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억 경북도 공항&투자본부장
중국의 연해 대도시들은 이미 '세계의 공장'이라는 과거의 위상을 넘어, 글로벌 산업 네트워크를 지휘하는 전략적 허브로 자리 잡았다. 인구 2천480만 명의 상하이는 금융·무역·물류와 첨단 제조가 결합된 중국 최대 경제도시이자 글로벌 기업의 지역 본부가 집중된 핵심 거점이다. 심천은 통신·반도체·AI·로봇 산업과 스타트업 생태계가 밀집된 도시로, 닝보는 세계적 수준의 컨테이너항을 기반으로 자동차부품·기계·물류 산업이 집적된 대표적인 항만 공업도시다.
이들 도시는 개혁개방 이후 눈부신 성장을 이뤘지만, 최근에는 인구 과밀, 비용 상승이라는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여기에 미·중 갈등에다 관세, 수출 규제, 기술 통제 등 지정학적 리스크도 현실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기업들은 생산, 연구개발, 물류, 판매망을 해외로 분산하는 '출해(出海)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출해는 이제 개별 기업의 선택을 넘어 중국 산업정책의 중요한 흐름이 됐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금융·물류·디지털 서비스 체계를 정비하고 있다. 심천 난산구의 'Go Global 글로벌 서비스센터' 처럼 법률·금융·세무·물류·컨설팅 기능을 통합한 플랫폼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경상북도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 지난 4월 12일부터 17일까지 상하이·닝보·심천을 순회하며 열린 '한중 산업협력 포럼 및 POST APEC 경북 투자설명회'에는 각 도시마다 100명 이상의 현지 정부 관계자와 기업인, 투자자들이 대거 참석해 중국의 출해 전략과 경북의 제조·인프라 역량을 함께 논의했다.
중국 기업 입장에서 경북은 미·중 갈등 속에서 특정 국가나 생산기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한국의 고숙련 인력과 제조 품질, 산업 인프라를 활용해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전략적 거점이다. 특히 구미의 반도체·전자, 포항의 2차전지·수소·철강, 경산·영천·경주의 미래차 부품과 기계, 안동·포항의 바이오 산업 기반을 주목한다. 대구경북신공항과 영일만항, 경부선 등 산업 물류망까지 결합된다면 경북은 동북아 공동 생산·R&D·물류 플랫폼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제 경북의 투자유치는 단순한 공장 부지 제공을 넘어야 한다. 글로벌 기업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땅이 아니라 사업화 속도와 위험 관리다. 투자 결정 이후에는 인허가, 입지, 인력 확보, 기술 검증, 자금 조달, 공급망 구축, 판로 개척, 법률·회계 서비스까지 전 과정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금융과 중개 기능 역시 핵심 자산이다. 해외 기업이 경북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보조금보다 자금 조달 구조, 합작투자 모델, 국내 기업과의 기술 제휴, M&A 가능성, 금융기관과의 연계가 더욱 중요하다. 닝보와 심천에서 확인된 벤처캐피털, 창업지원기관과의 협력 가능성은 경북이 제조 입지를 넘어 자본과 기술, 기업 간 거래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상하이·심천·닝보와 같은 세계적 산업도시들은 글로벌 환경 속에서 더 이상 모든 것을 내부에서 해결할 수 없다. 공급망과 생산, 연구개발과 자본을 외부와 연결하는 연대가 필수가 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경상북도 역시 글로벌 공급망의 한 축으로서 제조와 인프라, 기술과 금융, 인재와 시장을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중국 기업의 출해 전략은 경북에 외자 유치를 넘어, 지역 산업을 글로벌 가치사슬의 중심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전략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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