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우 지사의 308쪽 저서
저출생과 중앙집권 폐해까지
지방정부 처한 현실 낱낱이
그래도 자부심 가득한 경북
웅비 못할 이유도 없을 것
박재일 논설실장
언론인 모임 포럼에 갔다가 친분 있는 A기자가 불쑥 말을 꺼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 책을 읽어봤냐고. '아닌데'라고 하자 읽어보라고 권한다. 그는 '우리 기자들은 단체장이 펴낸 책이 그렇고 그런 치적 자랑이라고 예단해 아예 볼 생각도 않는데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고 토를 달았다. 경북도를 담당하는 그는 많은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A기자는 내가 무척 신뢰하는 언론인이다. 책을 주문해서 읽기 시작했다.
'결단 뚝심 신의'란 제목이다. 308쪽에 이르는 책은 1부 순간들, 2부 지방시대, 3부 저출생과 전쟁, 4부 국가 대개조, 5부 통일, 6부 다시 정치로 구성돼 있다. 일반인은 물론 특정 기관을 출입하는 담당 기자도 그 조직의 생태, 조직의 장(長)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속내를 쉽게 알기는 어렵다. 이 책은 그 속살의 일부를 엿볼 수 있다. 대구경북신공항 위치 확정을 놓고 대구시장, 군위·의성 군수와 일요일 대낮에 도지사실 문을 걸어잠그고 결론 날 때까지 안동소주를 마셨다는 일화도 그런 사례다.
언젠가 이 지사의 짧은 연설을 들었다. 인구의 날 행사로 기억하는데, 어린이들이 청중으로 모셔졌다. 이 지사가 말했다. '어린이 여러분, 오늘 집에 돌아가면 엄마 아빠에게 꼭 동생을 낳아달라고 하세요'. 폭소가 터졌다. 그의 책도 예의 인구문제에 대해 수십 쪽을 할애한다. 1949년 국가 인구 통계가 처음 시작될 당시 경상북도(대구 포함)는 인구 321만명, 전국 1위였다. 서울은 144만명. 이후 21세기 2026년 현재까지 대한민국 인구 변천은 다들 안다. 이 지사는 '수도권 병(病)'이라고 썼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국가 중 우울증 1위, 자살률 1위, 저출산율 1위를 잉태한 근원이다. 전국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도시인 서울은 지방 소멸의 대가로 인구를 채운다. 이 지사는 대안을 냈다.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개념이다. 이른바 'K 보듬 6000'이다. 6천은 육아천국에서 따왔다.
지방의 설움 근저에 깔린 것은 지독한 중앙집권이다. 국회의원 3선을 거친 이 지사이지만 뼈저리게 느낀 모양이다. 그는 시도지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중앙부처를 찾아 읍소하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예산처 5급 사무관 한 명을 설득하기 위해 도백은 몸을 낮춰야 한다. 제주도는 바다의 도시이나 바다는 해수부가 관리하고, 구미 국가산업단지는 산업부, 낙동강은 환경부가 틀어쥐고 있다. 환경부가 안동 길안천 준설을 허가하지 않기에 지방정부 권한에 맞춰 정확히 '9,999㎡'만 준설했다는 이 지사의 토로가 대한민국 현주소다.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2023년 예천군에서 전대미문의 산사태가 났다. 토사가 2㎞를 흘러 덮쳤다. 대통령도 와서 보고는 깜짝 놀랐다. 작금의 네팔에서 펼쳐진 재난이 연상된다. 2025년 봄, 경북 북부를 덮친 산불도 대재앙이었다. 이 지사는 이제 재난정책의 중심을 '방제에서 대피'로 옮겼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지방 현장의 컨트롤 타워는 그래서 중요하다.
경북도나 대구시 같은 지방정부는 종합행정이다. 중앙정부 모든 부처를 모아 놓은 축약판이다. 경북은 특히 면적이 넓다. 대한민국 영토의 20%, 동해 해안선은 무려 537㎞이다. 천년고도 경주와 APEC, 포항의 철강과 2차전지, 구미의 전자와 반도체, 동해안의 원자력, 안동소주의 복원까지 이 칼럼이 다 담지는 못한다. 그래도 꼭 덧붙일 게 있다. 하회마을과 양동마을만 경북에 있는 게 아니다. 한글도 있다. 훈민정음해례본은 딱 두 점만 전해오는데, 안동본과 상주본이다. 경상북도가 다시 웅비 못할 이유가 없겠다는 상념도 들게 한다.
박재일
30년 현장 경험을 자양분 삼아 사설과 칼럼을 집필합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