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새 정당이 나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당명이 독특하다. '건너가는 사람들'이다. 장자의 '응제왕(應帝王)'이나 반야심경의 '바라밀다'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다. 철학자 최진석이 중앙당 창당준비위원회 대표다. '철학자가 왜?'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하지만 그의 이력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 출신의 최진석은 EBS '현대 철학자 노자' 강의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사상가이다. 책과 강의를 통해 '생각'을 전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현실 정치에 뛰어들기도 했다. 지난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안철수 당시 국민의힘 후보 캠프 상임선대위원장으로 활동했고, 양향자 전 의원(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2023년에 창당한 한국의희망 상임대표를 맡기도 했다.
3년 만에 정치 일선에 나선 그의 창당선언문이 예사롭지 않다. '대한민국 정치의 퇴락은 사악한 여당과 무기력한 야당이 적대적 관계 속에서 공존하면서 함께 조장하고 있다. 우리를 이 지경까지 끌고 온 낡은 정치를 미련 없이 파괴해야 한다. 정치인을 전면 교체해야 한다. 절박한 심정으로 새로운 정치 세력 결집에 나서겠다.'
물론 그의 도전이 현실적으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새로운 정치'를 표방한 세력이 많았지만, 거대 양당 독식 구조를 뚫지 못하고 좌초했다. 정치는 윤리적 당위만으로 굴러가지 않는 잔혹한 힘의 영역이다. 당장 '건너가는 사람들'은 5개 지구당을 세우는 일이 제일 큰 일이라고 토로했다. 신진 정치세력이 진입하는 초입부터 현실의 벽은 까마득히 높다. 철학자의 정치 참여에 대한 우려도 있다. 최진석의 창당은 독주하는 권력과 무기력한 야당 사이에서 갈 곳을 잃은 국민의 답답함과 절박함을 대변하는 것이지만, 자칫 '계몽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장자 응제왕에 나오는 '혼돈(渾沌)의 죽음' 우화가 잘 보여준다. 남해와 북해의 임금이 선의로 혼돈에게 7개의 구멍을 뚫어주었지만, 혼돈이 7일 만에 죽은 것처럼 지도자가 자신의 선의나 이상을 대중에게 인위적으로 강요하거나 가르치려 들면 오히려 파국을 맞을 수 있다. 최진석의 창당이 '강제적 각성'의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국민을 깨우치려는 계몽적 열정이 대중의 자율적 본성과 부딪히지 않고 혼돈의 비극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다행히 최진석은 "정치는 국민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국민에게 배우는 일이어야 한다고 믿는다"며 스스로를 경계하고 있다.
현실적 제약과 이상론에도 그의 발걸음을 단순히 한 지식인의 무모한 정치 실험만으로 치부할 수 없다. 최진석의 '건너가자'는 외침이 한국 보수의 맹주를 자처하는 TK(대구경북) 정치를 향해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묻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TK 정치는 '건너가는 자'가 아니라 '안주하는 자'의 전형이다. 보수 텃밭이라는 성채에 갇혀 "이대로도 괜찮다"는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다. 민주당의 폭주에 맞설 논리적 무기나 미래 비전은 부재하고, 오로지 내 밥그릇을 지키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있다. 철학자조차 현실 정치를 바꾸겠다고 몸을 던지는데 기득권 보수는 아무런 철학적 쇄신도, 체질 개선도 없이 무기력하게 굳어가고 있다. 최진석의 창당은 보수 정치, 특히 TK를 향해 던지는 경고장이다. 철학자의 외침을 한가한 비명으로 넘겨버린다면, 보수와 TK 정치는 영원히 시대의 흐름을 건너가지 못한다. 건너가지 않는 보수에게 남은 미래는 '정체'가 아니라 '소멸'뿐이다. 조진범 논설위원
조진범
대구경북과 대한민국의 내일을 고민하는 논설위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