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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 재평가 시급한 대구경북 독립운동가의 알려지지 않은 기록 上]신흥무관학교 살리고 독립군 지휘…일송 김동삼의 숨은 공적 재조명

2026-08-15 09:35

1914년 학교 존폐 위기 때 운영·재건에 깊숙이 관여한 ‘실질적 경영자’라는 평가
백서농장 개척해 독립운동 재원 마련, 학교 운영에도 지원
1922년 지휘 서신 등 새 사료로 드러난 만주 독립운동의 지도력

일송 김동삼 선생. 영남일보 DB

일송 김동삼 선생. 영남일보 DB

이름과 공적에 걸맞은 평가를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이 있다. 대구경북 출신 독립운동 거목인 석주 이상룡 선생과 일송 김동삼 선생도 예외는 아니다.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의 터전을 일구고, 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길러냈다. 흩어진 세력을 하나로 묶고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도 했다. 그런데 이들의 공적에 비해 현재의 서훈은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보훈부가 서훈 조정을 위한 의견 수렴에 나선 가운데, 광복 81주년을 맞아 두 선생의 기록을 돌아보고 지금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행적과 새로운 사료와 해석을 들여다 봤다.


◆신흥무관학교 위기 극복한 '실질적 경영자'였나


최근 독립운동사 연구에서 신흥무관학교가 1914년 심각한 재정난으로 존폐 위기에 놓였으며 이 과정에서 일송 김동삼 선생(1878~1937)이 학교 운영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새로운 해석이 나오고 있다.


1914년에 쓰여진 것으로 판단되는 김동삼 선생의 간찰로 신흥강습소(신흥문관학교 전신) 상황이 담겨 있다. 김시명 전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명예회장은 강습소 운영을 김동삼이 인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시명 전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명예회장 제공

1914년에 쓰여진 것으로 판단되는 김동삼 선생의 간찰로 신흥강습소(신흥문관학교 전신) 상황이 담겨 있다. 김시명 전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명예회장은 강습소 운영을 김동삼이 인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시명 전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명예회장 제공

김시명 전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명예회장은 김동삼 선생을 신흥무관학교의 '실질적 경영자'로 평가했다. 신흥무관학교는 일제 감시가 심해진 데다 1913년 10월 이석영 선생이 만주에서 마적의 습격을 받아 독립운동 자금을 빼앗기면서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일송 선생은 석주 선생 등과 함께 서간도 대고산 기슭에 조선인 집단 자치단체인 경학사를 조직하고 백두산 서쪽 황무지를 개척해 백서농장을 일궜다.


김 전 회장은 일송 선생이 백서농장에서 확보한 재원을 신흥무관학교 운영에 지원했고, 다시 운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일송 선생이 1914년께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 전신) 운영 상황을 걱정하며 학교와 기숙사 운영, 교수 임명 등에 관여한 내용을 담은 간찰이 남아 있다. 해당 간찰엔 학교가 운영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황과 일송 선생이 학교 운영에 책임을 지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1922년 말 김동삼 선생의 서신으로 김시명 전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명예회장은 김동삼 선생이 상하이에서 만주에 있는 동지들에게 보낸 지휘 서신으로 보고 있다. 김시명 전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명예회장 제공

1922년 말 김동삼 선생의 서신으로 김시명 전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명예회장은 김동삼 선생이 상하이에서 만주에 있는 동지들에게 보낸 지휘 서신으로 보고 있다. 김시명 전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명예회장 제공

◆김좌진과 김동삼, 새로운 지휘 관계 해석


기존 독립운동사는 북간도 김좌진 부대와 서간도 김동삼 선생이 이끄는 독립운동 세력이 별개의 조직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두 인물의 인적·조직적 관계와 사관연성소 설립 과정, 1922년 일송 선생 서신 등을 근거로 두 세력의 관계를 새롭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전 회장은 김좌진 장군이 영남 학맥 인사들이 이끌었던 조선국권회복단과 연결돼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조선국권회복단 주요 인물인 김후병 선생은 김동삼 선생과 협동학교를 함께 경영했던 인물이다. 조선국권회복단이 조성한 독립자금 상당 부분이 서간도 독립운동 세력에 전달됐다는 것이 김 전 회장의 설명이다.


1918년 만주로 망명한 김좌진 장군이 이후 서간도 지도부에 협조를 요청했고, 김동삼 선생 주도로 사관연성소가 설립됐다. 김좌진 장군이 책임자로 참여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으로 보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사관연성소에 신흥무관학교 교관 등이 참여하고 서간도 독립운동 세력이 인력과 장비 등을 지원하면서 독립군 간부 양성이 이뤄졌으며 이 과정에서 양성된 인력이 이후 청산리 전투 등에 참여했다고 설명한다.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내앞마을)에 위치한 김동삼 선생 생가터. 영남일보 DB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내앞마을)에 위치한 김동삼 선생 생가터. 영남일보 DB

◆1922년 지휘 서신, 새로운 해석의 근거


김 전 회장이 중요하게 보는 사료는 1922년 말 김동삼 선생이 상하이에서 만주에 있는 동지들에게 보낸 지휘 서신이다.


일송 선생은 당시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상하이로 이동한 뒤 만주에 있는 인사들에게 서신을 보냈다. 김 전 회장은 이 문서가 단순한 일반 간찰이 아니라 자신이 지휘하는 부대와 지휘관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자리를 비운 동안 수행할 일을 지시한 문서라고 해석했다.


문서에 지형 설명과 적정, 아군 배치 상황, 수행할 임무 등 군사적 지휘 문서에서 볼 수 있는 요소가 담겨 있어서다.


서신 발송자 표기도 '일형 일송(一兄 一松)'이 등장한다. 김 전 회장은 '일형'이라는 표현이 당시 만주 독립운동계에서 김동삼 선생의 지도적 위치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서신에 김좌진 장군을 지칭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일정한 지휘·조직적 관계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료라고 강조했다.


김 전 회장은 "서신에 '목릉현 팔면통에서는 백야, 이영 제위 선생이 군인 훈련을 졸업시켰으니 알아 두시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며 "결국 김좌진 장군이 김동삼 선생의 지휘체계와 연결돼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라고 했다.


일송 선생, 독립운동계 복잡한 이념과 계파 아우른 대표 지도자

김태열 영남이공대 교수(한국보훈포럼회장)

김태열 영남이공대 교수(한국보훈포럼회장)

"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한 역할과 영향력을 고려해 서훈 체계를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일송 김동삼 선생 서훈 등급(2등급·대통령장)이 공적에 비해 낮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영남이공대 김태열 교수(한국보훈포럼 회장)는 이같이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일송 선생 서훈이 2등급에 머문 주된 이유로 후손들의 여력 부족과 국외 활동가에 대한 평가 지연을 꼽았다. 일가 친척 다수가 독립운동 과정에서 피살되거나 희생됐고, 생존 후손들마저 해외에서 힘겨운 생활고를 이어가며 재평가를 정식 신청할 기회가 부족했다는 설명이다. 서간도와 북간도 등 국외에서 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특성상 사료와 증언이 부족해 객관적 평가가 상대적으로 늦어진 점도 작용했다.


김 교수는 일송 선생을 "독립운동계의 복잡한 이념과 계파를 하나로 아우른 대표적 지도자"로 평가했다. 1923년 국민대표회의에서 90% 이상의 지지로 의장에 선출된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당시 민족주의·공산주의·무정부주의 등 격렬하게 충돌하던 여러 계파를 중재하고 대통합을 모색한 것은 독립운동사 전체를 통틀어 최대 공적으로 꼽았다.


현행 서훈 심사 기준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일송 선생처럼 단체를 창설하고 세력 간 갈등을 조정한 인물은 단순 수치만으로 공적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도력과 조직 운영, 세력 통합 기여도 등 '질적 측면'을 중점 반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1~3등급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수형 기간 기준도 보훈·역사 전문가 논의를 거쳐 세분화하는 것이 바람직다고 봤다.


김 교수는 정당한 서훈 격상을 위해 지역 학계와 보훈단체, 지자체의 체계적인 공조를 주문했다. 정기 학술세미나와 정책토론회로 대국민 공감대를 형성하는 한편, 미발굴 공적 사료를 지속해서 찾아내 정식 재심사 절차로 연결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구시와 경북도를 향해서도 생가 복원과 기념관 건립을 위한 연구용역 예산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고 중앙부처와 국회를 설득, 2027년까지는 관련 보훈 사업을 본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제언이다.


김 교수는 "김동삼 선생의 기념관을 역사적 원형에 맞게 조성해 국민과 학생들을 위한 보훈교육 및 체험 테마 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선생이 독립운동사에서 수행한 중추적 역할을 제대로 평가하고 널리 알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명예 선양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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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목

대구경북 대학과 보훈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기사를 작성하는데 집중하고 한번쯤 생각날수 있는 기사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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