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가장 긴 초평호 미르 309 출렁다리. 2024년 4월12일 개통한 진천의 새로운 관광명소다.
진천 세금천(미호강)을 처음 보았을 때, 엄지척 수려한 풍경에 풍덩 빠져 하염없이 떠내려갔다. 남청색 비늘로 띠를 두른 물고기들이 헤엄치며 오르내리는 그 냇가, 나는 망연히 섰다. 이렇게 수줍어하며 흐르는 냇물은 맑고 손타지 않아 숫배기처럼 순결하다. 잠깐 철철 흐르는 물소리에 귀 기울인다. 이때껏 걸어온 발자국 지우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흘러가는 냇물의 수중발레. 그래 어쩔 셈이냐. 첫눈에 반해버린 저 강이 그리움의 음성으로 나를 부르는 것을. 저 내의 뜰에는 금빛 모래가 새 밭에는 갈잎의 노래가 서걱서걱 들리는 거기 농다리가 있다. 구곡리 굴터 마을 앞 세금천에 있는 농다리는 충북 유형문화재 제28호(1976년 12월21일 지정)이다.
고려 초 권신과 임장군이 축조했다는 천년의 돌다리. 길이 93.6m, 너비 3.6m, 높이 1.2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돌다리다. 하늘의 28수 별자리를 따라 28칸 돌 교각으로 조성했다. 기나긴 세월 지나오며 3칸이 유실됐으나 2008년 28칸 원래대로 복원했다. 교각은 약 80㎝로 벌어져 있다. 얼기설기 엮은 교각의 돌이 대바구니 같다 하여 대바구니 농(籠)자를 쓴 '농다리'로 불렀다. 또 다리 형상이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지네를 닮아 '지네 다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력 암질 유선형 붉은 돌을 쌓아 올려 교각을 만든 후 상판석을 얹었다. 석회를 바르지 않고 자연석 그대로임에도 견고하다. 장마철 큰물에 잠겨도 유실 없이 천년을 넘는 동안 원형을 잃지 않고 있다. 구불거리는 형태와 타원형의 교각은 빠른 물살을 흩어놓고 소용돌이 발생을 막는다.
진천의 명소 농다리. 고려 초 권신과 임장군이 축조했다. 천년이 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돌다리다.
농다리를 건넌다. 발 딛는 상판석은 고르고 고른 돌로 아름다운 무늬가 있다. 그렇지만 28칸을 걷는 동안 내내 집중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건너거나 비가 올 때 더욱 주의를 요한다. 겅중겅중 물 위의 길. 끝말 길게 끌고 가는 충청 사투리처럼 이고 업고 혹은 마실 가는 소통의 돌다리. 천년이 넘는 세월 버티며 얼마나 많은 발자국이 지나갔겠는가. 그 숱한 세월의 강에, 날이면 날마다 누군가의 길이 되어 오체투지로 등 내미는 농다리. 세금천 물살에 제 살 깎이며 버틴 지네 다리. 우리나라에서 그 비슷한 실례를 찾을 수 없는 소중한 문화재이다.
그러나 다른 유의미한 다리가 없는 게 아니다. 그 중 통일신라시대, 불국사 대웅전과 극락전을 오르는 청운교 백운교, 연화교 칠보교가 대표적이다. 이 다리는 중생이 고통받는 사바세계와 깨달음으로 기쁨에 찬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다리다. 개성에 있는 선죽교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다리다. 고려 말 만고의 충신 정몽주가 이방원이 보낸 조영규 등에 피살된 현장으로 유명하다. 원래 선지교라 하였는데, 정몽주가 피살된 다리 옆에 참대나무가 무성하여 선죽교라 부르기 시작했다. 선죽교는 훼절이 없는 사군자 참대나무, 충절을 뜻하는 역사의 푸르름으로 영원히 남아 있다.
돌다리를 다 건너고 돌아본다. 가던 길 그냥 가지 왜 돌아봐유 하며 나를 물끄러미 지켜보는 농다리. 거기에 서서 천년을 넘은 돌다리를 건너면서 또 다른 나를 알게 된 자신을 흘겨봤다. 저 우화의 세금천.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모래시계' 등의 드라마 촬영 현장이었던 이곳. 국토해양부 주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농다리가 놓여 있는 세금천은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선정된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인정받은 명소이다. 발을 돌려 용고개로 걷는다. 길가 여러 곳에 돌탑이 있다. 돌다리 건너 돌탑 길을 돌돌 걸어서 간다. 고갯길 오 분 오르면 용고개(살고개)다. 성황당(서낭당)도 있다.
농다리에서 초평호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용고개. 이곳에는 성황당도 있다.
이곳도 전설이 있다. 그러나 현대병인 과학, 합리주의, 돈이 신(神)으로 군림하는 물신주의로 우리는 신화(神話)를 푸대접하고 있다. 그들은 모든 걸 알고 있는 척한다. 그런 지식이 모두 번뇌가 되고 자기 파괴가 되는 것임을 모르는 채. 인간은 더 이상 영혼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다움을 많이 잃게 된다. 우리가 믿는 신화와 무한 질주하는 상상이 치유의 힘이라는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현대 모비스 야외 음악당을 지나면 초평호수가 나오고 만화로 보는 진천 이야기가 있다. 충북 진천을 말할 때 약방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라는 성어다. 한 번 뜻을 알아보자.
옛날 아주 먼 옛적에 진천 땅에 추천석이란 사람이 살았다. 어느날 잠을 자다 그 길로 저승사자에게 끌려 명부전으로 가 염라대왕 앞에 엎드렸다. "어디서 왔는가." "예, 소인은 진천에서 온 추천석이구만유." "뭐여." 염라대왕은 대경실색하였다. 용인의 추천석을 데려와야 하는데 저승사자 실수로 사주 이름까지 같은 진천의 추천석을 데려온 것이다. 염라대왕은 진천 땅의 추천석을 즉각 풀어주고 용인 땅의 추천석을 잡아오라고 명을 다시 내렸다. 그가 이승의 집으로 오니 자신의 육신은 이미 땅에 묻혔다. 아뿔싸 한동안 어쩔 줄 모르다가 그는 얼른 용인으로 가 혼이 떠난 추천석의 몸으로 들어갔다.
미르 309 출렁다리가 있는 초평호의 아름다운 풍경. 미르는 용을 닮은 초평호에서 따왔다고 한다.
용인의 추천석이 다시 살아났다. 용인 땅 추천석의 몸을 빌린 그는 저쪽 식구들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러나 용인 쪽에서는 죽음에서 깨어난 헛소리로 여겼다. 어떠한 말도 먹혀들지 않자, 그는 다음날 진천 자기 집으로 갔다. 그러나 본집의 가족들도 그 말을 곧이듣지 않아 마침내 관가로 갔다. 고을원은 그의 사연을 쭉 듣고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진천 땅의 추천석은 저승사자 잘못으로 저승에 갔다가 다시 살아왔으나 자기 육신이 이미 매장되어 할 수 없이 용인 땅 추천석의 몸을 빌린 것으로 판단하노라. 지금 저 용인 추천석은 진천의 추천석 혼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앞으로 살아있을 때는 진천에서(생거진천), 죽으면 용인의 가족에게(사거용인) 인도하여 제사를 지내게 하라."
고을원의 이 판결 후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란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즈음 호수의 맑은 물과 수려한 자연경관에 흠뻑 젖어 걷는다. 전국 최장 길이 무주탑 '초평 미르 309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2024년 4월12일 개통 후 진천의 새로운 명소로 급격히 떠오른 이 다리는 초평호 물길이 용과 닮았다고 미르(용)라 이름했고 309는 총길이 309m를 의미한다.
농다리 지나 초롱길 걷다 초평호 전망데크에서 건너는 하늘다리. 이 다리를 건너면 메타세쿼이아 길이 나온다.
출렁다리를 건넌다. 초평호의 푸른 물이 아찔하고 원경까지 살가워 잊힐 수 없는 풍광을 만든다. 발끝이 짜릿짜릿하다. 나는 거인의 어깨 위 난쟁이처럼 허공에서 더욱 작아졌다. 탁 트여 좀 더 멀리 볼 수 있는 다리 위, 긴장과 스릴로 쏘아 올린 작은 풍선이 되어 나 자신을 가눌 수 없었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초롱길이다. 초평호를 곁눈질하며 걷는 길은 비할 바 없이 수더분하다. 초롱은 대오리에 촛불을 켜는 등이다. 네 초롱초롱 빛나는 눈에도 마음에도 촛불을 켠다. 이 세상이 더 밝아진다. 우리나라 전통 혼례행렬에 신랑 신부를 위한 축복의 등불로, 명절날 집 앞에 걸어두어 안녕과 복을 빌었던 초롱. '그대는 왜 촛불을 켜셨나요. 네가 가버린 날, 밤이 오면 창가에 촛불을 밝혀두리라.' 허밍하며 전망데크에서 하늘다리를 건넌다. 논선암에 닿고 메타세쿼이아 길로 들어선다. 저 숲에는 감각을 넘어선 어떤 것이 있다. 새로운 생명을 느낄 때 의미를 얻는 풍경 속에 녹아드는 트레킹 로드. 터벅터벅 걷고 오늘처럼 내일도 계속 걸을 것이다.
글=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김석 여행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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