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10월항쟁 80주년 기획
1946년 10월1일 대구 시위 발포 현장. 거리 한쪽에 장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엄폐물 뒤에 쪼그려 앉아있고 반대편으로 피신한 시위군중 쪽에는 여러 명이 땅바닥에 쓰러져 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소 공개
'기록이 없는 도시'. 1946년 10월1일 대구에서 시작된 '10월항쟁'이 올해로 8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오랜 시간 봉인된 역사로 잊혀 오면서 관련 기록 수집은 물론 지역사회의 집단기억 형성 역시 제대로 되지 못했다. 유사한 국가폭력을 겪은 광주·제주 등의 지역이 공공영역에서 기록을 제도화해 온 것과 대비된다. 영남일보의 이번 기획보도는 대구 10월항쟁 80주년을 맞아 집단기억과 기록의 단절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거듭 묻고자 한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편집자 주>
영남일보가 지난 2일부터 27일까지 영남일보 홈페이지 등 온라인을 통해 '대구 10월항쟁에 관한 대구시민 인식조사' 결과. 인포그래픽=Gemini
올해로 80주년인 '대구 10월항쟁'에 대해 대구시민 10명 중 8명은 잘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월항쟁을 알려야 한다는 유족과 지역사회의 요구가 지속적으로 이어졌지만 이와 관련한 대구시의 노력도 미흡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관련 기록을 체계적으로 수집·보존해 역사를 알릴 수 있는 '공공기록 아카이브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구시민 42% "들어봤지만 잘 몰라" 37% "처음 들어"
'10월항쟁'은 1946년 10월1일 대구에서 처음 발발한 광복 이후 최초의 민중항쟁이다. 미군정 시기 군정의 식량 정책 실패와 친일 경찰 재임용, 자주국가 건설에 대한 좌절 등 사회·경제적 혼란 속에서 촉발됐다. 항쟁 이후 민간인은 물론 친일 경찰·지주도 사망해 지역 현대사의 비극으로도 불린다. 이후에도 항쟁 참가자들은 한국전쟁 시기까지 계속 학살됐다.
영남일보가 지난 2일부터 27일까지 영남일보 홈페이지 등 온라인을 통해 '대구 10월항쟁에 관한 대구시민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541명 중 19.8%(107명)만이 '잘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들어봤지만 잘 모른다'고 답한 경우는 42.3%(229명), '처음 들어본다'는 37.9%(205명)를 차지했다. 인식도는 60대 이상에서 가장 높았고 20대에서 가장 낮았다. 연령대별로 '잘 알고 있다'고 응답한 비중은 △60대 이상 32.3% △50대 24.7% △40대 20.5% △10대 이하 14.9% △30대 13.6% △20대 12.0% 순으로 집계됐다.
'잘 알고 있다' '들어봤지만 잘 모른다' 응답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10월항쟁을 접하게 된 경로'(복수응답)는 책·학술자료(28.9%)가 가장 많았다. 이어 △언론 25.0% △학교 교육 17.9% △가족·지인 15.2% △SNS·유튜브 14.3% △지역 행사 14.0%였고, 지자체 사업은 2.4%에 그쳤다. 이 중 67.3%는 대구 10월항쟁과 관련해 민간인 희생이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다만 항쟁이 올해 80주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72.0%가 '아니오'라고 답했다.
대구시가 2020년 11월 대구 달성군 가창면에 건립한 10월항쟁 및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대구시 제공
◆조례 제정 이후 집행 사업 3건뿐…대구기록원 건립도 답보
10월항쟁과 관련해 공공영역에서 진상조사가 이뤄진 건 1·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의 조사뿐이다. 유족회의 지속적 요구로 대구시는 2016년 8월1일 '10월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제5849호)를 제정해 관련 사업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조례만 제정됐을 뿐 시는 관련 사업에 지지부진한 태도다. 지난 14일 영남일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대구시의 '10월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관련 사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조례 제정 이후 올해 9월까지 시에서 집행한 관련 사업은 총 3건에 불과했다. 취재진은 정보공개청구 내용에 "추진 예정인 사업도 공개 가능한 범위 내에서 관련 내용을 포함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이 밖의 별도 사업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세히 살펴보면 △민간인 희생자 합동위령제 지원(2016년~) △10월항쟁 및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건립(2020년 11월) △대구콘서트하우스 앞 10월항쟁 발상지 안내판 설치(2025년 9월)가 시행됐다. 합동위령제 지원 예산은 2016년 700만원에서 지난해 1천만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위령탑 건립 사업의 경우 건립만 완료됐으며 시 차원의 제막식은 7년째 열리지 않고 있다. 기념시설을 조성하고도 이를 시민에게 알리기 위한 후속 조치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장현섭 대구시 자치행정과장은 "2020년 위령탑 건립 당시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팬데믹 시기인 2022년까지 제막식을 열지 못했다. 이후에도 시 차원에선 개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이뤄지지 못했다. 대신 합동위령제에는 시 관계자들이 꾸준히 참석해왔다"고 해명했다.
대구시가 지난해 9월 대구콘서트하우스 앞에 설치한 10월항쟁 발상지 안내판. 조현희기자
기록 사업 역시 뚜렷한 진척이 없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2007년 개정되면서 지방 공공기록물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각 광역자치단체의 지방기록원 설치가 의무화됐다. 이에 따라 대구시는 2018년 '대구 지방기록물관리기관'(가칭·대구기록원)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기관이 조성되면 10월항쟁 관련 기록물이 체계적으로 수집되고 시민에게 공유될 것으로 기대됐다.
2022년 완공을 목표로 시작된 사업은 지금까지도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2019년 진행된 연구용역 당시 대구시 신청사 부지에 조성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그러나 민선 8기 신청사 예정지인 옛 두류정수장 부지 일부를 매각하는 계획이 나오면서 대체 부지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건축비 상승과 시 재정 문제 등이 겹치면서 답보 상태에 놓였다.
이숙경 대구시 총무과 기록관리팀장은 "연구용역 당시에는 건축비가 410억원으로 예상됐지만 인건비와 물류비, 자재비 등이 오르면서 현재 65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시 재정 여건이 어려워져 사업을 당장 추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주요 사적인 옛 전남도청 외관. 현재 전남광주시에서 국가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관련 신청서 제출을 준비하고 있다. 조현희기자
◆기념재단·기록관…광주·제주선 공공서 관련 사업 활발
반면 유사한 국가폭력을 경험한 광주(5·18)·제주(4·3)에선 특별법 제정은 물론 기념재단·기록관·공원 조성 등을 통해 해당 역사를 전국적으로 알려왔다. 이재의 5·18기념재단 연구위원은 "광주에서는 5·18 직후부터 개인과 종교계, 재야 인사들을 중심으로 기록을 모으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며 "흩어져 있던 자료들을 모아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재구성해나갔고 이는 5·18이 많은 시민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에도 5·18을 지속해 연구하고 알려야 한다는 여론이 지역사회에서 이어지면서 다양한 시설과 기관이 설립됐다. 대표적으로 △관련 기록물을 관리·공유하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 △5·18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전남대 5·18연구소' △5·18 정신을 계승하고 기념사업을 주관·지원하는 '5·18기념재단' 등 세 개의 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하나의 기억 생태계를 형성했다. 전남광주시에서도 인권평화국을 두고 국 단위로 관련 업무를 추진해왔다. 현재는 주요 사적인 옛 전남도청과 금남로 일대가 국가유산으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관련 신청서 제출을 준비 중이다.
제주에서도 기념시설 운영비와 관련 단체를 지원하는 등 지자체가 4·3을 기억하고 알리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양정심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은 "지역사회의 진상규명 운동으로 특별법이 2000년 제정됐고, 특별법 제정 후에는 제주도에서도 4·3평화공원 등 관련 시설과 사업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왔다. 지금은 4·3 관련 시민사회단체 가운데 도의 지원을 받지 않고 활동하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전했다.
10월항쟁 80주년 행사위원회가 지난 28일 대구콘서트하우스 앞에서 10월항쟁 80주년 사업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조현희기자
◆시민들 "지자체·국가가 나서야"…유족 고령화에 기록 사업도 시급
유족과 시민들은 많은 시민이 10월항쟁을 알 수 있도록 공공영역에서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 및 98개 단체로 꾸려진 10월항쟁 80주년 행사위원회가 항쟁 8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민간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박석준 10월항쟁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후원금을 모으는 건 물론 자료가 모두 흩어져 있어 10월항쟁을 다루는 소책자를 만드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채영희 전 10월항쟁유족회장은 "희생자의 부녀자들은 연좌제와 '빨갱이 가족'이라는 프레임으로 성폭력을 겪는 일도 비일비재했지만 대구에는 이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트라우마센터조차 없다"면서 "10월항쟁을 계승할 단체가 국가적 도움을 받아 발전해나가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본지 조사 '해당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도 사건 자체에 대한 생각보다 "대구의 주요한 역사로 집중적 연구와 시민공유가 필요하다" "역사 수업 시간에 제대로 이야기해주는 경우를 못 봤다. 적어도 대구지역 공립학교에서는 필수로 가르쳤으면 한다" "지자체와 국가가 나서야 한다" 등의 주장이 잇따랐다.
10월항쟁 80주년 행사위원회는 지난 28일 대구콘서트하우스 앞에서 10월항쟁 80주년 사업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국회·대구시에 △10월항쟁 진상조사 및 희생자 명예회복 △관련 기록의 체계적인 조사·보존 △학교와 지역사회의 평화·인권교육 △추모를 지속할 수 있는 공적 기반 마련 등을 요구했다.
10월항쟁 80주년 행사위원회 주최로 지난 17일 대구YMCA 강당에서 열린 도올 김용옥 교수의 '10월항쟁과 대구정신' 강연을 시민들이 경청하고 있다. 조현희기자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공공기록 아카이브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대다수의 기록이 유족 개인과 일부 학자들의 연구 등에 의존하는 구조라 흩어진 기록물을 관리·보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시 항쟁에 참가했거나 이를 목격한 사람 대다수가 세상을 떠나고, 1세대 유족 역시 최소 80세의 나이로 고령화돼 증언을 들을 수 있는 창구도 사라지고 있다.
1기 진실화해위 조사관이자 책 '10월항쟁'의 저자 김상숙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10월항쟁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이후 대구의 현대사와도 연결되는 역사이기에 이를 제대로 복원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생존자와 유족이 세상을 떠나면 증언을 들을 수 없기에 구술기록을 서둘러 남겨야 한다. 이를 자료집으로 발간해 시민들이 접하기 쉽게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재의 위원도 "역사적 사건을 알릴 때 기록이 가장 중요하다. 1차 증거이기 때문에 진실을 공유하고 왜곡에 대응할 수 있다. 다만 개인이 기록을 수집하고 보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유실될 가능성이 높아 공공기관이 이를 맡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자료를 체계적으로 모으고 디지털화해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연구·교육·문화 콘텐츠 등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록물이 갖는 공공성"이라고 했다.
조현희
문화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