러내고 옆으로 누운 나무들은 그래도 살자고, 살아보자고 하늘을 향해 잔가지를 뻗어 올린다. 나무 작업을 위해 2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던 윤길중은 우연히 시화호 인근 늪에서 이 기이한 풍경과 마주했다. 처음에는 멀리서 망원렌즈로 바라보았지만, 어느 날 용기를 내 장화를 신고 늪 안으로 들어갔다. 희뿌연 안개가 내려앉은 벌판 곳곳에서 그렇게 그는 상처 입은 나무들을 만났다.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나무들은 가지가 부러지고, 몸통이 기울고, 뿌리를 드러낸 채 위태롭게 서 있었지만, 처연할 만큼 아름다운 생명력 앞에서 그는 오래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차가운 바람에 쓰러질지언정 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운명에 순응하는 나무들은, 그에게 큰 위안과 치유로 다가왔다.


윤길중 작

윤길중 작

그 시절 누구나 궁핍했듯 윤길중 역시 어린 시절 30번이 넘는 이사를 하며 전세방을 전전했다. 빚만 물려받은 장남으로 살아가는 일은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발버둥과도 같았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낸 끝에 이제야 조금 숨을 돌리나 싶었을 무렵, 갑상선암이 찾아왔다. 삶이 갑자기 멈춘 느낌이었다. 수술과 항암 치료를 마친 그는 집으로 향하지 않고 곧바로 카메라를 들고 길을 떠났다.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정처 없이 떠돌며 셔터를 눌렀다. 항암 치료로 음식을 삼키기도 힘들었지만 카메라를 들고 있는 순간만큼은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사진은 그에게 유일한 치유의 도구였다. 그 무렵 만난 것이 버드나무였다. 쓰러졌지만 삶의 끈을 놓지 않은 나무들. 흐린 하늘 아래 휘어진 줄기와 부러진 가지들은 상처의 흔적인 동시에 살아남으려는 의지처럼 보였다. "아, 그래. 쓰러진 나무들은 최소한 바람 걱정은 하지 않고 살아가겠네." 나무에게 이렇게 말을 걸면 "경쟁의 대열에서 한 발짝만 비켜나면 다른 세상이 보여"라고 답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은 한꺼풀 꺾였던 그의 삶의 의지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윤길중 작

윤길중 작

윤길중은 오십이란 늦은 나이에 사진예술에 뛰어들었다. 비전공자라는 꼬리표와 사업가가 취미로 사진을 한다는 편견은 늘 그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진의 메커니즘을 탐구하고 작업의 주제와 방식을 고민했으며, 여러 시리즈를 완성하며 자신만의 사진 언어를 구축해왔다. 사실 돌아보면 그의 카메라는 늘 중심이 아닌 주변을 향했다. 재개발을 앞둔 젊은 시절 자신의 추억이 담긴 골목과 집들의 사라져가는 풍경, 세상의 관심에서 소외된 중증장애인들의 삶,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자리를 지켜온 석인과 석장승, 그리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기록한 250여 개 사찰의 큰법당까지. 소재는 달랐지만 그가 바라본 것은 언제나 같았다. 사라져가는 것들, 상처 입은 것들, 그리고 끝내 버텨내고 있는 것들. 그가 사진을 통해 마주한 것은 늘 그 안에 깃든 삶의 본질이었다. 그에게 삶은 언제나 작업의 출발점이었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단순한 기록에 머물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대상을 넘어 존재의 의미를 묻고,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어쩌면 그의 사진이 귀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윤길중 작

윤길중 작

7년의 시간이 흐른 뒤 사진가 윤길중은 형도를 다시 찾았다. 그 사이 버드나무들은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크게 달라진 것은 나무보다 그의 마음이었다. 한때 나무들에게서 큰 위안을 얻었던 그는, 이번에는 자신이 나무들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 마음은 작업 방식에도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이전 작업이 나무의 삶을 바라보는 과정이었다면, 이번 작업은 오랜 친구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과정에 가깝다. 마치 자신의 손길로 약을 발라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사진에서 가장 마음이 머무는 부분을 출력한 뒤, 한 장은 가로로, 다른 한 장은 세로로 얇게 잘라 마치 천을 짜듯 씨실과 날실로 한 줄 한 줄 엮어 나갔다. 나무의 상처를 어루만지듯 말이다. 이 작업을 하는 동안 지문이 닳아 공항검색대에서 스캔이 어려울 정도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흑백의 버드나무는 화사한 색을 입었고, 한때 나무에게 위로 받았던 사진가는 나무를 위로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윤길중 작

윤길중 작

그의 작업에선 윤길중 전용이라 불릴 만큼 유명한 한지를 빼놓을 수 없다. 가지 끝에 바람이 엉겨 붙은 듯한 질감, 세월을 고스란히 품은 석상의 얼굴, 생화와 조화의 경계를 허문 작업까지, 그의 작업에서 한지는 또 하나의 결정적 소재였다.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색과 결을 구현하기 위해 전국을 수소문한 그는 마침내 한지 장인을 만났다. 전통을 되살리려는 그의 마음에 공감한 한지 장인과 함께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좌절과 희망이 교차하는 긴 시간은 그의 애간장을 태우기에 충분했다. 사실 한지 작업은 누구도 쉬이 도전할 수 없는 힘든 여정이다. 자연의 방식을 담으면서 동시에 안정적인 프린팅까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은 맥이 끊어지다시피 한 전통 외발뜨기를 다시 구현한 끝에, 유구한 세월 선조들의 시·서·화를 품어온 한지는 윤길중의 작업을 다시 품어주었다.


사진가 윤길중. 어쩌면 그는 사진과 첫사랑에 빠진 '사진 바라기'인지도 모른다. 꼭 해야 할 일을 제외하고는 늘 작업실에 머문다. 사진이라는 친구와 대화하고 작업에 몰두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그다. 사랑하는 누이의 죽음, 본인 역시 두 번이나 마주했던 생사의 경계,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며 자연과 인간, 환경을 향한 그의 관심은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또 다른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하나의 시리즈를 마치고 다음 작업을 고민할 때, 윤길중은 해야 할 이야기와 만나야 할 풍경이 아직도 너무 많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의 시선 한켠에는 늘 나무가 있다. 어쩌면 윤길중은 오래전부터 나무를 찍어온 것이 아니라, 나무를 통해 삶을 배워온 것인지도 모른다. 바람에 뿌리가 뽑힐지언정 삶을 포기하지 않는 법을, 쓰러질지언정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는 법을, 살아냄을 몸으로 보여주는 나무들이 오늘도 살자고, 살아내자고 조용히 속삭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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