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1974년 대학생 성병조 수필가와 서신 교류…편지 3장 첫 공개
농촌 발전 당부하고 새해 인사 전해…원본 2장·사본 1장 보관
‘암살자(들)’ 논란에 옛 편지 꺼내…“역사적 인물 다룰 땐 신중해야”
육영수 여사가 성 수필가에게 보낸 편지. 고향에서 새마을사업에 힘쓰는 주민들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성병조 수필가 제공
고(故) 육영수 여사가 1970년대 초 농촌 봉사활동에 참여한 대학생에게 보낸 편지 3장이 반세기 만에 처음 공개됐다. 12일 영남일보가 단독 입수한 이 편지엔 농촌 발전을 당부하고 청년의 앞날을 격려하는 내용이 담겼다. 최근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해석 논란이 격해지면서 이 편지가 공개된 것으로 보인다.
이 편지의 수신인은 성병조 수필가다. 당시 한국사회사업대학(현 대구대)에 재학 중이던 그는 취재진에게 1972년부터 1974년까지 육 여사와 6~7통가량의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현재 보관 중인 편지는 1972년 5월 30일, 1973년 5월 21일, 1974년 1월 18일자 등 총 세장이다. 두 장은 원본이고 나머지 하나는 사본이다. 이중 1974년 1월 18일자 편지는 육 여사가 피격되기 불과 7개월 전에 답신 형식으로 쓴 것이다.
이 편지엔 "새해에는 성군에게 더욱 축복과 행운이 함께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모든 일에 보람이 충만하기를 기대하겠어요"라는 새해 인사가 적혀 있다.
육 여사가 앞서 쓴 1973년 5월 21일자 편지에는 "지금은 고향에 돌아가서 새마을의 기수로 또한 새로운 지식의 전달자로 내 고장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성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라는 구절이 담겼다. 1972년 5월 30일자 편지엔 육 여사가 성씨 소식에 고마움을 전하며 새마을사업에 힘쓰는 마을주민들에게 안부를 부탁했다.
육영수 여사가 성 수필가에게 보낸 편지 사본. 고향으로 돌아가 새마을운동과 지역 발전에 힘쓰기를 바라는 격려의 글이 담겼다. 성 수필가 제공
육 여사와 성씨와의 교류는 성씨의 농촌 봉사활동에서 비롯됐다. 성씨는 1970년대 초 대구 지역 6개 대학 학생들과 함께 경북 의성군 단촌면에서 문맹 퇴치와 환경 개선, 어린이 교육 등에 참여했다. 당시 농촌연구회장이었던 성씨는 봉사활동 성과를 인정받아 의성군수 표창도 받았다.
성씨는 "당시 농촌 봉사활동의 첫째 목표는 문맹 퇴치였다"며 "글을 배우지 못한 주민들을 돕고 마을 환경을 개선하는 데 힘썼다"고 회상했다.
봉사활동 후 성씨는 농촌의 현실과 새마을운동에 대한 생각을 담아 육 여사에게 먼저 편지를 보냈다. 이후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청와대에서 답장이 날아왔다. 성씨는 "편지를 보낼 때마다 그 내용에 맞춰 답장을 보내줘 너무 고마웠다"고 했다.
육영수 여사가 서거 약 7개월 전 성 수필가에게 보낸 새해 인사 편지. 앞날의 행복과 행운을 기원하는 글과 육 여사의 서명이 담겨 있다. 성 수필가 제공
편지는 타자로 작성돼 우편으로 전달됐다. 청와대 표시가 찍힌 봉투가 경남 창녕에 있던 성씨의 시골집(성산면 석정리)에 도착하면서 마을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고 한다.
성씨는 육 여사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1970년대 초 김천 직지사를 방문한 육 여사가 우연히 만난 대학 후배들에게 성씨의 안부를 물었다는 것이다. 성씨는 후배들을 통해 이 말을 전해 들었다고 했다.
성씨는 최근 영화 '암살자(들)' 논란을 접하고 옛 편지를 다시 꺼냈다고 했다. 그는 "아무리 영화라고 해도 왜곡될 수 있다는 '개연성'은 문학과 예술의 경계를 이탈했다고 생각한다"며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다룰 때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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