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화기자 <사회1팀>
대구 중구에는 368년 역사를 지닌 약령시(약전골목)가 있다. 조선시대 경상감영 내 시장에서 약재를 거래하던 데서 출발한 한약재 전문시장이다. 하지만 요즘 약전골목을 거닐다 보면 '약령시'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한산하다. 골목엔 카페가 더 많고, 행인들은 인근 대형백화점 쪽으로만 몰린다.
약령시의 정체성이 선명해지는 때는 사실상 1년에 한 번 열리는 한방문화축제 때뿐이다. 그마저도 약재상인들의 체감효과는 크지 않다. 지난해 축제에서 약업사를 40년간 운영해 왔다는 한 어르신을 만났다. 그는 "축제 땐 부스만 붐빌 뿐 영업 특수는 없다. 예전엔 몸보신하려고 한약을 많이 달여 먹었지만 요즘은 찾는 사람이 없다"며 "외국인도 간혹 홍삼 캔디를 찾거나 사진만 찍고 간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 약령시가 최근 갈림길에 섰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새로운 특화사업과 규제특례안을 마련해 특구 재지정 심사를 받으라고 권고해서다. 중구청은 이를 위한 용역비 5천만원을 편성했지만, 중구의회는 회의적이다. 구청은 특구가 해제되면 여러 도매업소가 관리약사 한 명을 둘 수 있는 '공동약사제' 특례가 사라져 약업사 운영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며 특구 재지정 필요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구의회에선 시대 변화에 따라 사라지는 직업도 있는데, 일부 약업사 점주를 위해 구예산을 들여 특례를 유지하는 게 맞느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같은 논란의 중심에는 약령시가 오랫동안 특구 재지정 심사를 받지 않았다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약령시(한방특구)는 2004년 지역특화발전특구 제도 도입 당시 지정됐다. 당시엔 별도 지정 기한이 없었다. 다른 특구와 달리 3~4년마다 재지정 심사를 받지 않았다. 그간 새 특화사업을 고민할 기회가 없었단 얘기다. 중기부 특구운영과 직원은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지정기한을 정하라는 공문을 여러 차례 보냈지만 진척이 없었다. 현재 지정기한이 없는 특구는 약령시 한방특구를 포함해 세 곳뿐"이라고 했다. 중구청이 지난 20년간 약령시의 미래를 충분히 고민했었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중구엔 약전골목을 비롯해 미싱골목, 양말골목, 공구골목 등 역사와 스토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골목이 15곳가량 있다. 이 골목들은 저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시대 변화 속에서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은 대동소이하다. 이 중에서 약전골목은 그나마 '특구'라는 상징성과 368년의 역사라는 고귀한 자산이 있다. 가업 계승자가 줄면서 폐업이 느는 상황에선 약전골목의 색채도 옅어질 수밖에 없다. 중구청은 이제야 특구 재지정 용역을 통해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겠다고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약령시의 역사와 전통이 내일의 경쟁력이 되도록, 무엇부터 바꿀 건지를 진중하게 고민하기 바란다.
조윤화
사회1팀 조윤화 입니다. 중구 동구 시민단체 복지 맡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