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억 경북도 공항&투자본부장
같은 기계를 쓰고 같은 제품을 만드는 두 공장이 있다고 하자. 한 공장은 기계가 멈추면 수리하고, 다른 공장은 고장의 징후를 미리 찾아 정비한다. 한 공장은 완성된 제품에서 불량을 골라내고, 다른 공장은 불량이 생기는 원인을 찾아 생산조건을 바꾼다. 어느 공장이 경쟁에서 앞서겠는가. 그 차이를 만드는 기술이 인공지능, AI다.
변화의 규모는 이미 거대하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올해 9월 세계 AI 관련 지출이 2026년 물경 2조7천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보다 49.5% 늘어난 규모다. 서버와 반도체 같은 인프라부터 소프트웨어와 서비스까지 포함한 수치다. AI 시장의 성장은 대구경북에도 반도체·전자부품·소재·장비의 공급 기회와 기존 공장을 혁신할 기회를 함께 열어준다.
그동안 제조업은 좋은 설비와 숙련된 인력, 생산 규모와 가격·품질을 바탕으로 경쟁해 왔다. 이제 여기에 새로운 능력이 더해지고 있다. 생산현장의 데이터를 모아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한 방법을 다음 생산에 반영하는 능력이다. 같은 설비를 갖추고도 불량과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주문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기업이 더 큰 경쟁력을 갖게 된다.
중국의 'AI+' 정책은 이 변화를 보여준다. 올해 1월 공개된 'AI+제조' 실행계획은 설계부터 생산, 판매와 사후관리까지 제조업 전 과정에 AI를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2027년까지 모범기업 1천개를 선정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현장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2026년 상반기 산업동향 설명회에서 AI 영상검사로 미세한 결함을 찾아내고 검사 효율을 높인 사례를 소개했다. 검사 영상에 생산 당시의 온도와 압력을 연결하면 어떤 조건에서 불량이 반복되는지 분석할 수 있다.
최근 방문한 중국 심천에서도 경쟁력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부품 조달과 시제품 제작, 소프트웨어 수정이 가까운 거리 안에서 빠르게 이어졌다. 제품을 만드는 속도만큼 시험하고 고치는 속도가 중요해지고 있었다. 독일에서는 AI가 기계의 '건강검진'을 돕고 있다. 지멘스는 올해 3월 설비의 진동과 센서 신호를 공장 내부에서 AI로 분석해 이상과 초기 마모를 감지하는 기술을 발표했다. 사람이 몸의 이상 신호를 살피듯 기계도 평소와 다른 진동을 분석해 정비 필요성을 판단하는 것이다.
대구경북은 다행히 이 변화를 활용할 산업현장을 갖고 있다. 구미의 전자산업, 포항의 철강과 소재산업, 영천·경산의 자동차부품산업에는 오랜 공정 경험과 품질관리 역량이 축적돼 있다. 전자부품의 검사 영상으로 불량 원인을 추적하거나, 금속가공 설비의 진동을 분석해 공구 교체 시점을 판단하는 일을 시도할 수 있다. 숙련자의 경험과 AI의 분석이 결합하면 기존 제조업은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다.
AI가 로봇과 기계를 움직이는 피지컬 AI로 발전할수록 실제 생산현장의 가치는 커진다. 부품의 위치가 달라져도 집어 올리는 로봇, 주변 상황을 판단하며 이동하는 운반장비는 현장에서 성능을 검증해야 한다. 새로운 기회는 생산성 향상에 그치지 않는다. 장비를 판매하던 기업은 운전 상태를 관리하는 사업으로 영역을 넓힐 수 있다.
거대한 세계 AI 시장에서 대구경북이 확보해야 할 것은 기술의 소비를 넘어서는 산업의 경쟁력이다. 축적된 제조 경험을 데이터로 연결하고 세계의 기술과 결합해야 한다. 현장의 문제를 얼마나 잘 해결하고 그 경험을 얼마나 빨리 쌓아가느냐가 대구경북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박재일
30년 현장 경험을 자양분 삼아 사설과 칼럼을 집필합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