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근 영주시 하망동 14통장, 1980년 임명 뒤 44년째 마을 지켜
"어려운 이웃 살피는 게 보람…새로 뽑힌 정치인들 공약 지키는지 두 눈 뜨고 볼 것"
영주시 하망동 14통장 박영근 씨가 인터뷰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권기웅기자>
경북 영주시 하망동에서 '뉴명동 세탁소'를 운영하는 박영근(74) 씨는 1980년 4월 1일 하망동 14통장으로 임명됐다. 전직 하망동 통장협의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40년 넘게 한 동네의 통장을 맡아 왔다. 행정의 말단 조직이지만, 박씨에게 통장 일은 단순한 행정 전달이 아니었다. 그는 "처음에는 봉사활동이었다. 월급이라는 게 전혀 없었다"고 했다.
박씨가 통장 일을 시작한 것은 군 제대 뒤였다. 당시 동장이 직접 찾아와 "동네 일을 좀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동장이 와서 사정을 하니까 동네 일을 좀 도와주자고 생각했다"며 "그때는 통장 일이 돈을 받고 하는 일이 아니라 주민을 위해 나서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통장으로 지내며 가장 좋았던 점을 묻자 그는 "주민들과 대화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하다 보면 진짜 어려운 사람들을 알게 되고, 그런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며 "그게 통장을 계속하게 한 힘"이라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도 있다. 지난해 혼자 사는 노인이 저혈당으로 쓰러져 있는 것을 박씨가 발견했다. 그는 곧바로 119에 신고했고, 노인은 목숨을 건졌다. 박씨는 "나중에 그 노인과 아들이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며 "그때 보람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물론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 박씨는 "통장을 그만두려는 생각은 여러 번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그를 붙잡았다. "동네에 통장 할 사람이 없다. 조금만 더 도와 달라"고 찾아오는 이웃들 때문에 그는 쉽게 물러서지 못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쌓였고 어느덧 40년이 넘었다.
가족의 이해가 늘 쉬웠던 것은 아니다. 박씨는 "안사람은 불만이 있었다"고 했다. 예전 통장 일은 지금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갔다. 그는 "가가호호 다니고, 동네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뛰어다니다 보니 시간을 많이 빼앗겼다"고 했다. 행정 안내문 전달부터 주민 민원 확인, 어려운 이웃 살피기까지 통장의 일은 동네 안팎을 오가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박씨가 지금까지 통장을 맡아 온 이유는 주민들의 고마움 때문이었다. 그는 "주민들이 일해줘서 고맙다고 해준다"며 "그런 데서 자부심을 느끼고 뿌듯함을 느끼니까 지금까지 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지금도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다"며 "다른 사람이 하겠다고 하면 언제든 물러서 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씨의 관심은 이제 새로 출범할 지방정부에도 향해 있다. 그는 지난 6·3 지방선거로 시장과 도의원, 시의원이 새로 선출된 만큼, 앞으로의 시정 운영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그는 "선거 때는 다들 지역을 발전시키겠다, 무엇을 하겠다고 공약을 내놓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번에 새로 뽑힌 사람들이 동네를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생각"이라고 했다.
원도심 쇠퇴와 시청 위치 문제도 박씨가 오래 지켜본 지역 현안이다. 그는 현재 영주시청과 시의회가 떨어져 있는 구조가 도시 균형 발전에 맞지 않는다고 봤다. 박씨는 "시청이 남쪽을 쳐다봐야지 북쪽을 바라보는 행정이 어디 있느냐"며 "균형을 잡으려면 영주시의회 옆으로 시청이 옮겨와야 한다"고 말했다.
박씨에게 통장은 직함보다 생활에 가까웠다. 세탁소 문을 열고 닫는 일상 속에서도 그는 동네 사람들의 안부를 확인했고, 어려운 이웃을 살폈다. 40년 넘게 이어진 그의 통장 생활은 행정과 주민 사이에서 누군가의 집 문을 두드리고, 누군가의 위급한 순간을 알아차리는 일이었다.
권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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