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 넣은 듯 붉은 고춧가루…저온건조로 맛·영양 다 잡았다
사과가 청송을 대표하는 작물로 자리 잡기 전, 고추는 담배와 함께 청송을 대표하는 경제작물이었다. 2025년 기준, 청송에서 사과는 농가수 4천603호에 재배면적 3천360ha에 이르고, 고추는 1천645농가에서 506ha를 경작하고 있다.
기존 고온 찜 건조방식에서 벗어나
자연건조와 유사한 저온숙성·건조
영양소 보존하고 본연의 맛·향 유지
세척과 GAP인증 등 품질관리 노력
"저온건조로 한 근만 먼저 말려서 빻은 뒤에, 아버지 방식대로 만든 고춧가루하고 비교를 해 봐요. 맑은 콩나물국을 끓여서 한 그릇씩 앞에 놓고 각자 자기 고춧가루를 한 스푼씩 넣어서 맛을 봐요. 그리고 서로 그릇을 바꿔서 맛을 보세요. 그 맛을 보고 나면 아버지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청송고추 명품화(GAP, Good Agricultural Products) 사업단 박종준 단장이 고품질 고추 생산 교육장에서 만난 한 청년 농부가 "아버지 고집을 못 이겨서 저온건조 방식으로 할 수가 없다"는 고민을 듣고 조언을 해 준 말이다. 박 단장은 "저온건조한 고춧가루는 고추 본연의 맛과 향이 살아있습니다. 직접 비교해 보고 그 차이를 실감해보면 생각이 달라지겠지요"라고 한다.
박 단장은 3년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실험을 해보고 자연건조와 비슷한 저온건조방법을 찾았다고 한다.
"온도는 43℃로 맞춰 개폐기를 반쯤 닫고 건조를 하면 건조기 내부가 35℃ 정도 되는데 그 상태로 12~24시간 숙성을 시킵니다. 그 다음에 53℃로 맞춰 개폐기를 완전히 열면 내부가 40~43℃쯤 되는데 이 상태에서 완전히 말립니다. 이렇게 하면 단맛이나 매운맛이나 원래 고추의 성질을 그대로 다 가지고 있어요. 제분할 때 보면 다른 고춧가루는 바람에 날리듯이 펄펄 날려 떨어지는데, 이렇게 건조한 고추는 고추씨 기름을 그대로 안은 채 떨어져서 많이 날리지 않아요. 거기에 수분을 조절해 10~11% 정도 맞춰내면 최상의 고춧가루가 되는 거죠."
이렇게 하면 고추 본래의 성질을 다 가진 상태의 고춧가루를 얻을 수 있는데, 예전에 해오던 방식대로 하면 잃는 것이 많다고 한다.
"개폐기를 닫고 60℃에서 3시간, 70℃에서 2시간 정도 쪄서 건조하는 기존 방식에선 고추 과육의 껍질은 부풀어서 밖으로 밀려나게 되고 속살은 안으로 당겨 들어가게 돼요. 같이 밀려나는 게 아니라 분리돼 버려요. 이걸 제분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가루가 날려 달아나게 되지요. 속살에 있는, 사람이 먹어야 될 영양소를 가지고 달아나는 겁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실제 먹는 거는 고추 껍데기를 먹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온에서 숙성을 시키고 저온에서 완전 건조를 하면 고추의 성질을 그대로 갖고 있고, 그것을 우리가 먹게 되는 겁니다."
청송고추는 예전부터 오염 없는 깨끗한 수질과 맑은 공기가 길러낸 청정고추로 인식돼 왔으며, 큰 일교차와 풍부한 일조량으로 과육이 단단하고 풍미가 깊어 인기가 높았다.
또 고추를 수확하다 보면, 특히 요즘은 숙련도 낮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수확을 하다 보니 덜 익은 것도 함께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덜 익은 고추를 건조기에서 예전 방식으로 건조를 시키면 한쪽은 누렇고 한쪽은 붉은 두 가지 색이 되는데, 자연건조와 비슷한 저온 숙성을 거치면 덜 익었던 부분이 완숙이 된다. 저온에서 숙성을 시키고 저온에서 건조를 하면서 수분이 빠져나가면 고추가 자연스럽게 말라 표면이 조금 쪼글쪼글해진다. "그런데 이렇게 만든 고춧가루는 색깔이 기가 막히게 나옵니다. 혹시 물감 넣은 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또 한 가지 박 단장이 강조하는 것은 세척이다. 건조 전에 세척을 하지 않으면 먼지, 진딧물 배설물 등이 그대로 제분할 때 들어가기 때문이다. 청송에서는 일찍부터 고추 세척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 거의 모든 고추 농가에 세척기가 보급돼 있다.
사과가 청송을 대표하는 작물로 자리 잡기 전, 고추는 담배와 함께 청송을 대표하는 경제작물이었다. 2025년 기준으로 사과는 농가수 4천603호에 재배면적 3천360ha에 이르고, 고추는 1천645농가에서 506ha를 경작하고 있다. 경제작물로는 사과에 이어 두 번째 위치에 있다. 지난해 고추 생산량은 1천300t에 생산액은 192억원으로 추계된다.
청송고추는 예전부터 오염 없는 깨끗한 수질과 맑은 공기가 길러낸 청정고추로 인식돼 왔으며, 큰 일교차와 풍부한 일조량으로 과육이 단단하고 풍미가 깊어 인기가 높았다.
청송고추발전연합회를 모태로 지난 2015년 출범한 청송고추GAP사업단은 새로운 영농·가공기술을 받아들이고 현장경험을 공유하며, 청송고추의 품질과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높여왔다. 현재 0.2ha 이상 고추 재배를 하고 있는 232농가가 참여하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 청송명품고추 GAP사업을 계속하고 있는 청송군농업기술센터는 고추농가의 GAP인증 획득을 지원하고 친환경 영농자재 보급, 선진 농가 견학 사업을 통한 품질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
GAP인증은 농산물의 생산부터 수확, 유통 단계까지 유해 요소를 철저히 관리해 소비자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기 위한 국가 인증제도다.
박 단장은 GAP인증제도가 농가 소득 증대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인증기관에 시료를 가지고 가서 검사 의뢰하면 무상으로 해줍니다. 요즘은 소비자들도 GAP인증서 있으면 안전한 먹거리라는 걸 다 압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전화로 판매할 때 도움이 됩니다. 찜찜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시험성적서 복사해 넣어줘도 되고요."
청송 진보의 한 농장에서 근로자들이 고추를 수확하고 있다.
박종준 청송고추GAP사업단장이 청송 고추의 우수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도시에서 사업을 하던 박종준 단장은 12년 전 청송 진보면 세장리 고향으로 돌아왔다. 현재 벼 2천 평, 고추 3천500평, 사과 5천 평과 참깨·배추·차조·들깨 등 1만2천 평 농사를 짓고 있다.
"저는 농사가 재미있어요. 집사람과 둘이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둘이서 감당이 안 되는 일은 외부 인력을 투입합니다. 남들은 일밖에 모르는 것 같이 보겠지만, 놀러 다니고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다 보니 2년 동안 주행거리가 9만㎞를 넘었더라고요."
청송 진보의 한 농장에서 근로자들이 고추를 수확하고 있다. 청송고추는 판로를 확보한 농가를 통해 인터넷이나 전화로 개별 판매되기도 하고, 공판장과 농협을 통해 판매되기도 한다.
박 단장은 고춧가루, 사과, 절임배추 등을 직접 주문받아 택배로 모두 판매한다고 한다. 이미 충성도 높은 고객들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 홍보나 판매가 불필요하다. 그는 모임에서나 공원에서 고춧가루를 나눠주면서 홍보를 했고, 식당에도 고춧가루를 써보라고 5근씩 나눠주기도 했다. 비용이 들어가지만 그 이상으로 수익을 불러왔다고 한다. 대구와 제주의 식당에도 고춧가루를 공급하고 있다. 자신이 재배한 농산물의 품질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시도했던 홍보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박 단장은 환경에 주는 부담을 줄이고 노동력도 절약할 수 있는 신기술에 관심이 많다. 올해는 청송군의 보조를 받아 멀칭 비닐로 생분해필름을 사용했다. 덕분에 수확 후 뒤처리 과정의 노동력을 크게 절감했다. 그는 "앞으로 노동력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희망이 보이지 않겠느냐"고 했다.
"젊은 친구들이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실적 맞추기 위해서 고민하고 고생하는 거 보면, 시골에 와서 농사지으면 굉장히 편하다고 얘기해 주고 싶어요. 물론 일찍 일어나고 부지런해야 하지요. 새벽이 나를 깨우러 오기 전에 내가 나가서 새벽을 깨운다는 마음으로 하면 오전 10시에 하루 일이 거의 끝납니다. 요즘은 유휴경지도 많아요. 내 땅 좀 부쳐달라고 줄을 서 있어요. 땅이 없어서 농사 못 짓지는 않아요. 마음만 바꿔 먹으면 막말로 컨테이너 하나 가져다놓고 농사지어도 훨씬 여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박종준 청송고추GAP사업단장이 건조 중인 고추를 살펴보고 있다.
청송고추는 판로를 확보한 농가를 통해 인터넷이나 전화로 개별 판매되기도 하고, 공판장과 농협을 통해 판매되기도 한다. 농협에서는 공동 수매, 가공을 통해 '청송농협청결고춧가루'를 판매한다. 꼼꼼한 선별, 이물질 제거, 세척, 건조 등 시스템화된 공정을 통해 생산되는 청송농협청결고춧가루는 쇳가루 제거 공정, 엑스레이 이물질 검출 시스템 도입으로 높은 안전성과 품질 균일화로 소비자들의 신뢰가 높다. 또 300g, 500g, 1㎏ 등 소비자 맞춤형으로 제품 용량을 다양화했으며 간편형·캠핑용으로 스틱형(10g)도 판매하고 있다.
글=김광재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공동기획 - 청송군청>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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