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산학연구원 기획실장
언젠가 해 질 무렵, 맛집을 찾아 동구 도동에 들렀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 뜻밖의 풍경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물 건너 측백나무 숲이 보였고, 물새 몇 마리가 잔잔한 수면 위를 유유히 떠다녔다. 해가 기울자 노을이 수면 위로 길게 번졌다. 붉지도 노랗지도 않은, 옅은 분홍빛이었다. 물새가 지나간 자리마다 잔물결이 일고, 그 위로 노을빛이 잘게 부서졌다. 나는 물 위에 퍼지는 그 빛을 한참 바라봤다. 대구에도 이런 저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때는 노을에 마음을 빼앗겨 미처 눈여겨보지 못한 풍경이 있었다. 물 건너 가파른 절벽에 붙어 있는 측백나무 숲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눈길을 끄는 것은 나무보다 그 나무들이 뿌리내린 자리였다. 좋은 땅에서 잘 자라는 나무를 보는 일은 그리 놀랍지 않다. 햇볕이 잘 들고 흙이 비옥하며 물까지 넉넉하다면 나무는 제 몫의 잎을 피워낼 것이다. 그런데 도동의 측백나무는 조금 달랐다. 기름진 흙이 아니라 바위틈을 붙잡고 있다. 사람이라면 피하고 싶을 법한 자리다.
우리는 조금 더 편안한 자리, 조금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움직인다. 그런데 도동의 측백나무는 그 반대의 자리에서 수백 년을 살아냈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가파른 절벽을 견뎠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척박함이 오히려 숲을 지켜주었다는 점이다. 험준한 벼랑은 사람의 접근을 어렵게 했다. 척박함은 약점처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숲을 오래 지켜낸 울타리가 되었다.
이 숲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눈길을 붙들었다. 조선의 서거정은 대구의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한 '대구십영' 가운데 이곳을 '북벽향림(北壁香林)', 즉 북쪽 절벽의 향기로운 숲이라 불렀다. 서거정이 노래한 이 숲은 오늘날 천연기념물로 보호받는 대구의 귀중한 자연유산이 되었다. 지난해 침산정에 올라 그의 '침산만조'를 떠올렸다면, 이번에는 시인의 문장보다 그가 바라보았을 숲 자체에 시선이 머문다. 시대를 건너 같은 풍경을 바라본다는 사실은 묘한 울림을 준다.
'논어'에는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라는 구절이 있다. 추운 계절이 찾아와서야 송백의 변치 않음을 알게 된다는 뜻으로 읽힌다. 어려운 때에 비로소 변하지 않는 것의 진가가 드러난다는 말이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긴 세월을 견뎌온 측백나무 앞에서 오래된 그 문장이 새삼 마음에 와닿는다.
측백나무가 견뎌온 시간을 생각하면, 삶에서 마주한 척박한 자리들도 다시 보게 된다.
도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새 건물과 넓은 도로, 새로운 산업을 이야기하며 발전을 말한다. 물론 도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새것을 만들어내는 힘만큼 오래된 것을 지켜내는 힘도 필요하다. 개발하기 어려워 남겨졌던 공간이 시간이 흐른 뒤 그 도시에서 가장 귀한 자산이 되기도 한다. 도시는 건물로 커가고, 기억으로 깊어진다.
이제 시선은 앞으로의 시간을 향한다. 500년 뒤에도 누군가 이 절벽을 올려다보며 같은 숲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을 곱씹다 보니 물 위로 천천히 번지던 그날의 노을이 떠오른다. 노을은 이내 사라졌지만, 절벽의 숲은 긴 시간을 건너 오늘까지 남아 있다.
우리는 무엇을 새로 만들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제는 무엇을 오래 기억하고 지켜낼 것인가도 함께 물어야 한다. 살아오며 절벽이라 여겼던 것들 가운데, 오히려 나를 지켜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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