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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만나는 우리동네 문화유산] 130년 신앙과 역사가 머무는 곳, 칠곡 가실성당

2026-06-27 14:58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가실성당. <마준영기자>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가실성당. <마준영기자>

낙동강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는 칠곡군 왜관읍 낙산리.


초여름 햇살이 내려앉은 오전, 마을 입구에서 주민 곽경수(67) 씨를 만났다. 기자가 "가실성당까지 얼마나 걸립니까"라고 묻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천천히 걸어가이소. 성당은 빨리 보는 데가 아입니더. 올라가는 길부터가 역사라예."


곽 씨와 함께 마을 안길을 따라 걷자 붉은 벽돌 위의 첨탑이 나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성당으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한적했다. 골목을 스치는 바람 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만 귓가를 맴돌았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가실성당은 마치 한 세기 전 시간 속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1895년 설립된 가실성당은 대구 계산성당에 이어 대구대교구 두 번째 본당이다. 당시 경북 북부는 물론 상주와 문경, 안동 일대까지 관할하며 영남 북부 천주교 선교의 중심 역할을 했다.


성당 앞마당에 들어서자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현재 건물은 1923년 완공됐다. 서울 명동성당과 대구 계산성당 설계에도 참여한 프랑스 출신 박도행(빅토르 푸아넬) 신부가 설계를 맡았다. 가까이 다가가 벽면을 살펴보니 벽돌마다 색감이 조금씩 달랐다. 한 장 한 장 사람 손으로 쌓아 올린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곽 씨는 성당 외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릴 적에는 이 건물이 그렇게 큰 줄 몰랐심더.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이 참 대단한 건물이더라고예. 동네 사람들은 그냥 성당이라 카지만, 외지 사람들은 다 문화재 보러 오는 기라예."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분위기는 더욱 엄숙해졌다.


높은 천장과 구조물이 만들어내는 공간감,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햇살이 바닥에 길게 내려앉았다. 발걸음도 자연스레 조심스러워졌다.


가실성당은 단순한 종교시설을 넘어 근현대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은 대한민국 운명을 가른 격전지였다. 왜관과 다부동 일대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당시 가실성당은 임시 야전병원 역할을 하며 부상병들을 돌봤다.


총성이 울리던 전쟁 한가운데에서도 생명을 살리는 공간이었던 셈이다.


성당 뒤편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옛 사제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층 건물 특유의 소박함이 묻어나는 공간이다. 선교사들이 생활하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동행한 이은수(60) 이장은 "가실성당은 우리 마을의 자부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당은 한국전쟁도 겪었고 산업화도 겪었지만 늘 제자리에 있었다"며 "멀리 나갔던 사람들도 고향에 오면 가장 먼저 성당을 찾는다"고 했다.


이어 "최근에는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 사진만 찍고 가기보다 성당이 품고 있는 역사까지 함께 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최근 가실성당은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느껴지는 진짜 매력은 화제성이 아니다. 성당이 품고 있는 고요함과 역사성이 더 크게 다가왔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가실성당. 멀리 낙동강이 보인다. <마준영기자>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가실성당. 멀리 낙동강이 보인다. <마준영기자>

성당 마당 한쪽 벤치에 한참 앉아 있다 언덕 위에 올라 낙동강을 바라봤다.


강물은 말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위로 산 능선이 펼쳐졌다. 성당이 왜 이곳에 세워졌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높은 언덕 위에서 강과 마을을 품어 안는 자리였다.


곽 씨는 "비 오는 날 와보이소. 안개가 낙동강 위로 올라오면 성당이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심더"라며 환하게 웃었다.


오랜 세월 동안 가실성당은 신앙의 공간이자 마을의 상징으로 살아왔다. 일제강점기와 전쟁, 산업화와 도시화를 모두 지켜본 증인이다.


문화유산은 오래된 건물을 뜻하지 않는다. 그 공간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존재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가실성당이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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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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