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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떠나도 ‘트럼피즘’ 남을 것…이젠 경제안보 외교시대 진입”

2026-08-11 18:23

출향인사를 찾아서/ 의성출신 이시형 한국외교협회장
규칙 기반 통상시대 끝나…국제사회 판 대전환
한미통신협상·스크린쿼터 등 주요 현장 지켜
외교도 친구사이 같아…배려·신뢰·책임이 중요

이시형 한국외교협회장이 서울 서초구 한국외교협회 청사에서 동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김은경 기자

이시형 한국외교협회장이 서울 서초구 한국외교협회 청사에서 동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김은경 기자

대한민국 외교부에는 약 2천900명의 직원이 있다. 이 중에서 대구·경북(TK) 출신의 비중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몇몇 비공식 통계를 보면 수도권 대학 졸업자들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외교계에 낯선 상황이 펼쳐져 눈길을 끈다. 경북 의성 출신의 두 전직 외교관이 대한민국 전현직 외교관들의 모임인 '한국외교협회'의 회장을 연달아 맡게 된 것. 정통 외교관 출신의 신봉길·이시형 회장이 주인공이다. 이시형 한국외교협회장은 "흔치 않은 일이죠. 전임자인 신 회장과는 고향 의성에서 10리 남짓 떨어진 이웃이었어요. 선친들끼리도 다 잘 알고 지냈죠. 저희 아버지는 늘 신 회장댁 자제들이 교육을 잘 받았다며 부러워하셨어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과 가음면 경계의 산골 마을. 이 회장의 뿌리는 그곳에 있다. 그는 의성에서 10년, 대구에서 10년을 보내고 1975년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하며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대구의 누나 집에서 살았는데 어릴 때부터 바깥세상에 관심이 많았다고 해요. 중학교 졸업 무렵인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의 북경 방문과 핑퐁 외교, 미·중 화해와 데탕트, 유엔에서의 대만 자리를 둘러싼 논의들이 신문에 대서특필됐죠. 어린 마음에도 흥미가 생겨 신문 기사를 참조해 교지에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자연스럽게 외교학과 진학으로 이어졌다. 당시 지방 출신에게 외교관이라는 직업은 낯설고 아득한 영역이었다. 대개의 학생들이 공대나 의대, 혹은 법조나 언론계로 진출하던 시절이었다.


"외교부에 들어와 보니 서울, 경기고 출신이 많았습니다. 지역 출신에게 외교관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느껴지기도 했죠.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지방 출신이 가진 독특한 강점과 현실 감각이 외교 현장에서 큰 자산이 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통상외교 최전선서 활동


40년 가까운 공직 생활 동안 가장 아쉬움이 남는 기억을 물었더니, 그는 뜻밖에도 '러시아'를 떠올렸다. 1990년 샌프란시스코 근무를 마치고 미국 국방성 소속 어학연수 기관인 DLI(Defense Language Institute)에서 2년간 러시아어를 집중 이수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과 옐친의 등장으로 분출하던 변혁의 시기였다.


"수교 직후였기에 우리가 북방 외교의 새 지평을 열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설렜습니다. 밤낮없이 공부했죠. 언어 성적도 아주 좋았습니다. 하지만 인사 타이밍이 어긋나 모스크바 현지 근무로 이어지지 못하고 통상 분야로 발령이 났습니다. 젊은 날 큰 노력을 기울였던 만큼, 러시아가 제대로 된 국제 질서의 축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지금의 비극적인 '러-우 전쟁'으로 이어진 현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가 발을 디딘 곳은 통상 외교의 최전선이었다. 마침 한국이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미국으로부터 전방위적인 시장 개방 압박이 가해졌다. 한·미 통상 협상부터 영화관에 뱀을 풀어놓을 정도로 격렬했던 스크린쿼터 사수 논란, 한·미 FTA 체결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한복판에 어김없이 그가 있었다.


"'100분 토론'에 아무도 안 나간다고 할 때 국장 신분으로 나가 영화인들과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기도 했죠. 우루과이라운드(UR) 막바지 협상 때는 어머니 칠순 잔치 중에 급히 호출되어 청와대 보고 자료를 만드느라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밤을 지새우곤 했습니다."


그는 가트(GATT) 체제의 종말과 WTO의 출범, 다자 통상 협상의 굵직한 현장을 온몸으로 통과했다. 산업통상자원부로 통상 기능이 이관될 때는 외교부 내 통상 조직의 마지막 문을 닫고 직원들을 배웅하는 쓸쓸한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이시형 한국외교협회장이 서울 서초구 한국외교협회 청사에서 고향 의성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김은경 기자

이시형 한국외교협회장이 서울 서초구 한국외교협회 청사에서 고향 의성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김은경 기자

"위상 높아졌어도 외교관 사기 떨어져"


그가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던 때와 비교하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무대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높아졌다.


"과거 해외에 나가면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중국이나 일본의 일부인지 묻는 이들이 태반이었습니다. 관저에 외국 손님을 모셔놓고, 신선로나 떡을 대접해도 '맛이 없다'며 낯설어했죠. 하지만 지금은 꿀떡이 뉴욕 시리얼 시장을 파고들고, K-컬처와 제조업, 반도체·조선·방산 기술력이 세계 정상에 올랐습니다. 해외에 나가서 느끼는 자부심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국력 상승이라는 빛나는 성과 뒤편에서 현직 외교관들의 사기는 다소 떨어졌다고 우려했다.


"국내 정치의 양극화가 외교 영역까지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교관들이 정치적 편 가르기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심할 때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선후배가 서로 눈길조차 안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사에서도 원칙이 흔들리고 외부 재량이 커지면서, 전문성을 쌓아온 공직자들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습니다."


요동치는 세계, 경제 안보의 시대


이 회장은 현재 국제 사회가 단지 일시적인 혼란을 겪는 것이 아니라, 국제 질서의 판이 뿌리째 흔들리는 '대전환기'에 진입했다고 진단한다.


"트럼프 현상을 단지 한 개인의 돌출 행동으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그 배경에는 미국 사회 내부의 구조적 균열과 불만이 자리 잡고 있어요. '트럼프'가 떠나도 '트럼피즘'은 남을 것입니다. 관세가 통상이 아닌 정치적 무기가 되어버린 시대입니다. 과거 우리가 유지해온 규칙 기반의 '통상 외교 시대'는 막을 내렸고, 이제는 '경제 안보 외교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는 북핵 문제에 대한 냉정한 현실 직시도 강조했다.


"북한은 사실상 핵 보유국의 지위에 다다랐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 '비핵화'라는 당위적 선언에만 매달리며 외교적 자산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냉철한 현실에 기반해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나아가 원자력 핵폐기물 재처리나 농축 능력 확보 등 일본 수준의 잠재적 핵 주권과 자위적 기반을 갖추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의성의 고향마을 얘기와 함께 출발한 이 회장과의 미팅은 다시 의성을 떠올리며 막을 내렸다.


"되돌아보면 고향에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외교라는 것이 친구 사귀는 것과 같아서 화려하고 요란한 겉치레보다 상대국에 대한 배려와 신뢰,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이 중요합니다. 성리학과 선비의 도시인 영남인들의 DNA에 그런 요소가 특히 강하게 전해져 내려온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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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오래 침묵하고 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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