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단·대학가 주변 정착 늘며 시장·주택가·상권 재편
대구 4만명·경산 2만2천명…5년 새 47%·113% 증가
“고립 막을 교류 기반 만들고 지역 문화자원으로 연결해야”
26일 찾은 대구 와룡시장. 시장 내부 들어선 외국 식료품점 앞을 장을 보기 위해 나온 외국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홍예원 수습기자
대구·경북 도시 생활 지형이 바뀌고 있다. 산업단지와 대학가를 따라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와 유학생이 일터와 학교 인근에 정착하면서 새로운 주거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어서다. 외국인이 잠시 머무는 방문객이나 노동자 지위를 넘어 지역 일상으로 스며드는 주민 공동체로 자리 잡으면서, 대구·경북도 다민족·다문화 사회로의 전환이 가팔라지는 모양새다.
◆대구경북 산단·대학가에 뿌리내린 '작은 국제도시'
26일 대구 서구 비산동 북부정류장 일대에 외국어 간판을 내건 식당과 식료품점, 통신점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홍예원 수습기자
지난 26일 낮 12시쯤 찾은 대구 달서구 신당동 와룡시장. 참기름과 반찬 냄새 사이로 향신료 향이 번졌다. 채소가게 건너편 외국 식료품점에는 피시소스와 칠리소스, 쌀국수 면, 열대과일 통조림 등이 빼곡했다. 아이 손을 잡고 채소와 고기를 고르는 베트남 여성부터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며 소스 상표를 확인하는 부부까지 외국인들의 장보기는 익숙하고 자연스러웠다. 서툰 한국어로 물건값을 묻자 한국인 상인은 손짓을 섞어 보관법까지 설명했다. 이날 취재진과 만난 쯔엉 반 민(베트남·여·23)씨의 장바구니엔 쌀국수 면과 숙주, 피시소스, 고수가 가득 담겨 있었다. 민씨는 "수년 전부터 성서산업단지에서 일하고 있다. 예전엔 베트남 식재료를 사러 왔지만, 지금은 채소와 고기, 아이 간식까지 모두 이곳에서 산다"며 "시장을 자주 찾다 보니, 얼굴이 익숙한 점주들은 현재 아이가 크는 모습까지 물어본다. 이제는 동네 이웃을 만나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1시쯤 찾은 대구 북부정류장 일대는 산업단지 배후 주거지 성격이 뚜렷했다. 현재 북부정류장은 단순한 환승지를 넘어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고 먹고사는 국제적 생활권이 형성된 듯 보였다. 그럴 것이, 한낮에도 근무를 마친 노동자가 집으로 향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고, 오후 출근을 앞둔 노동자들은 길가에서 통근 차량을 기다렸다. 이들을 위한 생활 인프라도 즐비했다. 북부정류장 일대엔 베트남 등 동남아 언어와 영어가 적힌 식당·식료품점·국제송금처·휴대전화 가게가 줄을 이었다. 뒤편 골목에 오래된 다세대주택과 원룸 사이에도 다양한 국가의 식당과 마트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인근에서 휴대전화 대리점을 운영하는 굴 나딤(파키스탄·50)씨는 20년 전 한국에 들어와 공장에서 일하다 13년 전 가게를 열었다. 나딤씨는 "우즈베키스탄과 중국, 베트남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찾는다. 염색산단에서 일하다 주변에 정착해 몇 년째 오는 단골도 많다"고 전했다.
1층에는 베트남 식당, 2·3층에는 베트남 카페가 들어선 경산시 조영동 오렌지거리의 한 건물 전경. 구경모 기자
지역 대학가도 외국인 대학생이 형성한 '작은 국제도시'나 다름없었다. 같은 날 오후 10시쯤 찾은 경산시 조영동 '오렌지거리'는 그야말로 다국적 사람들로 넘쳐났다. 한때 영남대와 인근 대학 한국인 학생들이 주로 찾던 거리였지만, 이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밤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늦은 시간에도 베트남 쌀국수와 중국요리 전문점, 우즈베키스탄 전문 식당, 할랄 식료품점 등이 문을 열고 있을 정도였다. 조영동에서 20년 넘게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가영(52)씨는 "예전에는 한국인 대학생이 자취방을 구하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5년 새 외국인들이 한국인 방문 수를 뛰어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날 취재진이 직접 한 식당에 들어가 보니, 다양한 국적의 유학생들이 늦은 식사를 하는 참이었다. 식당 곳곳에서 베트남어와 중국어, 우즈베크어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이중 일부는 "한국인이냐"며 취재진에게 직접 말을 걸었다. 경산에서 3년째 생활 중인 베트남 출신 A씨는 "저녁에는 외국인이 대부분이고 한국인은 가끔 온다"며 "한국인이 들어오면 오히려 눈에 띌 정도"라고 말했다.
◆대구 4만·경산 2만2천…커지는 '외국인 생활권'
26일 밤 경산시 조영동 오렌지거리의 한 베트남 카페가 유학생과 산업단지 노동자 등 베트남 출신 손님들로 붐비고 있다. 구경모 기자
대구·경북 내 외국인이 밀집한 지역들의 사회적 특성을 살펴보면, 지역 산업단지와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접근성 확장'이란 공통점이 존재했다. 정착 인구가 늘면서 식당·식료품점·통신점 등 주요 생활 인프라가 잇따라 형성됐고, 주거·소비·교류가 한곳에서 이뤄지는 국제적 생활권이 된 것이다.
먼저, 대구를 살펴보면 산업단지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비중이 높았다. 달서구(성서산단), 달성군(대구국가산단·달성산단), 서구(염색산단·서대구산단) 등이 대표적인 외국인 밀집 지역으로 꼽힌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대구지역 등록외국인은 2021년 2만7천230명에서 2025년 4만24명으로 47.0%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지난해 기준 달서구가 대구 전체의 34.5%인 1만3천795명, 달성군이 20.2%인 8천70명, 서구가 7.1%인 2천844명이 거주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구 9개 구·군 가운데 산업단지가 주로 밀집한 세 지역에 전체 등록외국인 10명 중 6명이 모인 셈이다. 지역별 증가세도 뚜렷했다. 달서구는 2021년 9천662명→지난해 1만3천795명으로 42.8% 늘었다. 달성군은 5천22명→8천70명으로 60.7%, 서구는 2천31명→2천844명으로 40.0% 증가했다.
생활 인프라도 외국인 거주지를 따라 집중됐다. 행정안전부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 개방시스템(LOCALDATA)의 '식품 일반음식점'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달서구 외국 음식전문점 48곳 중 29곳이 성서산업단지 주변에 있었다. 서구에서는 23곳 중 20곳이 북부정류장과 염색산단 일대에 몰렸다. 특히, 북부정류장의 경우 일터 가까이 모여 사는 외국인의 수요를 따라 점포가 들어서고, 형성된 상권이 다시 외국인 주민을 끌어들이는 구조가 고착화된 상태다.
같은 기간 경북의 등록외국인 수는 5만1천100명→8만8천13명으로 72.2% 늘었다. 경북 내 외국인 밀집 지역은 유학생 분포가 높다는 특성을 보였다. 이 같은 구조가 가장 뚜렷한 곳은 경북 경산이다. 영남대를 비롯해 인근 대구대, 대구한의대, 경일대, 대신대, 호산대 등 다양한 형태의 대학이 즐비해서다.
현재 경산의 등록외국인 수는 2021년 1만476명에서 2025년 2만2천346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기준 유학·일반연수 체류자가 전체 외국인의 65.4%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경산 내 외국 음식전문점도 2021년 40곳에서 2025년 50곳으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의 주거 생활권이 확장하고 있는 상황을 두고, 이제는 기존 지역사회와 어떻게 융합시킬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지리적 공간은 이미 국제화가 진행됐지만, 관련 제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이에 대해 영남대 정용교 교수(사회학과)는 외국인 생활권이 폐쇄적인 거주지로 굳지 않도록 내·외국인의 접점을 넓혀야 한다고 제안했다. 상호 교류가 부족하면 언어와 문화 차이에 따른 오해와 배타적 인식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외국인 노동자의 장기 정착은 이제 일반적인 현상이다. 결혼하고 자녀를 키우는 사례도 늘어난 만큼 이들을 일시적인 노동력이 아닌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지역 주민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문화 공동체와 친화적인 행정·지원 사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활 기반을 정비하고 문화자원을 연결하면 외국인 생활권을 지역의 새로운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대구정책연구원 김기완 박사(관광학)는 "산업단지 주변 외국인 밀집지역에는 매력적인 콘텐츠가 많지만 점포와 공간이 흩어져 있고 민간단체만으로는 이를 엮기 어렵다"며 "구청을 중심으로 외국인 점주와 기존 상인, 주민이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를 꾸려 지역과 점포를 연결한다면 대구·경북의 특색 있는 관광명소로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경모(대구)
대구 서구와 북구를 맡고있습니다.
홍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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