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미 변호사
지리산 근처 시골고등학교에 진로특강을 하러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2시간 예정이었던 진로 특강에서 나는 변호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고등학생들은 50분 수업에 익숙해져 있어서 나는 종이 치자 하던 말을 마치지도 않고 바로 멈추었다. 아이들에게는 쉬는 시간 10초도 소중하니까(수업시간은 소중하지 않더라도).
그런데 쉬는 시간에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보자 부고문자가 떴다. 큰아버지의 부고였다. 큰아버지는 친정아버지와 각별한 형제였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3일 내내 장례식장에서 내 곁을 지켜주시며 슬퍼하는 나를 위로해 주셨다. "사람이 죽으려고 한다고 쉽게 죽어지지도 않고 오래 살려고 해도 살아지지 않으니, 네 아버지는 명이 다해서 가신 것이라 생각해라."
당신께서 만병통치약이라고 믿는 느릅나무 달인 물을 나에게 먹이기 위해 산에서 직접 느릅나무 껍질을 채취해서 보내주시기도 하셨었다. 얼마 전까지 나의 친정어머니와 통화도 하시고, 친정아버지 기제사에도 잊지 않고 오셨었다. 큰아버지는 형제가 많고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었고, 10년 넘게 거동도 불편하고 치매까지 걸린 큰어머니를 간병하시느라 지쳐 있으셨다. 큰아버지의 별세를 알리는 부고 문자를 보는 순간 큰아버지에 대한 가여운 마음과 슬픔이 몰려왔다. 쉬는 시간을 마치고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강당에는 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남은 시간에 아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진로 정보 PPT를 멈추었다. 그리고,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중고등학생과 청년 시기에는 인간관계 때문에 많이 힘들어한다. 친구들과 잘 지내야 될 것 같고 무리에서 소외되면 안 될 것 같고, 모든 것이 원만한 상태가 아니면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리고 친구나 친한 사람이 적으면 자신의 성격을 탓하고, 사회성이 없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는 학창시절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많이 없었다. 두루두루 잘 사귀고 말도 맛있게 하는 친구, 재미있는 친구들을 보면 성격이 부러웠다. 그때는 친구를 비롯하여 모든 인간관계가 '시절인연'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었다.
아이들에게 계절처럼 만나는 시절인연, 떠나가고 다시 새롭게 만나게 되는 인연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면서 친구나 인간관계에 매달리거나 집착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함께해서 좋은 것도 많지만, 사람이 진정한 성장을 이루려면 반드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나 자신과 마주하는 그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어도 잘 지낼 수 있다고. 아이들에게 때로는 친구가 없고, 무리가 없고, 오래 살다 보면 또 어느 시기에는 부모님이나 가족이 없어지게 되고…. 사회생활 하다 보면 조력자가 없거나 힘이 되는 사람이 없기도 하고…. 이런 시기들이 오더라도 이 아이들이 단단하게 마음의 근육에 뿌리내리고 담담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강의를 마치고 큰아버지의 빈소로 가기 위해 주섬주섬 짐을 싸고 있는데 한 아이가 쭈뼛쭈뼛 내 근처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아이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저는 감정기복이 심한데 변호사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럼! 나도 사실 감정기복이 심해." 내가 찡긋하면서 웃자 아이는 쑥스러운 듯 몸을 돌리다가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안아주고 올걸…. 너무나도 예쁜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강의를 해서 내가 위로받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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