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에서 공동체로: 21세기 공립미술관의 새로운 역할’ 주제 대구미술관 초청 특별강연
연대기식 전시 벗어나 시민 친화적 주제 재구성 통해 ‘다시 찾는 미술관’으로 변모 필요
지난 15일 오후 3시 대구미술관 교육실에서 진행된 특별강연에서 스테파니 파트루노 독일 카를스루에시립미술관장이 공립미술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미술관의 미래는 우리 본연의 사명을 바꾸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사명을 실현하는 방식을 바꾸는 데 있습니다."
스테파니 파트루노 독일 카를스루에시립미술관장은 지난 15일 오후 3시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 21세기 공립미술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같이 설명했다. 작품을 수집·보존·연구·전시하는 전통적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소장품을 시민의 삶과 연결하고, 지역사회와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파트루노 관장이 카를스루에미술관에 부임한 것은 코로나19로 독일 전역이 봉쇄됐던 2021년 2월이다. 미술관 문은 닫혔고 관람객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당시 그는 미술관의 문을 다시 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무엇을 전시할 것인가'나 '어떻게 더 많은 관람객을 끌어올 것인가'가 아니라 '사람들은 왜 다시 미술관에 와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미술관이 되고 싶은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파트루노 관장은 그 답을 미술관이 관람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고유한 경험에서 찾았다. 그는 "사람들은 더 이상 정보를 얻기 위해 미술관에 오지 않는다"며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는 것은 의미 있는 경험과 대화, 성찰의 시간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만들어내는 출발점은 미술관의 소장품이며, 사회가 변화할수록 그 중요성은 커진다고 강조했다. 소장품이 과거의 기억을 보존하고, 오늘날의 문제를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보게 하는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파트루노 관장은 "소장품은 혁신의 장애물이 아니라 혁신의 토대"라며 "우리의 과제는 소장품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소장품에 어떻게 활력을 불어넣고, 동시대 관람객에게 말을 걸도록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5일 오후 3시 대구미술관 교육실에서 진행된 특별강연에서 스테파니 파트루노 독일 카를스루에시립미술관장이 시민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카를스루에미술관은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기존 소장품 전시 방식을 바꿨다. 미술사조와 제작 연도에 따라 작품을 나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정체성·자연·의례·고향·젠더 등 미술사적 지식이 없어도 관람객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작품을 재구성했다.
관람객을 바라보는 기준도 단순한 방문자 수에서 장기적인 관계로 변화했다.
파트루노 관장은 "한 번 방문하고 다시 오지 않는 사람보다 1년에 몇 차례라도 미술관에 소속감과 애정을 느끼며 찾아오는 사람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며 "더 많은 관람객을 한 번씩 끌어오는 데 집착하기보다 사람들이 다시 오고 싶어 하는 미술관이 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술관이 집과 직장에 이은 '제3의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속도와 자극, 산만함이 만연한 사회에서 미술관은 천천히 작품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며 성찰할 수 있는 공공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카를스루에미술관은 도슨트 투어에 음악과 음료, 자유로운 대화를 결합한 야간 행사 'ARTtoNight'를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공간도 마련해 미술관에서 예술을 경험하고 자신이 환영받는다는 감각을 갖도록 했다. 미술관을 찾지 않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파트루노 관장은 "모든 사람이 자연스럽게 미술관을 찾는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학술적 기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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