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도시 간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요즘, 방위(方位)를 기준으로 설정된 자치구 명칭에 자그마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역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로 기능하면서 단순히 행정구역을 구분하는 수단을 넘어 지역 역사·문화와 정체성을 담아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다. 이는 지역민의 소속감과 자긍심을 형성하는 동시에, 생활환경과 지역 특색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현재 서울과 6대 광역시에서 방위형 명칭을 사용하는 자치구는 총 22곳이다. 부산과 대구가 각각 5곳으로 가장 많다. 이어 광주와 울산이 각각 4곳, 대전 3곳, 서울 1곳이다. 이중 대구는 9개 구·군 가운데 '중·동·서·남·북구'가 방위형 명칭을 사용 중이다. 오랜 세월 익숙하게 불려 온 이름들이지만, 이제는 차별화된 자치구 명칭을 다시 한번 고민해 볼 시점이다. 이에 영남일보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현 지역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자치구 명칭을 도출해 봤다.
◆챗GPT·제미나이가 제안한 '5개 구' 새 명칭
영남일보가 생성형 인공지능(AI)인 챗GPT와 제미나이에 대구광역시의 방위형 자치구(북구, 동구, 서구, 중구, 남구)를 대상으로 지역 특색을 반영한 새로운 이름을 각각 2개씩 제안받은 결과를 정리한 약식 지도. Gemini 생성
최근 영남일보가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와 '제미나이'를 활용해 대구 중·동·서·남·북구의 새로운 이름을 도출해 본 결과, 각 자치구의 역사와 문화, 자연환경, 지역 상징성을 반영한 새 명칭을 각각 2개씩 제안받았다.
중구의 경우 챗GPT는 '달성구'와 '감영구'를, 제미나이는 '달구벌구'와 '감영구'를 각각 제시했다. 달성구는 삼국시대 축조된 달성토성에서 착안했으며, 달구벌구는 대구의 옛 지명에 착안해 역사적 뿌리를 강조한 이름이다. 두 AI가 모두 제안한 '감영구'는 조선시대 경상도 행정 중심지였던 경상감영의 역사성이 반영된 결과다.
동구는 두 AI 모두 '팔공구'를 제안했다. 팔공산의 자연경관과 역사·문화적 상징성을 반영한 명칭이다. 나머지 후보로 챗GPT는 삼국시대 고분군이 자리한 불로동의 지명에서 따온 '불로구'를 내놓았다. 제미나이는 지역을 흐르는 금호강의 자연환경을 활용한 '금호구'를 제시했다.
서구도 마찬가지. '날아오르는 산'이라는 지명에 더 큰 도약이란 의미가 담긴 '비산구'를 두 AI가 똑같이 발굴했다. 이외 챗GPT는 대구지역 전통문화인 날뫼북춤과 연관된 '날뫼구'를, 제미나이는 서구와 중구에 걸쳐 있는 달성토성의 역사성에 주목한 '달성구'를 꼽았다.
남구는 '앞산구'다. 두 AI 모두 지역 내 대표 자연경관이자 시민 휴식 공간인 앞산의 상징성을 활용해 결과물을 도출했다. 이밖에 챗GPT는 지역 대표 행정동인 대명동에서 착안한 '대명구'를, 제미나이는 앞산의 옛 이름에서 유래한 '대덕구'를 추가로 제안했다.
북구는 서로 다른 이름이 제시됐다. 챗GPT는 북구를 흐르는 금호강에서 따온 '금호구'와 칠곡지역의 옛 지명을 활용한 '팔거구'를 추천했다. 제미나이는 지역을 대표하는 침산(砧山)을 매개로 한 '침산구'와 대구 최초 서원인 연경서원이 자리한 선비 마을 '연경동'의 지명에서 착안한 '연경구'를 제시했다.
◆명칭 변경 바람, 인천·광주 이어 대구도?
전국 특별·광역시별 방위식 명칭 구 현황. Gemimi 생성
방위형 자치구 명칭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전국적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대표적인 곳이 인천이다. 인천 남구는 2018년 '물의 고을'이라는 뜻을 지닌 옛 지명에서 유래한 '미추홀구'로 이름을 바꿨다. 인천 서구는 1988년부터 38년간 사용해 온 방위형 명칭을 뒤로하고, 지난 7월1일부터 서해와 맞닿아 있는 지리적 특성을 반영해 '서해구'라는 새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이에 인천은 전국 7개 특별시·광역시 가운데 유일하게 방위형 자치구 명칭이 없는 도시가 됐다.
광주도 방위형 자치구 명칭 변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앞서, 광주시구청장협의회는 지난 1월 광주·전남 행정통합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자치분권 강화를 골자로 한 방위형 자치구 명칭 변경을 공론화했다. 당시 협의회는 지역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반영한 명칭으로 바꾸고, 이에 필요한 예산을 중앙정부가 지원할 수 있도록 관련 내용을 특별법에 반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부산은 2024년 당시 남구가 방위형 명칭 대신 지역 특성이 담긴 명칭으로 변경을 검토했다. 이곳에 유엔기념공원이 있어 '유엔'이란 단어를 활용해 자치구 이름을 바꾸려 했으나 최종 무산됐다. 또 북구는 2019년 주민·전문가로 구성된 '명칭 변경 추진위원회'를 꾸린 뒤 이듬해 주민 합의 작업에 나섰지만, 지역사회 반대에 부딪혀 수포로 돌아갔다.
대구에서도 자치구 명칭 변경이 여러 차례 논의됐다. 하지만, 실제 변경으로 이어진 사례는 없다. 대표적인 곳이 동구다. 동구는 2004년 자치구 명칭을 '팔공구'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주민 합의를 이루지 못해 무산됐다. 당시 도심과 가까운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컸다. 서구와 북구는 각각 2012년과 2016년 당시 구청과 구의회를 중심으로 자치구 명칭 변경이 시도됐으나, 주민 공감대 형성과 대구시와의 협의 등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복잡한 행정절차에 비용 부담까지…전문가 "주민 숙의 거쳐야"
전문가들은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반영한다는 취지엔 공감하지만, 자치구 명칭을 변경하는 데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내놨다.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자칫 지역사회 갈등을 초래하거나 행정적·재정적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에 대해 동양대 황종규 교수(공공인재학부·행정학박사)는 "동서남북이라는 명칭은 과거 관리자의 편의에 따라 붙여진 것으로, 지역의 정체성을 고려한 이름이 아니다. 자치란 자기 정체성과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인데, 방위형 명칭은 이러한 자치의 원리와 맞지 않는다"며 "지역의 정체성은 단순히 역사나 문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주민들이 지역을 어떻게 이해하고 미래를 어떻게 그려나가는지까지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방위형 명칭을 변경하는 데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주민 의견 수렴과 지방의회 의견 청취, 관계 기관 협의, 법률 제정 또는 개정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행정기관이나 정치인이 먼저 새로운 명칭을 제안하기보다는 '우리 구의 이름 찾기'를 공론화하고, 주민과 출향인, 전문가 등이 함께 논의하는 숙의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주민들이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대구시지명위원회 위원인 대구한의대 김병우 교수(한국문화산업전공)는 자치구 명칭 변경이 실효성 없는 행정에 그치지 않도록 세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고 봤다. 김 교수는 "대구를 예로 들자면, 인천 등 인구 유입이 많은 지역과 달리 오랫동안 지역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주민들이 많아 명칭을 변경할 만한 특별한 계기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실정"이라며 "동구가 '팔공구'로 바뀔 경우를 가정하면, 팔공산을 공유하는 경산·영천·칠곡 등 인접 지역에서는 달리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지자체에서 홍보물 제작과 광고, 각종 서류와 표지판 교체 등에 수십억원이 소요될 것"이라며 "특별한 사정 없이 이름을 바꾸기보다, 진정 지역 특색을 살린 브랜드를 개발해 주민들의 자부심과 인지도를 높이는 방안을 도출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윤화
사회1팀 조윤화 입니다. 중구 동구 시민단체 복지 맡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